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5일, 지구에서 가장 등 따시고 배부른 기업 중 하나인 페이스북이 입장문 하나를 발표했다. 대상은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인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복잡한 사회문제의 주범으로 페이스북, 구글,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 업체를 지목한 것은 유감이며, 내용 또한 ‘대단히 선정적’이라는 반박이었다. 페이스북이 꽤나 발끈했다는 것을 방증하듯, 입장문에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SNS 중독, 알고리즘, 가짜 뉴스, 데이터 수집 등 항목까지 나눠가며 토를 달았다. 일부 전문가가 페이스북의 편을 들었다. “<소셜 딜레마>는 쓰레기 과학에 기반한 다큐멘터리다.” “소셜 미디어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선 너무 소홀했다.” “경제적 측면은 잘 설명했지만 과학적 측면은 빠져 있다.” 페이스북의 마무리 코멘트 역시 ‘뒤끝 작렬’이었다. “넷플릭스, 너희도 추천 알고리즘 쓰잖아!”
고작 한 편의 다큐멘터리에 무슨 얘기가 담겼길래 이 거대 기업의 감정선이 꿈틀한 걸까? 사실 <소셜 딜레마> 가 다루는 내용은 소셜 플랫폼의 부정적인 면으로 꾸준히 언급되던 것이라 새로울 건 없다. SNS 중독과 가짜 뉴스, 데이터 수집 등의 위험에 대한 경고음은 차고 넘쳤으니까. 이 다큐멘터리에 설득력과 흥미라는 고명을 얹은 건 등장인물들이다. 구글 지메일팀에서 일한 전직 구글 디자인 윤리학자,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을 디자인한 사람,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의 임원 등 소셜 미디어업계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코멘터리로 나선 것. 모바일 화면 속 ‘새로고침’은 슬롯머신을 당기는 경험에서 착안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등 구체적 경험을 전하는 그들의 메시지는 한 방향을 향한다. 소셜 플랫폼을 디자인하는 근본에 사용자의 심리를 조종할 수 있는 온갖 심리적 노하우가 녹아 있다는 점. 알고리즘은 인간이 소셜 미디어에 중독되도록 정교하게 설계했으며, 그 마술 같은 방법에 현혹된 사용자는 광고를 곁들인 화면을 무한 클릭하는 디지털 좀비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데이터에 잡힌 사례 하나는 꽤나 끔찍하다.
1996년 태어난 Z 세대는 중학생 때 처음 SNS를 접한 최초의 세대다. 이들이 10대 후반을 향하던 2013년 미국 10대의 우울증, 자해, 자살률이 증폭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집에 오면 스마트폰에 빠져들고, 그러다 보니 모험에 취약하고, 로맨틱한 현실 데이트 경험이 줄고, 심지어 운전면허 취득률까지 떨어졌다는 설명이 달린 그래프였다. 소셜 미디어업계의 이면을 뒤적이는 지적은 쉼 없이 이어진다. 마법의 지니로 불리는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의 다른 말일 뿐이며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 소셜 미디어 기업이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의 최종 목표는 자신들의 상업적 성공뿐이라는 것, 지루한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가짜 뉴스가 유통되도록 내버려두는 게 사용자를 화면에 붙잡아두기에 유리하다는 것 등 이다.
“우리가 ‘좋아요’ 버튼을 만들 땐 세상에 긍정과 사랑을 퍼뜨리는 게 목표였다”는 다큐멘터리 속 코멘트처럼 초기 소셜 미디어의 모습은 요즘과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오늘날의 10대가 ‘좋아요’를 덜 받아서 우울해하거나 정치적 분극화를 야기하는 건 우리 의도가 아니었다”는 코멘트 역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 조금이라도 동의한다면 거대 소셜 미디어 기업을 ‘디지털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박제해버린 다큐멘터리 내용에 ‘선정적’이라는 방어 논리를 들이대기 전에, 자신들의 선한 초심이 경제적 인센티브와 주주들의 압박과 사업 모델에 갇혀 변질되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문일완은 <바자> <루엘> <엘라서울> 등 독자층이 제각각인 패션 잡지, 남성 잡지,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넘나드는 바람에 무규칙한 문법이 몸에 밴 전직 잡지쟁이다. 그래픽 노블을 모으고 읽는 것, 아무 골목길이나 들어가 기웃거리는 게 요즘 취미 생활. 칼럼니스트로 여러 지면에 글을 쓰느라 끙끙대고, 사춘기 코스프레 중인 딸과 아웅다웅하며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