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시대에 우리가 갖춰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2000년대 초반부터 미디어에 대해 표현해온 작가 양아치가 우리에게 곧 다가올 미래를 만들었다. 다중의 눈을 가진 진화한 인류가 살고 있는 은하계, ‘갤럭시’다.
양아치 웹 기반의 작업을 온라인에서 선보였던 작가 양아치는 2000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미술-그 주술적인 힘>을 통해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본명은 조성진이나 당시 온라인에서 사용한 아이디 ‘양아치’를 예명으로 삼아 지금까지 사용 중이다. 디지털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만든 ‘양아치 조합’, 국가적인 감시 메커니즘을 비판한 ‘전자정부’ 등 초기작은 웹을 기반으로 했으나 이후 미디어의 스토리텔링을 다룬 ‘미들 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 시리즈를 통해 미디어 아트를 정의했다는 평을 받는다.
신비로운 보랏빛으로 빛나는 전시실에 황동으로 만든 오브제가 놓여 있다. 기계가 내는 파열음이 반복적으로 들리는 공간에 놓인 작품은 다소 섬뜻하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러 개의 투명한 눈동자를 가진 아이의 얼굴, 벽에 매달려 있는 불상의 손, 광물로 뒤덮인 성모마리아 등 파괴된 미래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 적응해 진화한 인류를 보여주는 듯하다. 삼청동의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10월 15일부터 열린 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의 개인전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는 다른 차원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와 정치를 인터넷 쇼핑으로 표현한 웹 기반의 작품 ‘양아치 조합’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 양아치는 국내 미디어 아트 신을 이끌어왔다.
“3년 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개인전 에서 처음 도입한 ‘갤럭시’란 개념을 구체화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 세계에 대해서 프랑스어의 ‘전미래 시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미래의 전 단계, 확실히 그렇게 될 일을 말할 때 사용하는 시제죠.” 작가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과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손에 잡힐 수 있는 작품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갤러리와 미술관을 비롯해 공공 미술 분야에서 많이 보이는 미디어 아트가 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데 반해, 이번 그의 전시는 영상 작품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오브제를 주로 선보였다. “미디어 아트와 디지털 아트가 비슷한 모습을 지녀 혼동하는 것 같아요. 미디어 아트는 영상 매체 같은 대중매체를 주제로 다루거나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차용한 작품을 뜻합니다.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평면 회화도 미디어 아트에 속할 수 있죠.” 그의 말처럼 작가는 영상 외에도 퍼포먼스, 설치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번에는 그 매개가 황동 소재로 만든 사물이 되었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방해석 렌즈’는 이번 신작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과거 바이킹족은 방해석으로 태양의 위치를 파악하고 항해를 했다고 해요. 이게 나침반으로 대체되고 현재에 이르러선 GPS와 라이다LIDAR로 변화했죠. 라이다는 자율주행의 핵심적인 기술로 공간을 데이터로 파악해요. 사람의 눈과 유사한 방식으로 만든 카메라 렌즈와 달리, 위성에서 데이터를 받아 주변 환경을 파악해 영상으로 산출하는 최신 기술이죠.” 전시실 가장 안쪽에 자리한 영상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라이다 센서로 촬영한 것이다. 여기에 가장 고전적 도구인 방해석 렌즈를 더했는데, 이를 통해 사물을 보면 마치 만화경으로 들여다보듯 여러 개의 상이 중첩되어 보인다. 이번 전시 중심에 자리한 다중적인 눈을 가진 미래의 아이 ‘사르트르, 외사시, 10개의 눈, 사물’의 시선이기도 하다. 가장 원시적인 도구가 미래 세계를 엿보는 눈이 된 것이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외사시였기 때문에 안과 밖을 함께 보는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을 뛰어넘는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생각했죠. 만약 인류가 10개 이상의 눈을 가진다면 지금과는 다른 것을 보지 않을까요?”
‘사르트르, 외사시, 10개의 눈, 사물’, 황동 주물, 자석, 광물, 12×15×17cm, 2020
‘Galaxy Express’, 단채널 영상 10분 56초, 가변 크기, 2020
현대자동차와 기술 협력을 통해 촬영한 라이다 센서 영상 작품은 지난 9월 24일부터 11월 29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진행한 주제전 <더블 비전>에도 전시했다. 라이다 센서로 촬영한 도시 위에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사람, 그가 키우는 앵무새 등을 중첩했다. 두 카메라 모두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산출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흑백으로 보이는 라이다 센서 영상과 달리 살아 있는 생명체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열화상 카메라 영상은 상반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기술 발전에는 양면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국내 기술 발전은 인문학적 바탕 없이 이뤄졌기에 각종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죠. 그중 하나가 기술, 정보를 특권층이 소유하며 이에 소외된 계층이 발생하는 거예요.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게 미디어 아티스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기술 발전을 인류의 역사에서 필연적인 결과로 보고 그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시선, 즉 다중적인 눈을 지녀야 한다고 이번 전시를 통해 제안한다.
“2년 전 KT 아현 기지국에서 발생한 화재는 기술의 실패를 목격한 사건입니다. 통신 장애 때문에 병원 응급실이 마비되고, 어떤 노인은 119를 부르지 못해 숨지기도 했죠. 이처럼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긍정적으로만 보던 현실을 직시하고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코로나19를 우리 세대가 겪는 게 낫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지금 당장은 불편하지만 미래에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너무 암담하지 않나요?” 작가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그는 미래를 어둡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을 비판하는 그의 작품이 두렵기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요즘 제 모토는 ‘대부분 남의 말이 맞다’입니다. AI 기술이 모든 분야를 대체하는 시대에 과연 인간인 제가 볼 수 있는 게 전부일까요? 다양한 사람의 말을 듣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작품도 나오는 거죠.”
12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는 양아치 작가가 라이다 센서로 작업한 신작이 설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