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표지 디자인을 통해 ‘읽는’ 재미를 넘어 ‘보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 주목받고 있다. 애서가의 수집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감각적인 특별판 도서를 모았다.
지난해 9월 민음사가 지하철에서 책 읽는 문화를 독려하기 위해 출간한 ‘메트로북’은 1500부 한정판으로 만들어 약 3개월 만에 완판했다. 고전문학 시리즈인 민음세계문학 전집 중 5권을 선정해 새로운 판형과 표지 디자인을 입혔을 뿐인데, 빠른 속도로 판매된 것이다. 이처럼 독자들의 높은 호응 덕분에 민음사 외에도 세계문학 전집을 만드는 문학동네, 창비, 을유문화사 등에서 새로운 표지를 입힌 ‘리커버 북 에디션’을 선보이고 있다. 해외 문학뿐만 아니라 국내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소개하는 문학동네와 창비에서는 스테디셀러에 오른 국내 작품을 지금 독자의 취향에 맞춰 다시 출판 중이다. “과거에는 처음 출간했을때 반응을 얻지 못한 책을 다시 소개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새롭게 디자인을 했다면, 요즘은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리커버 북을 출간한다.”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표지와 장정을 바꿔 선보여온 열린책들 의 출판 홍보팀 김하늬는 출판 시장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리커버 북이 유행을 하며 책 디자인의 중요성도 다시 부각되었다. “독서 행위가 이전에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책을 경험하는 시대가 되었다.” 서점별로 다른 디자인을 입힌 호프 지런의 에세이 <랩걸>을 출판해 인기를 얻었던 알마 출판사의 안지미 대표는 대형 서점 외에도 소규모 동네 책방을 위한 ‘동네책방 에디션’을 선보였다. 같은 내용이라도 다른 판형과 제본, 표지로 만든 책을 특정 공간에서 한정 판매해, 인스타그램에서 이를 구입한 ‘인증 샷’을 남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동네 책방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다른 이벤트보다 더 효과적인 독자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 젊은 작가의 소설책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문학동네 마케팅팀 정민호 본부장의 말처럼 에디션 자체가 독자 이벤트가 된다. 달라진 책 디자인을 통해 책방은 활력을 얻고, 사람들은 책을 다시 손에 들기 시작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고양이>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 국내 대형 서점 4곳에 각기 다른 표지를 선보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고양이>. 주인공 암고양이 바스테트를 강조한 표지로 소설에 등장하는 집과 그 안에 사는 고양이의 모습을 각 서점별 독자 성향에 맞춰 디자인했다. 같은 내용의 책도 취향에 맞게 표지를 고를 수 있어 독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었다. 열린책들(031-955-4000)
김봉곤 <시절과 기분>
사랑의 순간을 포착한 소설로 주목받는 김봉곤 작가의 새 소설집 <시절과 기분>은 2가지 버전으로 출간했다. 무성한 풀숲에 둘러싸인 남자의 뒷모습이 담긴 그림과 소설 속 주인공을 닮은 남녀가 서 있는 일러스트로 이뤄진 두 종류다. 그중 남녀가 있는 커버는 소규모 서점에서만 한정 판매하는 ‘동네책방 에디션’으로 일러스트레이터 그룹 타바코북스의 작품이다. 창비(031-955-3333)
강화길 외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김금희 <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작가의 에세이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은 일반 서점에서 판매하는 도서와 다른 디자인을 입히고 작가의 특별 메시지를 담아 출간 2주 만에 품절되었다.” 문학동네 마케팅팀 정민호 본부장의 말처럼 ‘동네책방 에디션’은 특정한 공간에서 한정 수량밖에 판매하지 않기에 판매 속도가 빠르다. 올해로 11회를 맞이한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역시 싱그러운 디자인을 담아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문학동네(031-955-8888)
<을유세계문학전집> 리커버
을유문화사가 ‘을유세계문학전집’ 100권 출간을 기념해 한정판 리커버 에디션을 선보였다. 디자인을 맡은 워크룸 김형진 대표는 “십자말풀이 속 두 단어를 공유하는 가운데 글자에서 영감을 받아, 내용물과 껍데기의 관계를 표현했다”고 이번 에디션 디자인에 대해 설명했다. 5가지 도형과 색을 사용해 각기 다른 내용과 의미를 표현하면서도 공통분모를 담아내 하나의 시리즈로 보인다. 을유문화사(733-8153)
2020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한 소설 <향수>로 유명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대표작 8권이 새로운 디자인을 입었다. 소장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견장정 디자인을 적용하고, 가독성과 휴대성을 고려한 판형으로 재출간했다. 오래전에 나온 책이 더 오랫동안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디자인 작업을 했다. 열린책들(031-955-4000)
블루 컬렉션
국내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가 쓴 중편소설 8권을 ‘블루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열린책들에서 다시 출간했다. 각종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독자의 손에서 멀어지는 책을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가볍게 만든 시리즈로 가방 안에 쏙 들어가는 크기다. 작가와 작품 이름을 강조했던 기존 열린책들의 책과 달리 표지 이미지를 강조했다. 열린책들(031-955-4000)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2009년부터 시작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출간 10주년을 기념해 ‘리커버 특별판’을 펴냈다. 11개 언어권 127명 작가들의 대표 걸작선 중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방향성을 대표하는 작품 10종을 엄선해 새로이 디자인했다. 2019년 말과 올해 1월 두 번에 걸쳐 선보인 특별판은 소설 속 배경이나 주인공을 표현한 그림을 담은 표지와 양장본 디자인으로 수집 가치를 높였다. 문학동네(031-955-8888)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같은 내용이라도 물성에 따라 독자가 하는 경험은 달라진다.” 서점별 특별 에디션으로 주목받는 알마 출판사의 대표이자 북 디자이너 안지미는 이제 독서 행위가 ‘읽는 것’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변화했다고 말한다. 최근 교보문고와 협업해 만든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리커버 에디션은 표지 디자인을 담은 각종 굿즈와 함께 판매했다. 알마 출판사(324-3800)
민음북클럽 특별 에디션
민음사는 ‘민음북클럽’ 회원에게 민음세계문학 전집 중 5권을 선정해 새롭게 디자인한 ‘특별 에디션’을 증정한다. 어디에서도 판매하지 않는 책인 만큼 실제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만족스러운 가입 혜택 2위를 차지하며 북클럽 가입률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올해는 1990년대 2D 게임 그래픽을 떠올리게 하는 ‘픽셀 아트’로 작품 주제나 내용을 형상화해, 복고적인 감성이 돋보인다. 민음사(515-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