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이 작가의 작품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안쪽 차실.
오감으로 느끼는 차의 시간
인사동의 오래된 기억을 품은 벽돌 건물이 티하우스 일지를 만나 새로운 호흡을 얻었다. 이곳에서는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정신적 고요를 되찾는 회복의 세계가 펼쳐진다.

찻자리에 놓인 다도구.

티하우스 일지의 외관.
티하우스 일지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것을 넘어 차를 알고 배우며 오감을 깨우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곳의 차는 인도·스리랑카·중국·대만 등지에서 생산한 최상급 찻잎을 엄선하여 정식 통관을 거친 차만을 취급한다. 약 20여 종의 차를 향·맛·농도별로 섬세하게 큐레이션하며, 차를 우리고 내리는 과정은 전문교육을 받은 직원이 맡아 차마다의 풍미를 극대화하고 일정한 맛을 구현한다. 우린 차는 티포트에 담아 제공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즐길 수 있다.

말차 오뜨와 디저트 메뉴 우유 모찌.

오래된 건물이 지닌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살린 1층. 고요하게 자리 잡은 라운지에서 쉼의 시간을 갖는다.
공간 전반에는 동양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일지만의 감도가 드러난다. 곳곳마다 밀도감과 머무는 방식을 달리해 다양한 감각과 경험이 이어지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 1층은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여백을 남겨 차와 향의 본질에 집중하도록 했다. 누구나 가볍게 들러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라운지와 바, 차를 천천히 음미하며 대화하기 좋은 프라이빗 티룸으로 구성했다. 안쪽에는 작은 화단을 조성해 도심 속 쉼의 순간을 느낄 수 있다. 2층의 ‘갤러리 일지’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맞닿은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는 곳이다. 작품을 차분히 감상할 수 있게끔 공간감을 살린 오픈 라운지와 차, 향, 예술적 장치가 어우러진 작은 티룸이 함께 자리한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11길 23
영업시간 티하우스 일지_ 오전 11시~오후 8시 30분, 갤러리 일지_ 오전 11시~오후 7시(월요일 휴무)
문의 @teahouse.ilji @gallery.ilji

티하우스 일지 정진단 대표
Q 티하우스 일지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A 이루향서원이라는 향도·다도 전문 교육기관에서 시작된 만큼 하나의 교본 같은 차를 제공해요. 차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게 어떤 맛이 맞는지, 어떻게 마시는지를 알아야 맛에 대한 기준이 잡히고 차를 알게 되거든요. 이곳에서는 전통 공법에 따라 제대로 만든 차를 전문적 기술로 우려내, 언제나 같은 맛을 구현해요. 차의 정석에 가까운 맛을 경험할 수 있죠.
Q 메뉴는 어떻게 구성했나요?
A 차는 인도, 스리랑카, 대만, 중국 각지와 제주도까지 다양한 산지에서 엄선해 녹차·백차·황차·홍차·우롱차·흑차 총 26종으로 마련했어요. 말차 메뉴에는 올해 새롭게 개발한 ‘말차 오뜨’가 있는데, 아이도 함께 마실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오트밀크를 사용했어요. 레시피에도 많은 고민을 기울였어요. 차마다 적정량과 우리는 시간까지 세심하게 연구했죠. 너무 부드럽게 마시는 것보다 차가 지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비교적 진하게 우려내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Q 새로운 공간을 통해 나누고 싶은 경험은?
A 같은 차를 마시더라도 어떤 공간에서, 어떤 잔에 담아 마시느냐에 따라 맛도 인상도 달라져요. 차를 마시는 공간인 만큼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자연이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벽체를 안쪽으로 들여 공간을 내고, 그 자리에 작은 화단을 조성했습니다. 티하우스 일지는 차를 즐기는 데서 더 나아가 아름다운 작품과 기물, 좋은 음악, 편안한 자리와 함께 쉬어갈 수 있는 문화 공간 같은 장소가 되길 바라요.

24개로 이루어진 작가의 단어가 시선을 끈다.
대지의 시간을 품다
갤러리 일지를 장식한 첫 전시는 옻칠 공예가 박수이 작가의 <물질의 시(The Poetry of Material)>. 박수이 작가의 옻칠 바스켓 ‘밭’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에서 지정한 우수 공예품에 선정되면서 이를 계기로 갤러리 일지와 함께 전시를 개최하게 됐다. 이번 전시는 옻·흙·천·나무 등 자연 재료를 겹겹이 쌓아 올리며, 대지에 스며든 시간과 기억을 조형 언어로 풀어온 박수이 작가의 작업 세계에서 출발한다. 대지를 시간과 기억이 켜켜이 축적되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을 옻칠이라는 작가만의 문법으로 해석했다.

경계의 담을 구조화한 옻칠 오브제로, 단절을 나누는 선을 소통이 흐르는 틈으로 전환한다.

작품 ‘물질의 시_수없이 겹쳐 쓴 시’.
전시는 두 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옻을 바르고 덮고 갈고 기다리는 반복 속에서 축적된 시간을 평면 작업부터 설치, 일상 기물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땅이 품은 시간의 표면을 보여주는 Part 1은 자연에 축적된 시간의 층위를 옻칠 색과 두께, 결의 차이로 구현한다. Part 2는 대지의 시간이 형태로 피어나는 장면을 담는다. 삼베로 틀을 잡고 수차례 옻칠을 더해 단단한 형태로 완성한 작품들은 땅에 깃든 결과 시간성, 장인 정신에서 비롯된 자연의 깊이를 전한다. 옻칠 바스켓을 중심으로 박수이 작가의 다양한 공예품을 선보이며, Part 1과 다른 분위기로 일상 속에서의 쓰임과 감각을 강조한다.

오래된 건물의 결이 박수이 작가의 작품과 하나가 된다.
박수이 작가의 전시는 12월 30일까지, 1월 9일부터는 고미술 전시가 이어진다.

박수이 작가
Q 대지를 주제로 옻칠 작업을 풀어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옻칠은 바르고, 기다리고, 다시 갈아내는 반복 작업을 통해 서서히 깊이를 만들어가는 재료예요. 이 느린 순환의 리듬은 대지가 형성되는 방식과 닮아 있고, 인간의 의지로 빠르게 완성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옻과 흙을 통해 대지를 ‘재현’하기보다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의 감각을 표면 위로 옮겨오고자 했습니다.
Q 티하우스 일지의 첫 전시를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관계 맺길 바랐나요?
A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을 ‘보는 대상’이라기보다 공간의 일부이자 시간을 감각하는 장치로 두고 싶었어요. 티하우스 일지는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체감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에 작품이 전면에 강하게 나서기보다 공간의 기류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랐어요.
Q 최근 KCDF 우수 공예품으로 지정됐습니다.
A 옻칠 바스켓 ‘밭’은 제 작업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에요. 재료를 대하는 태도와 시간에 대한 관점을 명확하게 보여줘요. ‘과정 그 자체의 밀도’가 하나의 응축된 형태로 드러나죠. 이번 전시는
그 작품에서 출발해 작업을 대하는 태도와 질문을 더 넓은 공간으로 확장해보고자 한 시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