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닝 공간에 선보인 케이터링. 창문 너머로 해운대 뷰가 펼쳐진다.
행복작당 부산에서 색채의 에너지가 생생하게 드러난 공간은 단연 아파트먼트풀 스테이 41호였다. 독일 디자인을 테마로 한 이 객실은 프랑크푸르트 키친(여성 건축가 마가레테 슈테리호츠키가 1926년 사용자 동선과 위생 및 대량생산을 고려해 설계한 세계 최초의 모듈형 주방으로, 현대 주방 디자인의 기원이 된 혁신적 작품)을 중심으로 디터 람스, 에곤 아이에르만 등 바우하우스 정신을 계승한 기능주의 가구가 배치되어 현대 키친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여기에 아파트먼트풀 스테이에서 기획한 김보림 작가의 개인전 <보림이네 부엌>이 더해지면서 공간은 한층 따뜻하고 다채로운 온기로 채워졌다. 작가와 아파트먼트풀의 인연은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당시 이아영, 김성민 대표는 스테이 오픈을 준비하며 부산에 머물던 중이었다. “에케를 방문한 작가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어요. 저희는 공간에 어울릴 작품을 찾고 있었고, 작가님은 가구가 있는 공간에서 전시하길 원했죠. 서로의 필요와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자연스럽게 교류로 이어졌고, 이번 전시를 통해 협업의 결실을 맺게 됐다. “이번 전시는 자연의 순환과 계절의 감각을 담아내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벽에 거는 작품뿐 아니라 아티스트 굿즈, 꽃과 과일 장식 등을 함께 구성해 ‘스테이’라는 생활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연출을 시도했어요.”
김보림 작가는 과일이나 채소를 본뜬 세라믹 작품도 선보인다.
작가의 시그너처 인물 캐릭터가 그려진 각종 그릇을 행복작당 부산 기간 동안 판매하기도 했다.
한국과 독일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한 김보림 작가는 세라믹 ·도자·패브릭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주방, 거실, 침실 공간에 자신만의 감각을 더했다. 사과, 체리, 복숭아, 레몬, 바나나, 오렌지, 수박, 완두콩 등 여름 제철 과일과 채소를 모티프로 한 회화 작품은 위트 있는 터치로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김보림 작가에게 ‘제철’은 지금 이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방식이다. 과일과 채소를 깊이 들여다보고 음미하는 과정은 찰나의 감각을 붙잡아두는 의미와 같다. 이 과일들은 세라믹 오브제로도 변주되어 공간 곳곳에 배치되었다. 인물 형상의 자수 작품과 다양한 크기의 그릇 또한 테이블과 선반 위를 채우며 시각적 즐거움을 더했다.
케이크와 완두콩도 모두 세라믹 작품이다.
케이크와 완두콩도 모두 세라믹 작품이다.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공간은 케이터링 테이블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세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연출을 고민했고, ‘그리너리’를 콘셉트로 연두색·피스타치오색 등 녹색 계열의 색감을 중심에 두었다. 조리 과정을 최소화하고, 재료 본연의 형태를 살린 간단한 음식이 테이블에 올랐다. 실제 완두콩 옆에 이를 본뜬 세라믹 오브제를 나란히 두거나, 무화과와 함께 도자 오브제를 배치해 동화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케이크 형상으로 제작한 세라믹 오브제는 이번 전시의 상징적 오브제로 기능했다. 김보림 작가는 특별한 날을 상징하는 사물로서 케이크에 주목했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 않기에 더욱 특별한 이 형상을 통해 작가는 ‘영원한 특별함’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시각화한 것. 여름의 빛, 독일의 감성, 부엌의 온도, 그리고 ‘보림’이라는 이름이 겹겹이 포개져 하나의 독창적 세계를 완성했다.
김보림 작가
“41호 객실은 독일에서 실제로 살던 집의 주방 구조와 많이 닮아 있었어요. 그래서 작업 구상도 처음부터 익숙하게 시작할 수 있었죠. ‘보림이 사는 집’처럼 느껴지도록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로 디스플레이했고, 공간이 자연스럽게 작품을 품을 수 있도록 연출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