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베카 데일과 그의 파트너 제레미. 함께 카사 멜란골로를 운영 중이다. 지역 장인들과 함께 정교한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재생 자재와 빈티지·세컨드핸드 가구를 활용해 이 공간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했다.
운명처럼 마주한 유산, 카사 멜란골로
이탈리아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세계 곳곳을 누비며 금융 매니저로 살아온 레베카. 몇 해 전, 어머니의 죽음은 그를 다시 고향 이탈리아로 이끌었다. 슬픔의 한가운데서 마주한 것은 부모가 생전 마지막으로 구입한 18세기 고택. 잡초가 무성하고 어설픈 현대식 보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지만, 레베카는 그 너머에 숨은 가능성을 직감했다.

카사 멜란골로의 중심은 구내식당에 있는 공용 키친이다. 아침이면 모두가 이곳에 모여 향 좋은 카푸치노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며, 소박한 홈메이드 아침 식사를 즐긴다.
“어머니가 위독해지면서 곁을 지키기 위해 소렌토로 돌아왔고, 어머니는 3년 전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 새로운 챕터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암스테르담에서의 일과 삶을 좋아했지만, 자연과의 연결감과 창조적 출구가 그리웠어요. 어디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지 확신이 없던 시기였고요. 이곳을 다시 찬란하게 되살리는 것이 저의 사명임을 직감했죠.” 그리고 결국 그는 이 아름다운 집을 자신의 거처이자, 소렌토를 찾는 게스트를 위한 숙소로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실내와 실외는 본래의 아름다움으로 되돌리는 데 집중했다. 단순함과 지속 가능성, 미니멀리즘, 디자인이 조화롭게 만나는 고요한 휴식처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소렌토 전통 ‘컨트리 하우스’의 결을 살리되, 자신만의 터치를 더하는 것. 레베카는 건축이나 인테리어를 본격적으로 해본 경험은 없지만, 건축가를 고용하지 않았다. ‘진정성(authenticity)’에 자신만큼 집요하게 몰입할 건축가 및 디자이너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현지 공급처와 장인들을 직접 연결해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건축가 대신 자신의 신념을 이해할 현지 장인들을 찾아 나선 셈이다. 여기에 파트너와 함께 여행에서 얻은 감각과 기억을 재료처럼 꺼내 공간에 적용했다. 남부 이탈리아의 앤티크 타일을 재활용해 완성한 주방, 철공 장인이 손수 만든 철제 디테일과 앤티크 스토브, 고재 복원 전문가인 목수가 되살린 오래된 문과 창문까지. “재사용한 자재들은 집에 시간을 입혀주었어요. 공사가 진행되면서 공간은 자연스럽게 제 갈 길을 찾아갔죠.”

이 공간이 품은 가장 인상적인 유산은 집 안에 남아 있는 19세기 올리브 오일 프레스다. 한때 올리브 오일을 생산하던 이곳을 우아한 54m² 아파트로 탈바꿈시킨 멜란골로에는 킹사이즈 베드, 넓은 주방, 거실, 욕실이 마련되어 있다.

마당에서 수확한 식재료를 담아내는 장면만으로도 게스트에게는 충분한 치유의 순간이 된다.
카사 멜란골로에서 또 하나의 과제는 ‘살림집’과 ‘숙소’를 명확히 분리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이 부지는 구입 당시 이미 전 소유주에 의해 네 개의 독립된 생활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레베카는 그중 2층 구조의 메인 하우스(큰 거실·주방·침실 네 개)를 가족과 친구를 위한 공간으로 선택했다. 나머지는 게스트를 위한 공간이다. “빌라 전체 수용 인원은 18명이지만, 지금은 최대 여섯 명까지만 맞이해요. 운영 규모를 줄인 덕분에 집의 고요함과 프라이버시가 유지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언덕 위에 자리한 카사 멜란골로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테라스형 정원 구조 덕분에 야외 공간을 넉넉히 열어두어도 동선이 겹치지 않는 편이다. 게스트는 수영장 두 개와 채소 정원, 피자 오븐과 바비큐 시설을 갖춘 야외 키친을 중심으로 하루를 보낸다. 사우나와 작은 짐, 해먹과 라운지체어가 놓인 휴식 구역이 정원 곳곳에 흩어져 있고, 레몬·오렌지·올리브나무 사이로는 좌석 공간이 이어진다. 공간 곳곳에는 레베카가 보물찾기하듯 건져 올린 오브제들이 숨 쉬고 있다. 이탈리아 모데르나리아토modermariato의 정수로 꼽히는 잔카를로 피레티Giancarlo Piretti의 브라운 컬러 알키Alky 암체어는 이베이에서 운 좋게 찾아낸 최애 아이템. 벽면을 장식한 모로코 아티스트 브랜드 로랑스 LRNCE의 카펫은 이국적인 생동감을 더하고, 거실 한쪽의 빈티지 라운지체어는 세월의 멋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풀리아의 빈티지 딜러에게서 발견한 19세기 초 남부 이탈리아의 앤티크 접시 선반은 이 집의 역사적 뿌리를 단단히 지탱한다.

앤티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주방.
카사 멜란골로의 심장, 다이닝 경험
카사 멜란골로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게스트가 모이는 방식’이다. 이 집의 중심은 주방과 정원. 누군가는 수영장이나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방에서 쉬지만, 결국 사람들의 발걸음이 합쳐지는 곳은 늘 주방과 정원이다. 레베카가 말하듯 “음식은 우리가 보기에 문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표현이자, 우리의 사랑을 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레베카는 이곳에서 정원사 안토니오와 함께 유기농 채소밭을 가꾸고, 부지 곳곳의 올리브나무를 돌본다. 올리브는 수확해 압착한 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로 만든다. 안토니오는 매일 채소와 허브, 과일나무는 물론 집 안팎에서 함께 지내는 동물까지 꼼꼼히 살핀다. 이 리듬을 한층 확장하는 장치가 ‘게스트 셰프 레지던시’다. 레베카는 지난해 여름부터 게스트 셰프를 본격적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지원자를 볼 때 제가 확인하는 건 단순히 ‘유명 레스토랑 경력’이 아니라, 어떤 배경을 가지고 어디에서 일해왔는지, 다른 레스토랑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협업해본 경험이 있는지 같은 실제 운영의 맥락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은 셰프가 주방을 혼자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최대 35명까지 소화할 수 있는 경험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죠.” 이 기준은 ‘이벤트성 초대’가 아니라, 카사 멜란골로의 주방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유지하기 위한 최소 조건에 가깝다.

올리브를 직접 수확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생산하고, 수제 잼과 토마토소스도 만든다.

게스트 셰프가 요리한 음식.
레지던시에 참여한 셰프들은 대체로 정원에서 수확한 제철 재료와 허브를 바로 사용한다. 동시에 고수나 시소처럼 이탈리아 남부의 일상 식재료로는 익숙하지 않은 재료를 더하는 실험도 즐긴다. 레베카는 이런 변화가 이곳의 식탁을 ‘관광지형 음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으로 만든다고 본다. 최근에는 바나나, 망고, 패션프루트 나무까지 심었다. 다양한 나라의 요리를 만들 수 있도록 정원부터 재료의 기반을 넓혀가는 셈이다. “우리는 다양한 나라의 요리를 만드는 것을 즐겨요. 셰프들이 자신의 배경과 서로 다른 조리 스타일을 우리 주방에 가져와주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벤트를 할 때 우리 손님들이 우리가 늘 접해온 전통적 이탈리아 요리와는 다른 무언가를 맛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레베카가 준비하는 오픈 디너와 아페리티보에도 주방은 열려 있다. 그날의 메뉴는 레베카가 고른 내추럴 와인과 나란히 놓인다.

게스트 셰프들은 이곳에서 여러 나라의 음식을 선보인다. 그러기 위해 다양한 식재료를 심는다.
게스트 셰프의 역할은 숙소 투숙객을 위한 식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레베카가 함께 준비하는 오픈 디너와 아페리티보 aperitivo에도 주방은 열려 있다. 그날의 메뉴는 레베카가 고른 내추럴 와인과 나란히 놓인다. “카사 멜란골로가 소렌토와 아말피 해안의 진짜 전통적인 면을 탐색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는 ‘가야 할 곳’이 되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레베카는 이곳이 셰프를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가 머무는 허브가 되길 바란다. 집처럼 편안하게 쉬되, 머무는 시간 자체가 창작욕을 자극해 결국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장소. 카사 멜란골로가 스스로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핵심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