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을 살며 맞닥뜨리는 숱한 선택 중엔 운명과도 같은 결정적 순간이 있다. 80m² 남짓한 2층 주택의 개조 공사를 시작하며 마당 대신 테라스와 옥상에 정원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그날의 내가 그랬다.
나는 지금 꽃술의 옥상 정원에 웅크리고 앉아 개미 떼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다. 먹이를 짊어진 놈들이 정신없이 향하는 곳. 개미집을 찾아 근방에 약을 놓은 후엔 벌레 먹은 용버들의 가지를 잘라내고, 지난 식목일에 분갈이를 마친 남천나무와 금작화의 상태를 살필 것이다. 마른 흙에 물을 듬뿍 주고 옥상과 테라스의 바닥 청소까지 끝내고 나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조용한 마을에 살그머니 찾아든 어떤 선량한 기운처럼 피어오른 5월의 정원은 고된 노동의 현장이며 흙투성이의 짐이자 지난한 전쟁터이기도 하다. 머지않아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잡초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벌레들은 여름내 골칫거리다. 태풍과 추위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인생을 살며 맞닥뜨리는 숱한 선택 중엔 운명과도 같은 결정적 순간이 있다. 80m² 남짓한 2층 주택의 개조 공사를 시작하며 마당 대신 테라스와 옥상에 정원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그날의 내가 그랬다. 노부부가 아들 셋을 분가시킬 때까지 살았다는 용산구 원효로의 붉은 벽돌집은 어느 한구석 성한 데가 없었다. 외풍을 막으려고 모든 창문은 종이 박스를 덧댄 상태였고, 공기는 습했다. 그 상태로 얼마나 오래 방치되어 있었는지 온 집 안이 곰팡이투성이였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좁고 가파른 나무 계단은 삐걱거렸다. 2층에는 무허가로 벽을 세우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화장실과 광이 딸린 주방이 있었다. 그 옆엔 고개를 숙여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덜컹거리는 쪽문이 있었는데 옥상으로 난 외부 계단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희한하게도 컴컴하고 습한 집 내부와 달리 2층 외부와 옥상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고 환했다. 옥상에는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식물이 가득했으며 거짓말처럼 모두 싱싱했다. 얼마나 식물 돌보기에 정성을 다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정작 집 거래에 나선 주인 할아버지는 이 화분들에 대해선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퉁명스러운 말투로 ‘할머니의 잡동사니’에 대해 쉴 새 없이 불만을 표출했을 뿐. 거의 말이 없는 할머니는 옥상의 시멘트 바닥에 구멍을 내어 아래층에서 쓰고 남은 보일러 물을 끌어 올리는 방식으로 스프링클러 비슷한 것을 만들어 사용한 것 같았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옥상 계단은 만만찮은 곡예였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이 많은 화분은 어떤 의미였을까?
다 쓰러져가는 낡고 초라한 집, 그리고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화사한 옥상의 화분들, 같은 시간 속에서 시들어가는 것과 피어나는 것. 다시 밖으로 나와 집을 올려다보며 ‘꽃술’이라는 이름을 바로 떠올렸다. ‘꽃술’과 ‘모이다’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 한자 ‘蘂(꽃술 예, 모일 전)’은 나무 목(木) 위에 마음 심(心) 3개가 모여 풀이 돋아나는 형태다. ‘옥상 정원을 만들자!’ 아래는 술이 흐르고 위로는 식물이 자란다. 사람들은 자연히 모일 것이다. 나무도 숲도 없는 도시 한복판이지만 양지바른 위치였다. 근거 없는 확신, 그 외엔 어떤 대책도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뭐에 씌인 게 분명하다. 선인장 화분 하나도 한 달 이상 제대로 키워본 적 없는 주제에 정원이라니. 전시 기획 일을 하며 알게 된 목수에게 조경 전문가를 소개받아 본격적인 집 공사 전부터 디자인 작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 초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디자인과 예술을 공부한 플로시스 김재용 대표는 우리나라의 원예 2세대다. 대규모 조경 작업을 주로 해온 이 팀과는 꽃술의 옥상 정원을 인연으로 현재까지도 크고 작은 미술·디자인 전시의 플랜테리어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또 다른 가든 디자인 스튜디오 도랑도 꽃술의 든든한 파트너다.
높은 건물도 아닌 일반 주택 옥상에 정원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건축가나 공간 디자이너들은 반대가 많았다. 안전상의 문제를 비롯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런 작은 옥상에서 큰 나무가 자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느냐고 했지만 내가 꿈꾼 게 바로 그런 말도 안 되는 풍경이었다. ‘영혼의 유토피아’까진 아니더라도 기분 좋은 신기루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정원 디자인에 관해 내가 처음에 원한 건 세 가지 였다. 첫째, 화분 몇 개가 아닌 진짜 정원을 만들겠다는 것. 둘째, 서울 구도심의 소박한 풍경과 어울리도록 너무 화려하지 않은 들꽃과 나무를 심는 것. 셋째, 한국의 사계절에 따라 정원의 주인공이 달라졌으면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조건에 우선하는 건 기르기 쉬운 식물이어야 한다는 것. 정원이 완성된 후 두 번의 무더운 여름과 무시무시한 태풍과 추운 겨울을 보냈다. 다행히 식물들은 살아 있다. 그것도 아주 건강하게!
나는 자연주의자도 아니고 정원 예찬론자는 더더욱 아니다. 여전히 자연은 모르는 것투성이고 식물을 돌보는 일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육체 노동이다. 다만 이제 조금은 그토록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도 아파트 베란다 가득 화분을 두고 가꾸던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사방에서 부는 바람과 흙, 물, 그리고 빛과 적당한 온도만 있으면 식물은 산다. 이 네 가지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다만 도시에 살다 보면 이 당연한 사실을 자주 잊게 된다. 정원을 가꾸는 일의 유익함이라면 늘 자연을 생각하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모든 건 다 때가 있는 법. 싹을 틔우는 것들은 모두 참 대견하다. 나의 작고 아름다운 정원이 올여름도 무사하길. 그리고 꽃술 역시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란다.
이미혜는 <보그 코리아> 피처 디렉터로 일했고 현재는 디자인 & 미술 전문 칼럼니스트이자 문화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용산 인근에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을 소개하고 이들의 가구와 소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공간 ‘꽃술’을 운영한다. 올해 1월 안테룸 서울에서 열린 <에디티드 서울: 뉴 호옴>전을 기획해 주목받았다. @kkotss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