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셰프들의 레스토랑부터 전국 방방곳곳의 노포까지. 먹고 마시는 일을 업으로 삼은 4명의 사람을 만났다. 단순히 배를 불리고 맛을 느끼는 것을 넘어 자신의 내면을 넓히는 미식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고를 경험하는 요리 이욱경 PD
“사람을 볼 때도 외모뿐만 아니라 옷차림, 말씨 등 모든 면이 합쳐져 호감을 느끼는 것처럼 레스토랑도 공간과 담음새, 서비스 등을 두루 경험함으로써 좋고 나쁨을 판단한다고 생각합니다.” 회현동의 공유 주방 ‘요리인류키친’에서 만난 이욱정 PD는 “미식은 감각의 총체적 경험”이라고 말했다. 2009년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시작으로 <요리인류>, <치킨인류> 등을 연출한 그는 음식을 매개로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경험하는 방식을 알려왔다. “본래 ‘요리인류키친’은 홍대 인근에 있다가 서울시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곳에 이전했어요. 낙후된 지역을 다시 활성화하는 프로젝트로 저는 요리를 통해 이 지역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있죠.”
지난 연말 방영한 KBS <다큐 인사이트>의 ‘코로나19, 이모네 밥집 희망가’ 편에서 그는 회현동의 오래된 식당들과 함께 ‘남촌 도시락’을 개발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네이버TV의 ‘요리인류클럽’ 채널에서는 유명 셰프가 국내 농가에서 공수한 재료로 요리를 만드는 ‘더 굿 파머스’ 시리즈를 제작했다. “최근에는 강원도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동해안에 좋은 식재료가 많은데 회로만 먹는 게 안타까워요. 셰프가 색다른 요리를 만든다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그는 셰프들과 손잡고 동해안의 어촌에 식당을 열고 싶다고 덧붙였다.
“요리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방방곳곳을 다닌 경험이 점점 깊어지며, 영상 너머 프로젝트를 꾸리는 일로 확장되어온 것 같아요.” 그의 말처럼 요리인류키친에서도 클럽을 만들어 함께 음식을 해 먹으며 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미식 경험을 완성하는 건 함께 음식을 나누며 소통하는 과정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를 확장해 서울시 강동구 길동에 음식 문화에 대한 클래스를 여는 공간도 오픈할 예정이다. “셰프는 예술가예요. 자신만의 스토리가 담긴 요리를 만들죠. 이런 음식을 작품 감상하듯 집중해서 음미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이욱경이 추천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품서울
클래식 음악이나 그림처럼 매일 봐도 편안한 명작 같은 요리를 내주는 레스토랑. 노영희 셰프가 한식의 현대화를 위해 시작한 곳으로 올해 1월 4일 삼성동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오픈할 예정이다.
임프레션
뉴욕에서 17년 동안 경력을 쌓은 서현민 셰프가 서울에 처음 문을 연 레스토랑이다. 한국의 발효 요리와 프랑스 요리를 접목해 그의 캐릭터가 드러나는 독창적인 음식을 만든다.
한식공간
레스토랑에서 보이는 창경궁 전망을 닮은 깊이 있는 한식을 맛볼 수 있는 곳. 전통 음식을 오랫동안 연구한 조희숙 셰프가 이끌고 있다.
먹고 마신 다음에 쓴다 손기은 에디터
“위스키의 그 향기가 구름처럼 포근했다.”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계동의 와인 바 ‘라꾸쁘’ 공동대표 손기은은 지난해 11월 말 출간한 식욕에 관한 에세이집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에서 위스키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드러냈다. 11년 동안 월간지 <GQ>에서 요리·식음료 담당 기자로 일했던 그는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술에 관한 기사를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유행보다 한발 앞선 주제를 맛깔나는 솜씨로 풀어내는 그의 기사는 애주가들의 입에 자주 오른다. “입사할 때 음식을 담당하는 자리가 공석이라, 제가 자연스럽게 맡게 되었어요.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할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죠.” 라꾸쁘에서 만난 손기은 에디터는 기자로 근무하며 쌓은 지식과 자신의 취향을 담아 이곳을 운영 중이다.
“제 취향만 생각해 기사를 쓰면 독자들이 금세 물릴 수도 있기에 폭넓게 보는 게 중요했어요. 그때 쌓은 지식이 라꾸쁘 손님들을 대할 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라꾸쁘에는 위스키나 와인에 입문하고 싶어 하는 고객이 많이 찾는데, 손님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응대하려고 노력한다. 와인이 생산된 도시의 음식과 페어링하거나 위스키의 맛을 돋우기 위한 팝업 테일러 숍을 여는 등 특색 있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지난해부터는 새로운 술을 매달 배송하는 큐레이션 박스 서비스도 시작했다. 공동대표 3명이 각자의 취향을 반영해 와인과 그에 곁들이기 좋은 음식, 잔, 책 등을 담아 배송해주는 것이다. 위스키나 와인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고, 바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다. “2018년, 서울의 바텐더들에게 바 문화가 어떻게 변화했으면 좋겠는지 설문 조사를 했을 때 80%가 바를 카페처럼 편하게 찾으면 좋겠다는 답변을 했죠. 저도 이러한 변화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한동안 바를 운영하느라 나이트라이프를 즐기지 못한 그는 최근 서울의 새로운 바를 찾고 있다. “술은 음식처럼 맛으로 즐겨요. 고유의 개성과 스토리를 지닌 바에서는 레스토랑에서 셰프의 요리를 먹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죠. 그런 곳의 바텐더에게 인근 바를 추천받아 ‘바 호핑’을 떠납니다.” 애주가에게 바 호핑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라고 덧붙인 손기은 에디터가 평소 좋아하는 바 3곳을 추천했다.
손기은이 추천하는 서울의 바
뽐
프랑스어로 ‘사과’를 뜻하는 ‘뽐’은 서촌에 자리한 바 ‘참’의 임병진 바텐더가 만든 두 번째 공간이다. 칼바도스, 코냑 같은 브랜디 종류를 소개하고 있다.
바인하우스
바에서 경험할 수 있는 화려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청담동의 바. 명품 크리스털 브랜드의 글라스와 희귀한 빈티지 잔에 담긴 술을 즐길 수 있다.
올드나이브스
스테이크와 위스키를 함께 먹기 좋은 캐주얼한 분위기를 지닌 성수동의 바. 미국의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스테이크하우스 같은 분위기로 혼자 찾기에도 부담이 없다.
여행을 떠올리는 맛 타드 & 박은선
“맛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얼마나 잘 담았는지를 고려해 식당을 추천해요. 사람들이 낯선 요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 역할을 하죠.”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인 타드 샘플과 과거 승무원이었던 박은선이 함께 운영하는 푸드 콘텐츠 플랫폼 ‘잇센틱Eathentic’은 지난 4년 동안 음식을 통해 그 도시의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해왔다. 대사관, 영화관과 협업해 주최한 그들의 소셜 다이닝 이벤트는 사람들에게 여행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그 도시로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 지난가을 이들은 서초동에 그리스 음식 전문점 ‘노스티모Nostimo’를 열었다. 현지 가정 요리와 그리스산 와인, 차 등을 파는 곳이다.
“할아버지가 그리스 크레타섬 출신이라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 음식이 익숙해요. 20대 때는 그리스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고요. 미국이나 캐나다에는 저처럼 그리스 이민자 2세, 3세들이 많기에 그리스 음식점이 많죠.” 타드는 어린 시절 먹은 요리를 떠올려 메뉴를 구성하고 직접 만드는데, 주한 그리스 대사관 직원들의 단골집이 되었을 정도로 현지의 맛을 충실하게 따른다. 그 핵심에는 박은선 대표가 손수 만드는 페타 치즈가 있다. “염장을 해서 만드는 치즈라 음식에 소금 대신 조미료로 사용하죠. 사실 페타 치즈는 양젖으로 만든 치즈를 뜻하기에 엄격하게 따지면 페타 스타일의 치즈라 볼 수 없지만, 국내에서 수급할 수 있는 재료로 현지의 맛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유럽의 치즈 공방을 탐방하고 오랜 시간 치즈 만들기를 연습했다는 박은선 대표는 페타 치즈뿐만 아니라 그리스 음식에 많이 사용하는 요구르트와 사워크림도 만든다. 이렇게 음식을 만든 이야기를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스럽게 들려준다.
“음식은 혀가 아니라 머리가 먹는 거라고 생각해요. 경계심이 높은 상태로 먹으면 맛이 없게 느껴지죠. 그렇기에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레스토랑이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박은선 대표는 훌륭한 음식을 내어주는 것만큼이나 손님과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의 많은 레스토랑을 다니면서 식당의 스토리를 담고 알리는 게 어떠한 마케팅보다 효과적이란 걸 배운 것이다. “직접 식당을 운영해보니 여태껏 만나온 셰프님들이 존경스러워요. 곧 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낼 예정입니다. 해외로 떠나지 못하는 요즘 같은 때 여행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식당을 추리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출간 예정인 책에 나올 레스토랑 3곳을 타드와 박은선 대표가 꼽아주었다.
잇센틱이 추천하는 에스닉 레스토랑
르 셰프 블루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셰프가 서울시청 인근에서 운영하는 프렌치 레스토랑. 그날 구입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매일 메뉴가 바뀐다.
모로코코 카페
해방촌의 모로코 샌드위치 전문점 ‘카사블랑카’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모로코 치즈를 매장에서 직접 만들어 요리를 한다.
토키바야마
스모 선수 출신의 일본인 셰프가 이태원에서 운영하는 일식 전문점이다. 회를 중심으로 한 코스 요리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에는 스모 선수들이 몸을 키우기 위해 먹는 국물 요리인 ‘창코나베’가 나온다.
희로애락이 담긴 한 그릇 노중훈
MBC 라디오 방송 <노중훈의 여행의 맛> 진행자이자 여행 작가 노중훈. 신간 <할매, 밥 됩니까>에 나온 을지로 가맥집 ‘성원식품’을 그와 함께 찾았을 때, 작가가 공간에 가지고 있는 존경심이 느껴졌다. “원래 50대 이하는 입장 금지예요. 젊은 사람들이 오면 단골 어르신들이 불편해 할 수도 있어 주인 할머니가 만든 단골 우대 규칙이죠.” 낯선 이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가게의 차별 정책에 담긴 속뜻을 작가가 대신 말했다. 20년 동안 여행 작가로 활동한 그는 MBC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 <굿모닝 FM 김제동입니다> 등 라디오 방송에서 노포를 소개하다가 일명 ‘할머니 식당’이란 새로운 종류의 미식 분야를 개척했다. 전국에서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 그곳의 역사와 음식을 소개하는데, 이번 신간은 이에 한층 더 집중했다.
“할머니 식당에 가면 지금은 사라진 그 지역의 독특한 음식 문화를 볼 수 있어요. 또 한자리에 오래 있던 공간이기에 주인분들이 동네 변천사를 다 알고 있죠. 무엇보다 곧 쉰인 나도 거기에선 무조건 막내라 예쁨도 받으니 좋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그는 이런 식당을 의외로 포털 사이트 검색을 통해 찾아낸다고 했다. “남들이 2시간 찾는다면 저는 10시간 넘게 찾고, 그중 5곳을 방문한 뒤 한두 곳을 소개해요. 다른 곳들이 별로 안 좋은 게 아니라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들었는지가 소개의 기준이 되죠.”
작가는 할머니 식당을 주제로 유튜브의 ‘펀플렉스’ 채널에서 진행하는 <노중훈의 할매와 밥상>도 시작했다. 영상에서 그는 혼자 2인분 이상을 거뜬히 먹으며 주인 할머니와 쉴 새 없이 수다를 나눈다. “먼저 내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질문을 하죠. 사실 할머니들이 하고픈 말이 많은데 그걸 들어줄 사람이 없어 저 같은 사람을 기다렸단 생각도해요. 그런 소소한 이야기 속에 그분들이 지켜온 삶의 태도가 배어 있죠.” 작가는 할머니의 삶이 담긴 음식을 맛으로 평가하기 보단 그 자체를 느껴볼 것을 강조했다. “연남동의 여행 책방 ‘사이에’에서 ‘노중훈만 아는 여행’이란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소수 인원과 함께 1박 2일 동안 국내 여행을 떠나는데, 목적지는 가이드인 저만 알아요. 유명한 관광지 대신 제가 좋아하는 가게나 장소에서 사는 이야기를 목이 쉴 때까지 하죠.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이 없잖아요.” 화려한 공간이 범람하는 요즘 같은 때 소박한 음식 한 그릇의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열고 있었다.
노중훈이 추천하는 오래된 식당
삼복당제과
모든 종류의 빵을 다 사먹어도 3500원밖에 나오지 않는 제주시 용담동의 빵집. 1974년에 문을 열어 명절을 빼고 쉰 적 없는 성실한 할머니가 기본에 충실한 빵을 만든다.
정가담
전북 익산시 송학동에 위치한 백반집으로 1인분에 8000원인 간장게장 백반이 대표 메뉴다. 주인 할머니가 열아홉 살 때부터 운영한 식당으로 그분의 고귀한 역사가 공간과 음식에 담겨 있다.
소라우동
강북구 번동에 위치한 국숫집으로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동네 식당이다. 중년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데 집에서 해 먹는 듯한 잔치국수와 비빔밥에서 이곳만의 따뜻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