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츠 한센 서초에서. 박근하 대표가 앉은 에그 라운지체어와 풋 스툴은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걸작. 자신의 차고 한쪽에서 와이어와 회반죽으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벽한 셸 구조를 완성했다. 조명등은 루이스 폴센의 VL 45 라디오하우스 펜던트, 테이블은 하이메 아욘이 디자인한 아날로그 테이블, 그 위 화병도 하이메 아욘이 디자인한 이케루.
박근하 루밍 대표
“루밍이 지금처럼 대출도 투자도 없이 비교적 건강한 회사로 성장한 건 ‘매출 목표’보다 ‘지향점’에 집중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스토리텔링이 그 지향점의 증명이고요. 이걸 확장해 루밍 디자인 뮤지엄을 만들고 싶다는 꿈도 꿔요.”
Rooooooooooooooooooom+ing 본래 모든 일(work)에는 단단한 ‘뼈’ 또는 ‘소금’(샐러리맨의 salary가 원래 소금이란 말에서 왔다)이 있다. 일을 기쁨이라고 부르는 사람에게든, 반대로 슬픔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든. 인생의 다른 부분과 달리 일은 늘 한 끗이 모자라다. 순수한 기쁨을 느끼기에, 또는 순수한 슬픔을 느끼기에는 그 무언가가 빠져 있다.
바로 갈망, 그것도 지속적인 갈망. 16년 전 서래마을 언저리 스타일리스트 사무실에서 시작한 루밍이 건재하는 그야말로 여전히 건강하게 존재하는 까닭은 바로 저 ‘갈망’ 덕분일 것이다.
“숍을 운영하겠다는 생각으로 루밍을 연 게 아니었으니까요. 리빙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면서 모은 소품이 여덟 평짜리 사무실에 가득했어요. ‘이 물건 대체 뭔데 계속 끌려? 사용감은 또 왜 이리 편해?’ 궁금해서 계속 보고, 알고 보니 아무개 디자이너 제품이고, 거기에 이러저러한 스토리가 담겨 있고, 알고 나니 더 끌리고, 그 디자이너가 더 궁금해져 디자인 투어를 가고…. 디자인 덕후의 흔한 사이클이죠. 그 여덟 평은 임스의 코끼리 의자도, 북유럽 썰매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컵도 있는 ‘방배동 보물 창고’였어요. 디자인 애호가의 스튜디오로 미디어에 소개되고, 화보에 실린 연락처로 ‘그 물건 살 수 있어요?’ 문의가 오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room+ing이 되었죠.”
공예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 월간 <디자인>에 실린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안나 지 와인 오프너 사진을 오려 붙일 때부터, 졸업 후 10년간 한샘 매장 디스플레이와 지면 촬영을 스타일링할 때부터 그는 그 사물들에 빠져 있었다.
“아름다운 사물의 힘을 알아버렸거든요. 이를테면 브루노 무나리가 1997년 스와치와 협업한 ‘프리 오브 템포’라는 시계가 있어요. 숫자가 쓰인 동그라미들이 다이얼 안에서 유영하는 시계인데, 거기에 ‘자유의 시간’이라 이름 붙인 거죠. 그런 생각을 디자인으로 구현하다니, 진짜 천재 맞죠. 그 브루노 무나리의 제품은 어디서 만드나 찾아보다, 다네제 밀라노에 연락하고, 그러다 어느새 수입까지 하게 되고….”
그가 몰두한 건 그저 꽃병 하나, 모카 포트 하나가 아니었다. 세기의 디자이너들이 가장 정교하고 심미적이며 실용적인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몰입한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쓰는 이의 삶에 개입하고,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휴식이든 긴장이든 감정을 불러오는 물건. 그것에 대한 갈망이 디자인 덕후 박근하를, 그리고 루밍을 만들었다.
스토리텔링이라는 영업 비밀
루밍은 박근하 대표를 매료한 특정 사물의 ‘스토리텔링’으로 성장했다. 방배동 보물 창고 시절부터 그랬다. 손님이 오면 평소 잘 쓰는 알도 로시 모카 포트에 커피 한잔 끓여 건네고는 루밍에 도열한 제품의 스토리를 풀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 “알바 알토의 아르텍 스툴은요, 80년 된 나무를 잘라서 만들어요. 그런데 마이너스 탄소 제품도 부지기수라나. 나무가 몸에 품은 탄소량보다 스툴을 제작할 때 생긴 탄소량이 더 적은 거예요.” 또 이런 식. “프리츠 한센의 수퍼엘립스 테이블은 수학자가 만들었어요.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타원 각도, 여러 명이 앉아도 불편하지 않는 구조를 연구한 거예요. 그런데 정말 우아하기까지 해요, 어쩜.”
무엇보다 디자인 제품은 장갑 끼고 영접해야 하는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다 만져보고, 다 써보세요”라며 곳간을 열었다. 직접 써본 손님은 자연스레 “저 이거 살래요”가 됐다. 가구가 아니라 소품으로 시작한 회사라는 점도 주효했다.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가구점 대신 가볍게 소품 사러 루밍에 들렀다가 계속 눈에 밟히는 가구까지 사 들고 가는 식이었다. ‘신발 벗고 들어가야 하는’, 박근하 대표가 지금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두 번째 루밍 매장도 소비자에겐 특별한 경험이 됐다. 기왕 신발 벗은 김에 이것저것 들여다보고 써보며 오래 머물게 되더란 말이다. 엄마 따라온 어린이들 덕분에 어린이 가구 매출도 쭉쭉 올라갔다. 어린이가 좋은 디자인을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 또한 자연스럽게 풀렸다. 이쯤 되면 공예가 아니라 마케팅 전공이라 봐야 한다.
“루밍의 ‘월간 디자이너’도 같은 맥락이에요. 2019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8년째로 접어드는데요, 매달 디자이너 한 명을 집중 소개해요. 우리는 브랜드를 상품화하기보다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접근하고 싶었거든요. 엔초 마리, 찰스&레이 임스, 알바 알토, 장 프루베처럼 해마다 들어가는 중요 디자이너가 대여섯 명 정도 되고요. 그해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디자이너라든가 한국에 덜 알려진 디자이너를 더해서 소개해요. 말 그대로 ‘소개’하는 거예요. 잉가 상페라고 유명한 그림책 작가 장 자크 상페의 딸인데, 외국에선 꽤 유명한 디자이너죠. 자신은 그렇게 노출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제품을 보면 되게 시적이에요. 아무래도 아버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런 스토리를 고객에게 들려드리면 눈이 반짝 빛나요. 루밍이 지금처럼 대출도 외부 투자도 없이 비교적 건강한 회사로 성장해온 건 ‘매출 목표’보다 ‘지향점’에 집중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스토리텔링이 그 지향점의 증명이고요. 이걸 확장해 루밍 디자인 뮤지엄을 만들고 싶다는 꿈도 꿔요.”

이 테이블이 박근하 대표가 설명한 수퍼엘립스 테이블.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트 헤인이 디자인에 참여한 제품으로, 별도의 상석 없이 포용적 환경을 만들어준다. 윗부분만 보이는 의자는 아르네 야콥센이 1957년 덴마크 아트 앤 디자인 박물관 봄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그랑프리 체어. 캔들 홀더는 하이메 아욘이 디자인했다. 공중에 떠 있는 물방울 같은 조명등은 감프라테시의 서스펜스 램프 시리즈.
생활을 디자인하면 행복이 더 커진다
요즘 그가 몰입한 디자이너는 알바 알토다. 형태감이 강한 디자인에 끌리던 예전과는 달리 눈에 띄는 변화다.
“알바 알토의 디자인은 타깃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누구나 쓸 수 있는 민주적 디자인에 매우 기능적이에요. 아르텍 스툴 60만 해도 쌓아서 높은 테이블로 쓰다가, 화분을 올려두는 사이드 테이블로 쓰다가, 세면대 앞에 두고 앉아서 양치하는 용도로도 써요. 의식조차 못 한 채 제 일상에 스며든 디자인이죠. 생김새도 고압적이지 않으면서 조형미가 뛰어나요. 내년쯤 남편과 알바 알토 건축 투어를 떠날 계획이에요(디자인을 전공하고 밀라노에서 오래 유학한 남편 김상범 씨 또한 유난한 디자인 애호가다).
이미 알토 별장, 알바 알토 뮤지엄, 이탈리아 리올라의 성당, 파이미오 요양원은 다녀왔고요.” ‘성공한 덕후’ ‘덕업일치’. 박근하 대표의 오늘을 무엇으로 부르든 개의할 필요 없다. ‘좋은 디자인은 좋은 일상을, 지혜로운 디자인은 지혜로운 삶을 만든다’는 믿음으로 어렵사리 좋은 물건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자신의 생활 미학을 드높여온 디자인 애호가. <행복>의 캐치프레이즈 ‘생활을 디자인하면 행복이 더 커지는’ 기쁨을 일찌감치 깨달은 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디자이너가 땀 흘린 노작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 그는 그렇게 대한민국 리빙 신의 대표적 영향력자가 되었다. 박근하 대표가 게스트 에디터십을 발휘해 소개하는 K-리빙의 인상적 장면들, 곧바로 이어진다.
글 최혜경 | 사진 이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