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사람 사이에만 통할까? 분명 사물과 맺는 순간의 감동도 진할진대,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 건 아닌지. 가격이나 희소성을 떠나 자신에게 온 물건이라면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자. 일상의 사물에서 고마움과 각별함을 발견하는 것부터 수선 생활은 시작된다.
역전歷傳의 시대
난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만 해도 물자가 귀해 버리는 물건이 별로 없었다. 특히 우리 할머니의 절약 정신은 유난하셨는데, 바가지가 깨지면 송곳으로 구멍을 낸 후 실을 꿰어 썼고, 머리를 빗은 참빗에 남아 있는 머리카락도 담벼락 사이에 모았다 고물 장수에게 넘길 정도였다. 그런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던 것 중 하나는 왕골로 만든 바구니로, 뚜껑이 닫힌 채 골방의 시렁 위에 놓여 있었는데 할머니 외에는 만질 수가 없었다. 단지 할머니의 쌈짓돈이나 금붙이 같은 물건을 보관하는 금고 같은 것이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 흘러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우리의 관심은 바구니에 쏠렸다.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삼촌들과 우리 형제들은 바구니 주변에 둘러앉았고, 어머니는 살아생전 할머니를 대하듯 바구니를 마주했다. 마침내 뚜껑을 열자 우리 모두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기대하던 쌈짓돈이나 금붙이는 없고, 그것을 보관했으리라 짐작하는 꾸러미들이 동그랗게 말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가지런한지 마치 돌아가신 할머니가 현현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꾸러미의 각각은 여러 색의 천으로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어머니가 그중 하나를 골라 말린 반대 방향으로 풀어내자 그 끝은 다시 명주 천이나 삼베, 공단 같은 옷감으로 이어지다 마침내 맨 마지막 천의 끝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또 한번 탄식했다.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꾸러미들은 귀한 것을 보관하는 수단이 아니라, 할머니가 모아놓은 옷감 조각 자체였던 것이다. 우리는 크나큰 실망과 할머니에 대한 송구함 사이를 오가며 말문을 잃었다.
50년 후
난 건축가로 살아가고 있다. 여느 건축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대개는 설계를 마친 후 집 짓는 것은 시공 회사에 맡기는 반면, 난 “내가 낳은 자식은 내가 키운다”며 설계와 시공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어려운 점 중 하나는 계속 늘어나는 장비의 관리와 잉여 자재의 처리였다. 대부분의 자재가 큰 단위로 포장해 판매하므로 쓰고 남은 자재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 소량만 사용하고 뜯긴 덕용 포장들, 조각난 타카핀들, 짝이 맞지 않는 볼트와 너트, 후드에 사용하고 남은 알루미늄 자바라 조각 등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잉여 물품을 바닥에 늘어놓다 보면 순식간에 포위되고 만다. 이때 흔히 듣는 말이 “정리해봐야 인건비도 안 나와요. 버리고 새로 사는 게 낫지”라는 핀잔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냥 버리기가 죄스러워 성한 물건을 고르고, 사용하지 않은 부속들은 모아 반납한다면 자재를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에겐 이득이 되고, 나 또한 보관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동네 건재상에 무상으로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돌아온 답은 “됐네요”가 전부였다. 그들은 공짜로 얻은 물건에 대한 반가움에 앞서 그 물건을 팔았다가 혹시 문제라도 생길 경우를 염려하거나, 일일이 검사하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했을 것이다. 머리카락 하나도 버리지 않던 때로부터 50년 만에 과잉 시대가 된 것이다.
역전逆轉의 시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오랫동안 복무하던 건축가의 타이틀을 벗고 업자를 자청하며 집수리를 시작할 때 나를 아는 대부분이 만류했다. 그 이유는 누가 돈을 들여 주택을 고치겠느냐는 우려로 당시 주택은 수리 대상이 아니라 낡음을 증명하는 재건축 아파트와 교환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집수리란 말조차 리모델링으로 갱신되는 때였다. 그런데도 이 길로 들어선 이유는 모던의 상징이던 아파트가 결국 소셜하우징이란 이름으로 계층 간 격리 수단이 되면서 주거의 흐름이 주택으로 회귀한 서구의 역사를 알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전에 대한 믿음이다. 편익으로 상징되는 아파트 삶에 대한 경험이 충분해지고 그들이 다수가 되면 그 흐름은 다시 주택으로 회귀할 것인데, 사진기의 발명으로 화가는 멸종될 것이라거나, 전자책의 등장이 종이책을 소멸시킬 것이라는 급진적 주장조차 사실처럼 받아들일 때가 있었듯 아파트에 대한 숭배 또한 비상식적 드라이브가 지배하는 일시적 증상일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50년 전 시대가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주말이면 (10년 전만 하더라도 외면받은) 북촌과 서촌의 뒷골목이 인파로 가득해지는 풍경이 계속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 단편적이고도 극단적 경향만 보더라도 우리가 부여잡고 걸어갈 지향점은 사회적 현상이 아닌 고전임을 알자는 것이다. 역사를 믿는다면.
글을 쓴 김재관은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건축가이자 현재 무회건축연구소 대표다. 낡고 오래된 건물을 수리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집수리 전문가로서 그동안의 집수리 작업을 모아 <수리 수리 집수리>(2019)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