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가에서 살면서 25년 넘게 매일 플라스틱 조각을 줍고 예술 작품을 만들어온 스티브 맥퍼슨. 버려진 지 수십 년 된 해괴한 모양의 플라스틱 파편조차 그에게는 창작의 소재가 된다. 그리고 그가 플라스틱을 수집해 만든 작품 앞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플라스틱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된, 너무나 멀리 와버린 현실을 직시한다.
영국 북쪽에 위치한 켄트 해안가를 거닐며 플라스틱 조각을 줍는 시간을 보물 찾기에 비유 하는 설치 작가 스티브 맥퍼슨.
‘16Figures No2(Including the brave and the foolish)’, 2011.
‘The Birds and a Bee’, 2010. 마치 곤충학 표본처럼 플라스틱 오브제를 아크릴 박 스 프레임에 고정시키고, 간단한 메모를 남겼다.
영국 켄트Kent 지방의 해안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해변에서 물건 줍는 것에 기쁨을 느낀 스티브 맥퍼슨Steve Mcpherson 작가. 그는 파일럿이 되고 싶었지만 선천성 색맹이기에 꿈을 포기했고, 시각적 결핍은 그를 예술가로 성장시켰다. “역설적이지만, 플라스틱을 줍는 건 마치 보물 찾기와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는 버려진 작은 사물에서 사람의 온기를 읽어내고, “더 이상 플라스틱을 쓰지 말자” 라고 충고하는 대신 플라스틱의 지배를 받는 삶으로 전락한 인류의 현실을 담담히 보여준다.
학업을 위해 도시에서도 지냈지만, 결국 해변으로 돌아와 매일 바다와 마주하는 삶을 선택한 그는 바다 냄새를 맡으며 일어나고, 바다에 비친 석양을 보며 잠든다. 그에게 해변은 어디선가 떠내려온 수많은 이야기를 접하는 보물섬이요, 전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인 것이다. 아직 한국에 와본 적은 없지만 한국의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다는 그와 언택트 시대 소통법인 ‘줌(비디오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을 통해 이야기를 나눴다.
팬데믹 시대,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매일 작업하는 일상에는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전시나 페어 등이 취소되어 수입은 줄었죠.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내 작품을 관람객에게 직접 보여줄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이에요. 내 작품은 잡지 속 사진이나 모니터를 통해 보는 것보다 실물을 가까이 들여다볼 때 더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플라스틱 쓰레기를 소재로 사진,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해왔죠.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해변을 거닐면서 저만의 보물을 찾는 게 취미였어요. 원래는 예쁜 돌이나 조개, 나무 등 자연물을 줍곤했죠. 지금의 내 작업에 대한 연습 같은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모은 것을 활용해 오브제를 만들곤 했으니까요. 그러다 언젠가부터 작은 피겨, 장난감 조각 등 플라스틱 파편에 눈이 갔어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것들인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이걸 사용하던 혹은 잃어버린 사람과는 어떤 관계였을까… 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하나둘 집으로 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씻고 분류해놓는 건가요?
맞아요. 집에서 깨끗하게 세척한 후 스튜디오에 늘어놓고 말립니다. 그리고 색상이나 형태에 따라 분류하는데, 제가 색맹이기 때문에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시간이에요. 하지만 색맹이기 때문에 사물을 더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커팅이나 페인팅 등 2차 가공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제가 주운 사물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으니까요.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이 내가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이런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더군요. 물론 환경적 질문을 던지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오브제가 지닌 서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정한 사물이 사람에게 어떠한 감정과 추억을 남겼는지, 즉 사물과 사람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래서 제 작품 속 오브제를 하나하나 보다 보면 “오, 나 이거 어릴 때 가지고 놀았지” “나도 참 좋아하던 건데” 하는 식으로 자신의 역사 속 추억을 상기하게 되지요.
‘Dark(Combination Piece – Blue, Square, No1)’, 100×100×7cm, 2012. 영국 해안에 서 발견한 플라스틱 오브제들. 얼마나 각양각색의 사물들이 플라스틱 잔해를 남겼는지!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느끼지만 자세히 보면 현기증이 난다.
작업에 몰두 중인 스티브 맥퍼슨 작가. 수집한 플라스틱 조각을 색상과 형태에 따라 분류한 후, 이를 다시 재조합해 하나의 오브제를 만드는 작업은 “제법 오래 걸리지만 인내심을 갖게 만든다”고 말한다.
‘Fractional Distillation’, 20×28×5.5cm, 2013. 자동차 핸들부터 기기의 파편 같은 검정 조각 모음.
플라스틱을 감성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네요.
그보다는 역사적 관점이기도 해요. 지금 자연에 존재하는 돌, 모래, 나무 모두 역사가 있잖아요. 플라스틱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석유에서 온 것이죠. 오일에서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이 되 고, 어떠한 형상을 지닌 물건이 되고, 그 물건을 사용하던 사람 역시 역사지요. 그리고 누군가의 손을 떠난 순간 또 다른 역사가 쌓이고요. 그래서 이 해변에 도착한 모든 조각은 역사가 겹겹이 쌓인 모음입니다.
작품 속 플라스틱 조각을 보면 정말 놀라울 만큼 종류가 다양하더라고요.
열두 살 된 딸과 종종 게임을 해요. 플라스틱으로 만들지 않은 물건 찾기인데, 한번 떠올려보세요. 장난감 공룡부터 종교적 사물, 우주선…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게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고, 해변에 쓰레기로 떠내려와요. 마치 삶의 총집합처럼. 그게 우리의 현주소지요.
지난 25년 동안 쓰레기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기술의 변화를 느끼죠. 25년 전만 해도 오늘날처럼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어요. 플라스틱 쓰레기로 역사를 만나기도 하는데요, 40년 전에 사용하던 비디오나 카세트테이프처럼 지금은 사라진, 제 딸은 전혀 모르는 것 말이에요. 최근에는 팬데믹으로 전에 보지 못한 마스크, 라텍스 장갑 등이 등장했고요. 팬데믹이 한편으로는 지구 오염을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해요.
당신은 환경 운동가인가요?
환경 애호가 정도가 어떨까요. 무언가를 소유하고 사용하기까지 신중하려고 노력해요. 버리기 전에 재활용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요. 하지만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집 안에서 플라스틱을 없앨 수 없죠. 이를 테면 할머니나 삼촌이 제 딸에게 주는 선물까지 막을 순 없으니까요. 부끄럽지만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