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디자이너 김예진 @mzm_archive

오랫동안 모아온 가구와 오브제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김예진 대표의 집. 1층은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장소다.

컬렉터로서, 크리에이터로서, 무제움 디렉터로서 그를 말해주는 순간들. 왼쪽 아래 양유완 작가의 유리잔, 고우정 작가의 그릇은 무제움 에디션. 오른쪽 아래 오브제는 그가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 꼽는 고우정 작가의 작품.
건축 대신 가구를 샀다
2023년 가을, 빈티지 가구 편집숍 ‘무제움Muzeum’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이 방대하고 독특한 컬렉션을 모아온 이는 대체 누구인지. 무제움 김예진 대표는 20년 가까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빈티지 가구를 수집해왔다. 그 여정이 처음 시작된 순간은 대학 시절의 가구 수업이었다. 수업 과제로 리트벨트 슈뢰더 하우스의 레드블루 체어를 만들면서 그는 과거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워지기를 택한 모더니즘의 사조에 깊이 매료됐다. “사실상 디자인은 모더니즘이 등장하던 시기에 대부분 정의되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 언어를 각자의 무드로 해석하고 변주하는 단계이지,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은 거의 없다고 봐요.” 이후 기회가 될 때마다 그 시대 건축가의 디자인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바르셀로나 체어를 보기 위해 스페인으로, 아르네 야콥센의 건축과 가구를 만나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향했다. 살아본 적 없는 황금기를 동경하며 시간 여행을 떠나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 펜더처럼.

구프람의 칵투스 코트 랙, 불탑의 캐비닛, 칼톤 북케이스가 놓인 주방 겸 다이닝 공간. 불곡산이 바로 옆에 자리해 여름이면 바깥으로 푸른 녹음이 가득 펼쳐진다.
당시 건축가들은 자신이 설계한 건물의 의자 하나까지 직접 디자인했다. 건축을 이루는 모든 요소에 건축가의 생각이 녹아들어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이뤘다. 그 세계의 조각을 하나씩 모은 것이 지금의 컬렉션이 되었다. 그는 수집한 가구들을 집에 툭툭 놓아 두고 일상에서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는 일을 즐긴다. 각자의 역사를 지닌 가구에 김예진 대표의 시간이 추가되며 모더니즘의 탄생품은 자신만의 소장품으로 치환됐다. 그렇게 가구에 담긴 이야기가 하나둘 쌓이면서 쇼룸이자 작업실인 무제움을 열기에 이르렀다.

너른 계단이 만드는 탁 트인 공간감을 살리고 새하얀 캔버스처럼 마감한 2층은 오롯이 가구 감상을 위한 존이다. 에드라의 소파와 무제움의 가구가 하나의 장면을 만들고 있다.
“해외에서 컬렉팅한 가구를 집에 툭툭 두고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는 걸 즐겨요. 이리저리 옮기기도 하면서 가구의 새로운 맛을 계속 알아갑니다.”
20세기 가구 컬렉션 하우스
무제움과 같은 시기에 지은 이 집은 분당구 구미동 불곡산 자락의 조용한 주택단지에 자리한다. 이곳에 김예진 대표 부부와 두 아이, 그리고 부부가 오랜 시간 모아온 가구들이 함께 산다. 건축을 사랑하고 한때 건축가를 꿈꾸기도 한 그에게 집 짓기는 오랜 로망이었다. 취미인 페인팅, 매일 하는 운동, 마당에서의 바비큐와 야외 활동까지. 설계를 맡은 디자인오(design5.kr)는 김예진 대표가 집에서 누리고 싶은 모든 행위를 모아 330m2, 3층 규모의 주택에 질서 있게 담았다. 1층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어울리는 활기찬 장소로, 3층은 가족이 완벽하게 이완하는 휴식처로 구분했다. 주방과 거실이 있는 2층은 또 다른 추구미가 있다. 탁 트인 공간을 최대한 비우고 새하얀 바탕에 작품처럼 가구를 놓았다. 이곳에서 가구는 사용하기보다 감상하는 존재다.

다이닝 공간의 캐비닛 안에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사 모은 테이블웨어가 진열되어 있다.

1층 현관으로 들어오면 맞이하는 공간. 너무 지친 날에는 이곳 데이베드나 의자에서 한참을 머물다 가기도 한다.
그는 가구를 바라보며 눈을 정화하고 분주한 마음을 가라앉힌다. 가구들은 무제움 쇼룸과 작업실, 집의 경계 없이 그때그때 필요와 기분에 따라 자리를 옮긴다. 집에 들어온 뒤에도 고정된 자리를 지키는 대신 시시때때로 배치를 조정한다. 에토레 소트사스의 칼톤 북 케이스는 주방과 거실 사이를 부유하다 지금은 창가로 위치를 옮겼다. 다음엔 아래층으로 내려볼까 고민하는 중이다. 이렇게 계속 위치를 바꿔 써보면서 새로운 조합을 발견하고, 모르던 맛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의 일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계단을 집에 비해 크게 지어 공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 덕분에 공간감도 한층 풍성해졌다.

칼톤 북케이스에 그의 컬렉팅 여정을 시작하게 한 리트벨트의 레드블루 체어 미니어처를 놓아 두었다.
가구 수집 생활이 이뤄낸 것들
취미로 이어온 가구 컬렉팅이 무제움이라는 어엿한 업이 되면서 그는 가구와 함께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좋아하는 빈티지 가구를 소개하며 무제움의 정체성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들에게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무제움만의 디자인을 조금씩 선보이고 있다. “그때 그 시기의 디자인에 코리안 터치를 한 방울 섞어 어딘지 모르게 한국스러운 것, 그걸 무제움의 색으로 지니며 가고 싶어요.” 협업할 때도 국내 작가에게 집중하는 이유다. 금속 공예가 아미라와 함께 작업한 수납장, 유리 공예가 양유완과 만든 테이블웨어,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도예가 고우정의 달항아리 등 여섯 명의 작가와 컬렉션을 작업하며 무제움의 미감을 정제해나가고 있다.

저쿠지 옆의 쉬는 공간. 집 곳곳에 가구를 두고 앉을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해 집 옆에 작은 오두막을 하나 더 지었다. 이곳에선 차를 마시거나 그림을 그린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가구를 탐독하며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던 날이 모여 직접 디자인한 가구로 스스로의 세계를 표현하는 지금의 김예진을 만들어냈다. 빈티지 가구로 가득하던 집 또한 무제움의 가구가 어우러지며 또 다른 풍경을 지어간다. 그의 집은 자신의 세계가 변화해온 궤적이자, 지금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서로 다른 시간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모습으로 꾸준히 재탄생하는 빈티지 가구처럼 말이다.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이주연
김예진의 빈티지 가구 컬렉팅 영감 창고
1 컬렉터 힐러스 레이츠마Gilles Reitsma의 Studio 1 암스테르담 근교에 위치한 컬렉터 힐러스 레이츠마의 웨어하우스. 프리소 크라머르, 빔 리트펠드 등 1950~1960년대 네덜란드 디자이너의 작업을 주로 소개한다. 특별히 남다른 가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이 이곳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세세하게 들려주는 컬렉터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다. 이 창고 주변으로 다른 컬렉터들의 스폿도 많이 모여 있다.
2 반 고흐 뮤지엄 네덜란드에 갈 때마다 들르는 뮤지엄. 그가 보낸 고통스러웠을 창작의 시간을 마주하며 위안을 얻곤 한다.
3 SAS Royal Hotel 덴마크 북쪽에 갈 때면 꼭 들르는 호텔. 1960년대 북유럽 모더니즘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아르네 야콥센이 건축부터 인테리어, 가구, 조명, 문손잡이까지 전부 디자인했다. 건축가가 건축의 모든 미감을 관장하던 모더니즘 시대의 태도가 응축된 장소.
4 덴마크 디자인 뮤지엄 전시도 전시이지만 정원에 마련된 작은 카페를 무척 좋아한다. 고즈넉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이곳에서 본 야외 블루 체어가 아름다워
집 정원에 같은 것을 놓았다.
5 슈뢰더하우스 게리트 리트벨트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설계한 주택. 대학 시절, 리트벨트의 의자에 깊이 매료됐던 터라 실제로 방문했을 때 감회가 남달랐다. 몬드리안 회화의 구성과 색감을 건축으로 구현한 모더니즘 디자인의 역사적 장소다.
6 카페 무제움 아돌프 로스가 설계한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 빈 분리파가 활동하던 시기에 예술가, 건축가, 지식인이 모여 새로운 예술 사조를 논하던 사교의 장이었다. 무제움이라는 이름이 이곳에서 탄생했기에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