강함과 부드러움처럼 반대의 지점에 있는 것들이 절묘한 합을 이루는 사람을 볼 때, 우리는 마침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허니제이의 춤에는 짧은 순간에도 강함과 부드러움이 묘하게 공존한다. 그녀의 삶도 춤과 닮아 있다.
모 소재의 화이트 니트와 오블리크 패턴이 새겨진 버킷 햇 모두 크리스챤 디올.
그녀를 만나면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우리가 잘하는 거 하자. 애초에 그렇게 준비한 무대니까, 그냥 그렇게 하면 돼. 우리 진짜 멋있어.”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가 끝난 이후에도 그녀가 선언하듯 던진 이 말을 나는 꽤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지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지키는 힘은 어디에서 기인하냐고 묻자 “뭐든 솔직하고 싶어요. 부족한 나도 나고, 그런 나 자신도 나부터 사랑해야 남들도 저를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라는 다부진 답이 돌아왔다.
자신과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진 단단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말과 태도였다. 그녀는 <스우파>를 통해 소위 ‘허니제이 명언’을 남기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기도, 위로가 되기도 하며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되돌아볼 시간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녀가 보여준 말과 태도에서는 모든 순간이 최선일 수만은 없는 우리의 인생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워온 밀도 있는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찰나의 움직임에서조차 멋짐을 잔뜩 뿜어내는 그녀의 춤 역시도 그 밀도 있는 시간을 실감하게 했다. 요즘 미담이 많아 좋은 마음이 크겠지만, 두려움도 있을 것 같다는 우려 섞인 말에 “저에 대한 미담이 많던데, 어떻게 보면 도덕적 기대치가 높아진 거죠. 사실 저는 제가 특별히 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해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미션을 준비하면서 멤버들에게 ‘못 믿겠어’라는 말을 했더라고요. 당시에는 그 말을 했는지조차 몰랐죠. 방송을 보며 알았고, 저도 모르게 상처를 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실수를 하고싶지 않아서 그 장면을 마음에 새기고 싶어요”라며 프로그램 중 마음에 남기고 싶은 장면에 대해 다짐 섞인 이야기를 전했다.
블랙 글리터 드레스는 자라.
댄서로서 22년 차인 허니제이. 커리어로 이미 모든 것을 이룬 듯 보이는 그녀에게도 관성의 시간은 있었다. 다만 그 시간을 ‘슬럼프’라는 이름으로 부러 정의하지는 않았다. “슬럼프라는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어요. 댄서는 연습한 시간들이 움직임 하나하나로 정직하게 드러나잖아요. 그래서 전에는 억지로라도 했어요. 그런데 마음이 동하지 않을 땐 잠시 내려놓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죠. 애당초 춤은 좋아서 하는 건데, 억지로 하면 싫어질 수 있으니까요.” 뜨겁고도 찬란한 시간을, 그리고 관성의 시간까지 지나며 그녀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찾은 듯했다. 10대, 20대를 지나 30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허니제이는 ‘책임감’에 대한 말도 잊지 않았다. “30대인 지금도 춤을 좋아하는 마음은 같아요. 다만 경제적으로 더 안정된다면, 좀 더 즐기면서 춤출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제가 저를 책임져야 멤버도, 팀도 지킬 수 있으니까요. 힙합 컬처를 담은 브랜드를 론칭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죠.”
골드 프린지 드레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골드 니트와 스커트 모두 발렌티노. 디테일이 들어간 블랙 부츠는 마이클 코어스.
마지막으로 살아가면서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사랑’이라 답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게 사랑에서 시작돼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죠. 일도 마찬가지예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하고, 지칠 때는 서로 위로하기도 하고요. 살아가는 에너지의 근원이 사랑인 것 같아요. 모든 걸 이루어도 사랑이 없다면 의미가 있을까요?”“따뜻하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미 충분히 그런 사람이지 않냐는 말에 겸연쩍은 미소를 띠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도 무게와 책임감을 잃지 않는 그녀였기에, 다시 만나면 더 멋지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그것이 허니제이가, 정하늬가 삶을 대하고 살아가는 방식이므로.
헤어 권도연 | 메이크업 이나겸 | 패션 스타일링 이필성 | 세트 스타일링 이나경(CALLA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