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 연구가 이윤서의 서랍
풀과 열매로 하루를 채운다. 차를 마시고 향을 사르며 깨진 그릇을 수선한다. 어찌 보면 무용해 보이는 아름다움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 힘을 길어 올려 내 안의 불안과 결핍을 다독인다.
본다는 건 일종의 반응에 가깝다. 어디선가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에 따른 반응으로 시선이 옮겨가는 것처럼,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의식하지 않아도 두 눈으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연다는 건 보는 일보다 좀 더 복잡한 행위다. 우선 눈앞에 어떤 사물이 있는데, 이것이 여닫을 수 있는 물건이라는 걸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다음으로 닫혀 있어 볼 수 없는 너머에 무엇이 있을 거란 상상력이 필요하다. 종국에는 몸을 움직여 그 사물을 열겠다는 의지 또한 발휘해야 한다. 그러니 연다는 건 보는 것보다 능동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차 연구가 김은경과 목공예가 김민욱의 서랍
나무를 깎고 남은 톱밥과 나뭇조각, 바다에서 주운 돌, 조개껍데기, 말린 미역.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나 소중히 여기지 않는 파편들. 어떤 이에게는 쓰레기투성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조각이야말로 우리 둘의 모습을 아주 조금은 설명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닐까.

사진가 안지섭의 서랍
사진가로 살며 주변 사람에게 카메라 관련 소품을 참 많이 선물받았다. 소중한 선물들과 함께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김성근 감독과의 인터뷰 사진을 넣었다.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준 만년필과 30년 넘은 잉크를 발견했다. 삶에 새겨진 소중한 추억과 시간의 흔적을 되찾은 기분이다.
드러냄과 감춤을 분별하는 창구
한 아이가 있었다. “책상 위에서 하는 것이 네 미래를 결정한다”는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아이는 교과서보다 훨씬 큰 카탈로그를 펼쳤다. 쉼 없이 페이지를 넘기던 손은 이내 한 페이지에 멈춰 섰다. 모양이 제각각인 서랍이 딸린 커다란 책상. 아이의 손가락이 그것을 가리켰다.
‘손이 잘 닿는 서랍은 누구나 열기 쉬우니 나만 보고 싶은 물건을 넣은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넣어야지’. 드르륵, 서랍을 수차례 여닫으며 누구에게나 보여줄 것과 나만 볼 것의 분별을 몸소 배우기 시작했다. 서랍이 내밀한 장소가 된다는 것도 그 무렵 깨달았다.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는 불어불문과에 입학해 생경한 단어의 미로 속을 헤매다 ‘뷰로bureau’라는 단어를 만났다. ‘서랍이 딸린 책상’을 뜻하는 단어를 그는 기억이란 수납장에 넣어두었다. 프랑스 파리 유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2009년, 그 단어를 조심스레 꺼냈다.

편집자 강정원의 서랍
책을 만드는 과정은 많은 사람과 협업을 요한다. 그 단계를 거친 뒤 마주하는 교정의 순간은 중요한 의식에 가깝다. 지루하면서 집중을 요하는 시간. 향을 피우고 커피를 내리고 필사를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익숙한 필통, 문진, 나무 자를 꺼내 교정을 시작한다. 가장 내밀하고도 편안하며 상징적인 시간의 도구. 오래된 서랍을 여는 나만의 리추얼.

침선 공예 작가 김영은의 서랍
서랍에는 시간의 궤적, 잊을 수 없는 미적 원형이 잠들어 있다. 유학의 불안 속 푸른 잉크로 토해낸 다짐과 침선의 고민이 담긴 습작은 전통과 현대의 조형미를 엮어내려는 예술적 뿌리가 됐다. 사랑하는 이가 만들어준 에보나이징 트레이에는 언제나 바늘과 실을 놓는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문지윤의 서랍
유학생 시절 파리에서 쓰던 짙은 올리브그린의 이케아 철제 캐비닛 서랍. 흔하디흔한 제품이지만 버리는 대신 함께 귀국하길 택했다. 학생증, 유학 시절 쓰던 아이팟 미니, 고무 활자판이 담겨 있던 작은 나무 상자와 회사 이름이 새겨진 도장. 늘 배우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선언으로서의 서랍. 그 시절 나의 목표와 다짐을 환기시키는 매개물. 천연 염색, 직조, 경상도 내림 음식, 차와 커피, 도자, 얼마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검 프린트 기법까지. 지금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무엇이든 배우려 한다.
서랍에 ‘ㅇㅇ’을 넣어두었다
책상에서 꿈을 꾸고 서랍 속에 자기만의 방을 만든 뷰로 드 끌로디아 대표 문지윤. 그가 33명의 서랍을 그러모았다.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물건이랄지, 귀중한 사물보다는 지금의 당신을 이루는 과거의 조각이나 현재의 증거를 담아달라고 청했다.
여기 그 일부가 담겨 있다. 완결된 형식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모양으로 담긴 순수함, 다시 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상흔, 꾸밈없이 그저 그 자체로 어여쁘던 어느 나날의 잔향이 선물처럼 들어있다. 흩뿌려진 사물은 본래 말이 없다. 그런데 서랍에 담긴 물상은 어쩐지 소곤소곤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서랍 속 사물을 살펴본다. 그들 사이의 행간을 유추해본다. 서랍을 여는 건 타인의 웅숭깊은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자 스스로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능동태다. 각자의 서랍을 열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