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를 앓고 있는 요즘, 사람들에게 짧고 단단한 문장으로 이뤄진 시가 위로가 되고 있다. 국내외 시인들의 시집을 엮어내는 국내 출판사에서 지난 2020년 사랑받은 시집을 추천받았다. 시를 많이 접하지 않은 이들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책들이다.
[세계 시선]
<하모니엄> 윌리스 스티븐스
낮에는 보험 회사 직원, 밤에는 시인의 삶을 산 미국 시인 윌리스 스티븐스의 첫 시집이 처음 완역되어 출간되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상상이 담긴 시는 일상의 풍경을 낯설게 보이게 만들 것이다. 도서출판 미행.
<끝의 시> 마리나 츠베타예바
20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시 45편을 엮었다. 당시 러시아를 떠나 유럽을 떠돌던 작가는 유대인이자 여성으로서 살아간 자신의 삶을 언어로 옮겼다. 책의 말미에는 그가 직접 쓴 자기소개서인 ‘이력서’가 담겨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읻다.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울라브 하우게
“좋은 시는/ 차향이 나야 해” 노르웨이 시인 올라브 하우게의 작품 ‘나는 시를 세 편 갖고 있네’에 나온 문구처럼 그의 시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는 듯하다. 평생을 정원사로 일했던 그는 어려운 상징이나 비유가 없는 담백한 시를 통해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봄날의책.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마르셀 프루스트
오감을 통해 추억과 미래를 그려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데뷔 초 쓴 산문시를 엮었다. “삶 자체가 어차피 꿈꾸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시 ‘꿈으로서의 삶’에서 나온 이 문구처럼 읽는 동안 이야기를 통해 꿈꾸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민음사.
<충만한 힘> 파블로 네루다
장기간 망명을 끝내고 칠레로 돌아온 작가 파블로 네루다가 휴식을 취하며 쓴 시를 묶었다. 칠레 정부로부터 ‘네루다 메달’을 수상한 시인 정현종이 번역해 노년기에 접어든 작가의 깊은 사유를 충실하게 담아냈다. 문학동네.
<어둠의 속도> 뮤리얼 루카이저
“한 여자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세계는 터져버릴 것이다” 시 ‘케테 콜비츠’의 한 구절로 유명한 미국의 시인 뮤리얼 루카이저의 시집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여성, 어린이, 흑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작품이 담겼다. 봄날의책.
<바쇼의 하이쿠> 마쓰오 바쇼
“마치 하늘이 어느 순간 살짝 열렸다가 닫히는 것을 본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일본 에도 막부 시대에 활동한 마쓰오 바쇼의 시에 대한 화가 이우환의 추천사다. 17자로 이뤄진 짧은 하이쿠는 자연을 통해 삶의 진리를 말한다. 민음사.
<세상의 법, 당신의 법> 후아나 비뇨치
1950년대 말 아르헨티나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시인 후아나 비뇨치. 정치 격변기를 겪으며 쓴 시집 5권을 한데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어려운 상징어가 적어 시를 많이 접하지 않은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읻다.
[국내 시선]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허연
“이곳에서 희망은/ 목발을 짚고 집으로 돌아온다” 지난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시인 허연. 다섯 번째 시집의 ‘무반주’에서 볼 수 있듯 냉소적으로 쓰인 전작들과 달리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말한다. 문학과지성사.
<숲의 소실점을 향해> 양안다
“계속해서 듣고 싶었다/ 너의 꿈 같은 농담을” 시인 양안다는 ‘휘어진 칼, 그리고 매그놀리아’에서 말했듯 타자의 목소리를 시로 옮긴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민음사.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이원하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등단작이자 표제 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속 글귀에서 알 수 있듯 시인 이원하의 시는 솔직하다. 맑고 천진한 시어를 통해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한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문학동네.
<밤의 팔레트> 강혜빈
“내가 나인 게 어떻게 쉬울 수 있죠?” 작품 ‘무지개가 나타났다’ 속 질문처럼 시인 강혜빈은 첫 시집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탐구한다. 시인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말한다. 문학과지성사.
<작가의 탄생> 유진목
부산 영도에서 책방 ‘손목서가’를 운영하는 시인 유진목은 구체적인 언어로 시를 쓴다. ‘작가의 탄생’, ‘파로키’, ‘유령의 시간’ 등 같은 제목의 연작을 묶은 시집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 강인한 희망을 찾아낸다. 민음사.
<앙앙앙앙> 류진
시인 류진은 만화, 게임, 영화, 음악 같은 대중문화를 비롯해 수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솜씨 좋은 입담으로 버무려 하나의 시로 완성한다. 평론가 조재룡이 ‘푸가의 변주곡처럼’이라고 말한 것처럼 한 편, 한 편이 명랑하고 유쾌하다. 창비.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이병률
산문집 <끌림>으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은 시인 이병률이 3년 만에 신작 시집을 출간했다. 막연히 상황을 낙관하기보다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슬픔을 차분히 관조하는 방식을 통해, 좌절 속에서도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문학동네.
<좋은 곳에 갈 거예요> 김소형
시인 김소형의 두 번째 시집은 과거에 우리가 사랑했지만 떠나간 사람, 동물, 사물 등을 이야기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길에는 슬픔이 있었지만 지금 상태가 우울한 것만은 아닌 것처럼 불안정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상상하게 만든다. 아침달.
<호시절> 김현
우리의 시대상을 담대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해온 시인 김현이 2년 만에 펴내는 세 번째 시집. ‘이 시집 안에는 여러 노래가 흐르고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노랫말 같은 시를 엮었다. 작가 스스로와 누군가의 ‘호시절’을 떠올리며 쓴 시는 코로나19 이전의 평온한 일상을 떠올리게 한다.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