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채에는 도예가들이 만든 스프 그릇을 본래 그 자리에 있던 듯 고즈넉하게 전시했다.
사이사이, 자리자리를 채우는 스프의 시간
손수 부재를 깎아 결구를 맞추고, 기와 한 장까지 정성껏 얹어 완성하는 한옥은 그 자체로 한 점의 공예품이다. 노스텔지어 힐로재는 그러한 공예의 미학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생활 속에서 누리는 예술’을 강조하는 길연 이길연 대표가 공간은 물론, 가구와 작은 기물 하나까지 공예 작가의 손길로 채웠기 때문. 전통 한옥의 모습을 보존한 위채와 블랙&화이트로 모던하게 변신한 아래채의 조화가 돋보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지나온 시간의 아름다움을 고루 간직한 힐로재가 올해 오뚜기의 잇 프로젝트와 함께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무대로 변모했다.

아래채에서는 오뚜기 스프가 걸어온 55년의 역사와 더불어 오뚜기가 선정한 인물 4인의 스프 생활에 맞춰 디자인한 그릇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식품(eat)과 도구(it)를 잇는다’는 의미를 지닌 오뚜기 잇은 매년 하나의 식품과 그에 어울리는 식사 도구를 선정해 더 나은 식문화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다. 라면과 카레 그릇에 이어 올해의 주제는 ‘스프 그릇’. 1970년 4월, 한국에 최초로 분말스프를 선보인 이후 55주년을 맞이한 것을 기념하며 선정한 주제다. “라면과 카레가 든든한 한 끼라면 스프는 식전이나 식사 사이에 즐기는 음식입니다. 스프의 온기로 채워지는 틈새의 시간에 주목했어요. ‘사이사이, 자리자리’라는 콘셉트로 스프가 선사하는 따뜻한 일상을 되새기고자 했습니다.”

한정용 교수가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스프를 즐기기 위해 만든 나눔 그릇과 스프 볼 세트.
오뚜기 BX실은 지난해에 이어 서울대학교 공예과 한정용 교수, 도예가 20명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작가들은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관찰하고, 각자가 정한 스프에 어울리는 식음의 방식과 조형을 고민했다. 8개월여의 과정을 거쳐 완성한 5백여 점의 작품을 이번 행복작당 기간 힐로재에서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산타 크림스프의 출시 55주년을 기념하며 서울대학교 도예가들과 함께 디자인한 산타 머그.
아래채에서는 국내 첫 스프 제품인 산타 크림스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프의 역사와 변화를 조명하고, 위채에서는 작가들의 그릇을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듯 한옥 곳곳에 자연스레 전시했다. 관람객은 그릇의 형태와 먹는 방식을 살피고, 어떤 스프와 어울릴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하나하나 관심을 기울였다. 작가, 셰프 등 네 명의 인물을 도예가와 매치해 각자의 스프 생활에 맞는 그릇을 만든 것도 이번 프로젝트에 보다 몰입하게 한 포인트. 한정용 교수는 초등학생 아들이 직접 나누고 덜어 먹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나눔 그릇과 한 손에 잡히는 스프 볼로 구성한 세트를 제작했고, 유희송 도예가는 스프 볼과 빵이나 샐러드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플레이트를 준비해, 잠깐의 식사 시간도 나를 보살피는 순간으로 즐기는 무과수 작가의 스프 생활을 함께 채웠다.
목적도, 종류도, 재료도 다채로운 스프의 공통점은 뭉근하게 끓여내 따뜻하게 즐긴다는 것. 그 본질은 오래된 기와도, 현대 작가의 예술 작품도 조화롭게 품어내는 한옥과도 닮아 있다. 닮은꼴의 두 존재가 어우러지며 빚어낸 시간이 힐로재에 또 하나의 공예처럼 따스하게 자리 잡았다.
글 정경화 기자 | 문의 오뚜기(080-024-2311)
“스프는 스튜처럼 냄비에 끓여 먹기도 하고, 머그잔에 가루를 개어 간단히 마시기도 합니다. ‘사이사이, 자리자리’라는 말처럼 상황마다 즐기는 방식이 다양했어요. 그 다름을 수용하고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을 고민했습니다.”
_서울대학교 공예과 도예전공 한정용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