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뉴스에서 한 남성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뭔가를 부수고 있다. 자세히 보니 디즈니 실사 영화 <뮬란>의 포스터다. 남성의 정체는 프랑스의 영화관 주인. 미국 디즈니사가 올해 최대 화제작인 <뮬란>을 영화관이 아닌 자사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 개봉한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리포터는 “해외에서는 온라인 우선 공개가 확대되는 추세로, 디즈니의 이번 공개가 극장 개봉 이상으로 성공하면 1백20년 역사의 극장 산업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하며 뉴스를 마무리했다. 이 뉴스가 전해지기 일주일 전인 8월 4일에는 극장 산업이 카운터펀치를 맞은 듯한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 최대 영화관 브랜드인 AMC와 영화 제작사 유니버설 픽쳐스가 맺은 계약 때문이다. 계약서의 키워드는 ‘홀드백’.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는 ‘독점 상영 기간’을 말하는데, 지금까지 한 해 90일이던 홀드백을 17일로 줄이는 협약에 AMC가 사인해버린 것. 2017년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온라인 플랫폼과 극장 동시 개봉을 추진하자 영화관들이 상영을 거부한 명분이 바로 홀드백이었다.
곧장 업계 내부자들이 비난을 쏟아냈다. 홀드백을 축소하는 건 영화 유통의 터줏대감 자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며, 수년 동안 영화관을 잠식해온 OTT 서비스에 백기를 드는 행위라는 것이다. 극장과 OTT업체의 관객 뺏기 싸움에 기름을 부은 건 코로나바이러스다. 극장이 봉쇄와 폐쇄를 거듭하는 중에 호시탐탐 영상 콘텐츠 시장을 살피던 디즈니, 아마존, 애플이 OTT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한 해 20조 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쏟아부은 오리지널 콘텐츠로 관객을 잡는 데 성공한 넷플릭스를 타깃으로 삼은 행보다. 이런 상황에서 올 3월에만 미국의 영화관 4만 곳이 문을 닫았다. 물론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도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다. 관객 수, 극장 수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었다. 영화 소비에 관한 한 전 세계 톱클래스인 한국은 좀 나은 상황이지만, 추세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극장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할까? 누군가는 과거에도 여러 번 위기를 이겨낸 극장의 저력을 눈여겨보라고 말한다. TV와 비디오 시장의 등장 앞에서 무릎이 꺾일 뻔한 영화관이 블록버스터와 디지털 기술 등 극장만의 해법을 발휘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국내 사례를 살펴보면 극장에서만 가능한 서비스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대표적이다. IMAX, 4DX, 슈퍼플렉스, MX 등 특별관 운용이 그렇고, 최근에는 한 차원 높은 화질과 음향을 제공하는 돌비시네마까지 등장했다.
얼마 전 어렵사리 극장에서 상영한 영화 <반도>는 IMAX, 4DX, ScreenX, 4DX SCREEN, SUPER 4D, ATMOS 등 한국 영화 최초로 ‘6포맷’으로 개봉했다. 물론 이런 식의 노력은 체험형 콘텐츠로 분류할 만한 영화가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한다는 점이 한계로 작용한다. 한편으론 군중의 시대가 아닌 취향을 존중하는 개인의 시대에 극장만이 영화를 감상할 단일 공간이라 고집하는 건 시대착오라는 의견도 있다. 극장이 넓은 화면과 최적의 사운드 시스템으로 영화라는 장르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최적의 공간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제는 필수가 아닌 선택의 공간이라는 걸 인정할 때가 됐다 는 것. 그 와중에 아마존이 극장 체인을 인수하려 노력 중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다. 넷플릭스도 자체 제작 영화를 지속적으로 극장에서 상영할 계획이란다. 이건 극장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방증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극장에 간 지 어느덧 9개월이다.
문일완은 <바자> <루엘> <엘라서울> 등 독자층이 제각각인 패션 잡지, 남성 잡지,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넘나드는 바람에 무규칙한 문법이 몸에 밴 전직 잡지쟁이다. 그래픽 노블을 모으고 읽는 것, 아무 골목길이나 들어가 기웃거리는 게 요즘 취미 생활. 칼럼니스트로 여러 지면에 글을 쓰느라 끙끙대고, 사춘기 코스프레 중인 딸과 아웅다웅하며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