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사는 39세의 디지털 아티스트 마이크 윈켈먼. 2007년부터 5천94일(4월 10일 기준)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디지털 아트 작품을 생산하는 중이다. 지난 3월 11일, 5천 일의 결과물을 모은 콜라주 ‘매일: 첫 5000일’이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 등장했다. 결과는 세상을 뒤흔들었다. 낙찰가 6천9백30만 달러(한화 7백77억 원)에 작품이 팔린 것. 미술사를 통틀어 세 번째 높은 가격이었다. 그의 활동명 ‘비플’ 위로 두 명의 아티스트와 작품만 남았는데, 제프 쿤스의 ‘토끼’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이다.
흥미로운 건 비플의 작품이 회화도, 조각도, 설치미술도 아닌 디지털 파일이라는 점이다. 전시장 벽에 걸거나 맞춤한 공간에 설치할 수도 없는 jpg 파일. 이 ‘지구 차원의 경매 이벤트’를 수긍하려면 ‘NFT’라는 열쇠 말을 이해해야 한다. ‘Non Fungible Tokens’, 우리말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인 NFT는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표시하는 방식이다. 암호 화폐의 일종인 비트코인이 같은 값으로 교환이 가능하다면, NFT는 고유한 인식값 덕분에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쉽게 말해,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걸 증명하는 디지털 인증서인 셈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비플이 jpg 파일에 소유권을 증명하는 NFT를 발행했고, 경매를 통해 이 작품을 구입한 낙찰자가 NFT를 넘겨받으면서 작품의 유일무이한 소유주가 된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한 블록 체인 회사가 뱅크시의 작품을 NFT로 변환해 경매에 내놓은 뒤 실제 작품은 불태우고, 가상 이미지를 4억 원에 팔기도 했다.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는 2006년에 올린 첫 트위트 한 문장에 NFT를 발행해 30억 원이 넘는 금액에 팔아치웠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한 줄의 문장은 여전히 트위터 서버에 있고 누구나 검색할 수 있다. 다만 블록체인에서 소유주만 바뀌었을 뿐이다. 장사가 된다는 걸 알아챈 아티스트의 행보일까? 비플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낸 데이미언 허스트는 보도 자료까지 내면서 “‘통화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 1만 개의 NFT 컬렉션을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NFT 열풍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을 정리하면 이렇다. “대부분의 암호 화폐는 가치 기반이 없다. 실제 통화로 쓰이지 않으니까. 다만 지금의 투자가 미래에 더 높게 평가되길 기대하는 사람들이 구매한다. 이때의 미래 가치는 사람들이 그것을 소중하다고 인정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NFT 열풍 역시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하는데, 기존 암호 화폐와 다른 건 예술 작품을 매개로 삼은 점이다.” 본질적 가치가 없는 암호 화폐를 향한 사람들의 의구심을 피하기에 ‘원본’의 가치와 희소성을 따져 값을 매기는 예술 작품만 한 명분이 없다는 것. 여기에 ‘예술 작품은 어딘가에 반드시 전시해야 하며 물리적 구매가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은 낡은 것’ ‘디지털 아티스트는 새로운 예술 형태를 실험할 기회’라는 긍정적 해석이 따라붙기도 한다.
반면 거액의 낙찰가를 써낸 새로운 소유주들이 NFT 펀드를 운영하는 암호 화폐 사업가라는 알리바이 때문에 “투기성 화폐를 위한 새로운 출구”라는 지적도 있다. “NFT는 쓸모없는 쓰레기에 대한 소유권 증서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호사가들의 새로운 투기법’과 ‘예술에 대한 새로운 투자법’이라는 해석이 엉긴 상황. 그 와중에 결론 삼아 떠올리는 질문은 이렇다. “과연 실제 작품이 아닌 가상의 작품 이미지를 소유하는 건 어떤 예술적 경험과 만족감을 안겨줄 수 있을까?”
문일완은 <바자> <루엘> <엘라서울> 등 독자층이 제각각인 패션 잡지, 남성 잡지,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넘나드는 바람에 무규칙한 문법이 몸에 밴 전직 잡지쟁이다. 그래픽 노블을 모으고 읽는 것, 아무 골목길이나 들어가 기웃거리는 게 요즘 취미 생활. 칼럼니스트로 여러 지면에 글을 쓰느라 끙끙대고, 사춘기 코스프레 중인 딸과 아웅다웅하며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