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펫과 마루, 주방 시스템과 가구까지 집과 상공간을 채우는 모든 재료를 선별해 소개하는 유앤어스 백명주 대표는 내가 아는 선에서 가장 진취적인 사업가 중 한 명이다. 정보와 영감을 주는 책과 방송, 사람과 공간에 늘 안테나를 세우며 일과 중 많은 시간을 그걸 해독하는 데 할애한다. 그림과 작가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다름 아닌 컬렉터이듯 팽이 돌듯 휙휙 바뀌는 세상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이도 사업가라 생각하는데, 백명주 대표는 그중에서도 늘 선두 그룹에 포진해 있다. 그녀가 27년 만에 집을 공개한다고 했을 때 드디어 사업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싶어 설렜다.

삶을 지탱해줄 편안함과 아늑함을 중심에 두고 레노베이션한 집. 데이터 기반의 정찰제를 무기로 매년 수백 퍼센트의 매출 성장세를 기록 중인 인테리어 플랫폼 아파트멘터리와 함께했다.
“사실 제가 많이 망설였어요. 이렇게 집을 공개하는 것이 제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뾰족하게 꾸며놓은 좋은 집도 워낙 많잖아요. 저 스스로도 납득할 겸 우리 집 철학 서사를 한번 정리해봤어요. 챗GPT의 도움도 좀 받았고요.(웃음) 한번 읽어봐주세요.” 취재 현장에서 ‘우리 집 철학 서사’ 같은 리포트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파일첩에 담긴 종이를 쓱 훑어보니 장장 네 장이었다. 마지막 문단은 요약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괄호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포인트 정리!’ 술잔을 들 일도, 밥 먹을 일도 많은 12월에 취재 일정을 잡으며 그녀의 바쁜 스케줄을 확인한 터라 더 놀랐다. ‘우리 집 철학 서사’에 담긴 내용을 살짝 소개해보자면 이렇다.

김동준 작가의 달항아리. 백명주 대표는 옷이나 백 대신 그림과 공예를 오랫동안 모아왔다.
“본질은 이겁니다. 가장 잘 꾸민 집을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사업가로 27년을 살아온 방식이 어떤 결로 정리되었는지를 나누는 것. 한때 꽉 채운 공간이 주는 활기를 즐겼지만, 지금은 나를 오래 지탱해줄 기능과 안락함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후반전을 단단하고 편안하게 지켜줄 구조에 대한 신뢰와 갈망이 있습니다. 끝끝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많지 않더라고요. 소파와 라운지체어, 넉넉한 크기의 테이블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이건 취향의 후퇴나 에너지의 소멸이 아니에요. 삶의 균형감을 위한 전략적이고 진심 어린 선택입니다. 카펫부터 가구까지 여러 브랜드를 소개하지만, 집이 쇼케이스가 되는 건 원치 않습니다. 실험실이 되는 것도요. 그 때문에 오랫동안 검증된 것들로만 채웠습니다. 그림도 다 걸지 않았고요. 더 많이 가지는 삶에서 더 잘 사는 삶, 더 오랫동안 편안한 삶으로 생각의 무게중심이 바뀌었습니다.”

한지에 아이코닉 가구를 인화한 남종현 사진가의 작품과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길연 대표가 선물해준 나무 함.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새삼 나이가 들어 좋은 삶에 관해 생각했다. 젊을 때는 좋다는 가구와 그림, 조명을 열렬히 흡수하고 또 갖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이지만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더 좋은 것, 진짜 좋은 것으로 취향의 리스트가 정리되고, 간소한 옵션만으로도 편안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서 “집에 빈 벽이 없어요”라고 한숨을 쉬지만, 막상 그림이 넘쳐나는 구간을 지나면 빈 벽이야말로 최고의 여백이자 ‘그림’임을 깨닫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나무 장과 이건용 작가의 소품, 이강소 작가의 대작과 박종선 작가의 나무 의자가 편안한 조화를 이루는 거실 전경.

백명주 대표는 사업가인 동시에 ‘읽는 사람’이다. 지금의 트렌드와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을 경계해 끝없이 읽는다. 지난 주말에는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 완독.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인데 시각적 화려함보다는 편안한 바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공간이 견인하는 회복 탄력성도 분명히 있거든요.”
공간이 견인하는 회복 탄력성을 위하여
1998년 항해를 시작한 이래 유앤어스(www.youandus.co.kr)는 계속해서 크고 작은 사업 영역을 개척해 왔다. “유앤어스를 세우기 전 고려합섬이라는 회사에 다녔어요. 한국 30대 기업에 포함될 만큼 큰 회사였지요. 텍스타일 기획팀에서 일한 덕분에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녔는데, 왜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많은지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카탈로그를 한 권이라도 더 가져오고 싶어 욕심을 내다 보면 가방이 터질 것처럼 볼록해지고, 수화물 허용 무게를 초과해요. 그럼에도 추가 비용을 내고 아득바득 들고 왔지요. 현장에서는 접사 렌즈가 딸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디테일 컷을 찍었고요. 1997년 IMF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저도 독립을 했어요. 무역 쪽을 잘 아는 후배와 유앤어스를 창립한 거죠. 그런데 시작부터 사업이 너무 잘됐어요. 스위스 패브릭 브랜드 크리에이션 바우만의 카사블랑카 시리즈가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어요. 월 기준 3천~5천만 원만 팔면 되겠다 싶었는데 1억 원을 찍었으니까요. 이후 패브릭 브랜드를 공격적으로 늘려갔는데, 그 이면에는 패브릭에 대한 순수한 애착이 있었어요. ‘정말 아름답다’ 하고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사업이 커지고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합류하면서 또 한 번 변곡점을 맞았어요. 어느 날 남편이 왜 패브릭만 하느냐?’고 묻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더라고요. 이후 마루 같은 마감재로 사업을 확장했고, 아파트 단지와 대기업이 우리 제품을 선택하면서 지금의 기틀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주방 한쪽에 마련한 ‘쉼표’. 최고의 럭셔리는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현관에 있는 테이블과 조지 콘도의 작품. 대가의 작품은 크기와 상관없이 존재감이 막강하다.
최근 10년으로 구간을 좁혀도 유앤어스의 진화는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8년 전에는 세계 3대 하이엔드 주방 시스템으로 명성이 높은 아크리니아를 들여왔고, 2020년에는 마감재 브랜드 무니끄를 론칭했다. 집 안 곳곳에 있는 벽이 그 자체로 ‘예술’이 되면 어떨까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브랜드였다. 언뜻 정상화와 박서보 작가의 단색화를 연상케 하는 이 마감재는 나무와 찰흙 위에 특정 무늬를 담은 금형을 찍어 완성하는데, 돌담의 표면이나 매듭의 짜임 같은 독특한 질감과 패턴을 고스란히 갖고 있어 거실 벽면이나 옷장, 침실 위 벽면에 ‘예술적 무늬’를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인테리어 혁신 스타트업인 아파트멘터리와 조인트 벤처인 유앤에이코퍼레이션을 설립했다. 아파트멘터리는 프로젝트마다 전담 매니저를 배정하는 표준화된 프로세스와 견적 시스템, 공사 현황과 마감 체크, AS까지 전 과정을 전용 앱을 통해 진행하는 데이터 혁신 기업. 2016년 창업 당시 매출액이 9억 원이었는데, 지난해 6백45억 원으로 약 70배가량 치솟았다. 백명주 대표의 방배동 아파트 레노베이션도 아파트멘터리가 파트너로 참여해 진행했다.

백명주 대표가 편애하는 아크리니아 주방 시스템. 각각의 유닛이 건축 오브제처럼 아름다운 데다 주방의 동선과 흐름을 면밀히 조율해 편안하면서도 고요하게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스텔라웍스 아뜰리에 소파와 샌드라 버뮤데즈의 검은색 부조 그리고 허명욱 작가 옻칠 테이블의 조화.

다이닝 테이블 옆으로는 노기쁨 작가의 페인팅을 걸었다.
“함께 회사를 만들었으니 제게도 경험 데이터가 필요했어요.(웃음) 모든 진행 상황과 의사 결정이 현장 사진과 함께 전용 앱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와볼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가장 신경 쓴 건 네 가지예요. 동선이 편안하고, 수납이 충분하며, 벽장 같은 마감재의 표면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시간이 지나도 흐트러져 보이지 않을 것. 더 편안하고, 더 단정한 집의 시간을 원했기 때문에 특히 수납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수납으로 삶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책을 많이 읽는데, 평소에는 안 보였으면 해서 별도의 책장을 따로 만들어 다 숨겨놓았지요. 암막 커튼은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아이템이에요. ‘어둠의 가치’라는 게 분명히 있더라고요. 눈에 보이는 스타일보다 살아보며 느끼는 편안함이 우선이라는 것도 절감했습니다. 대대적 변화를 준 곳은 주방이에요. 유앤어스에서 수입하는 아크리니아를 들여왔거든요. 조리 공간도 넓고, 공간 디자인도 정교하게 짜임새가 있고, 스테인리스와 나무로 만든 유닛들이 그 자체로 하나의 건축물 같아서 요리를 더 자주 하게 돼요.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인데, 시각적 화려함보다는 편안한 바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공간이 견인하는 회복 탄력성도 분명히 있거든요.” 아티스트 허명욱은 테이블웨어와 옻칠 회화에 워낙 다양한 색을 쓰는 까닭에 작업실의 모든 가구와 조명을 검은색으로만 들여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옷도 검은색만 입는다. 그렇게 바탕을 검은색으로 통일했을 때 다른 색이 더 생생하고 감각적으로 와닿기 때문인데, 백명주 대표의 바탕을 만드는 작업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시간을 보내는 영감과 휴식의 방. 정진화 작가와 구사마 야요이 작가의 소품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인터뷰 말미, 그녀에게 앞으로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에 관해 물었다. “하이엔드의 끝은 결국 자연이에요. 원초적인 동시에 초월적 감각을 주는 것은 자연 속에서 보고 느끼는 오감밖에 없거든요. 그 무늬, 그 촉감, 그 향기를 구현하는 곳이 하이퍼 럭셔리의 리더가 될 거예요. 하나가 더 있는데, 요즘 부호들은 브랜드 가구에 가슴 설레지 않아요. 그 가구들을 살 수 있는 계층이 한층 넓어졌거든요. 이제 그들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를 들여옵니다. 건축가나 디자이너, 공예 작가와 함께 만든 비스포크 가구가 바로 그거예요. 최근 한 주상 복합 브랜드가 홍보관을 만들었는데, 건물 자체에 많은 공을 들였더라고요. 그곳에는 우리가 알 법한 브랜드 가구가 없었어요. 대신 원화가 걸려 있었지요. 헨지 같은 하이퍼 가구 브랜드는 최고 등급의 돌이 나오는 돌산이 있으면 아예 그곳 자체를 구입해버려요.

공간에 입체적 화사함을 불어넣는 테일러 화이트의 작품.
그 산의 돌로 만들 수 있는 가구 개수가 곧 리미티드 에디션이 되는 구조지요. 그런 점에서 한국 공예의 미래는 밝다고 봐요. 지금까지 작가들이 생활 소품 위주로 만들었다면 지금부터는 가구는 물론 설치미술에 버금가는 큰 작품을 만들어도 좋고요.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플랫폼을 소유한 사람이 기회를 얻을 거예요.” 심플하고 단정하게 꾸민 집에서 백명주 대표는 오늘도 열심히 읽고 보고 듣고 쉰다. 인터뷰 다음 날, 그녀의 SNS 스토리에 올해 가장 많이 본 유튜브 채널 다섯 개가 올라왔는데, 그중 세 개만 소개하자면 ‘김작가 TV’ ‘언더스탠딩: 세상의 모든 지식’ 그리고 ‘띱Deep’. 2026년이면 예순인 그녀가 40대인 필자보다 20년은 더 ‘왕성하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