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가 지구촌의 엄격한 룰로 작용하는 이때야말로 대자연과 도심 속에 놓인 야외 예술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세계 각국의 야외 조각공원, 광장과 빌딩 숲 사이에서 보란 듯이 예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풍경을 소개한다.
Anish Kapoor at Houghton Hall
Anish Kapoor, ‘Sky Mirror’ © Pete Huggins
Anish Kapoor, ‘Cobalt Blue to Apple and Magenta Mix 2’ © Pete Huggins
1991년 터너상을 수상한 아니시 카푸어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조각가 중 한 명으로 화강암, 스테인리스, 유리 등 주로 무거운 소재를 사용해 창의적인 공공 예술 작품을 선보여왔다. 2002년 테이트 모던터빈 홀에 설치되었던 155m 높이의 ‘마르시아스Marsyas’, 건축공학가 세실 발몽과 함께 제작한 바벨탑 모양의 설치물 ‘오빗Orbit’은 여전히 현대미술사의 손꼽히는 명작으로 회자된다. 영국 노퍽의 호턴 홀에서 11월 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지난 40년간 작업해온 작품 중 21개의 조각 작품과 이를 위한 드로잉 작업 등을 선보인다. ‘돌’과 ‘거울’을 이용한 스케일이 큰 작품은 호턴홀의 야외 공간 곳곳에 설치되었는데, 그중 백미는 야외 정원 한가운데에 놓인 ‘스카이 미러Sky Mirror’다. “아니시 카푸어는 마술사다. 그의 우아하고 반사적인 조각들은 신비로운 방식으로 이 세계를 뒤집어놓는다.” 이 저택의 소유주인 콜몬들리 경의 말처럼, 지름 5m의 거울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을 거꾸로 비추며 하늘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이밖에도 돌이나 유리 같은 자연적인 소재로 만든 그의 작품은 호턴 홀의 고전적인 건축, 부지의 고요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공간에 아찔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The Geffen Contemporary at MOCA
Larry Bell, ‘Bill and Coo at MOCA’s Nest’, Image courtesy of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Photo by Zak Kelley
Barbara Kruger, ‘Untitled (Questions)’ Image courtesy of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photo by Elon Schoenholz
LA 대표 현대미술관 MOCA(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는 미술관 설립 40주년을 기념해 주목할 만한 두 점의 설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첫 번째는 ‘게펀Geffen’ 로 불리는 별관의 북쪽 정면 벽에 설치된 바버라 크루거의 ‘무제 (Questions)’. 이 작품은 원래 30년 전 MOCA가 <기호의 숲: 표현의 위기 속 예술A Forest of Signs: Art in the Crisis of Representation>이라는 전시를 위해 작가에게 의뢰해 설치했던 작품으로, MOCA 큐레이션 역사의 백미라 손꼽힐 만큼 의미 있는 작품이다. ‘누가 법을 어지럽히느냐, 누가 사고 누가 파느냐, 누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느냐, 누가 가장 먼저 죽고, 누가 최후에 웃느냐?’ 같은 의미 심장한 질문 9개가 미국 국기를 연상시키는 프레임 안에 쓰여 있는 이 작품은, 현재 미국이 놓인 정치적 혼란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통렬한 문제 제기를 하는 듯 하다.
작가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질문이 유효하다는 점이 매우 비극적이다”라고 말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런 점이 특정한 예술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두 번째는 2019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출신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가 설계한 게펀의 본관 건물 야외에 모습을 드러낸 영구 설치 작품이다.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래리 벨Larry Bell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제목은 사랑을 속삭이는 다정한 연인을 다소 구식으로 표현하는 말 ‘빌 앤드 쿠Bill and Coo’다. 피라미드 모양의 기하학적인 구조로 지은 건축물과 조응하는 작품이라는 뜻에서 붙은 제목으로, 그가 40년 동안 탐구해온 유리 소재의 붉은 구조물이 나란히 놓여 건축물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Frieze Sculpture at Rockefeller Center
Lena Henke, ‘R.M.M. and R.M.M’ © Casey Kelbaugh/Frieze.
Beatriz Cortez, ‘Glacial Erratic’ © Kelbaugh/Frieze.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로 꼽히는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은 매년 런던 리젠트 파크의 잉글리시 가든을 전 세계의 주목할 만한 조각 작품으로 채우는 ‘프리즈 런던 조각Frieze London Sculpture’ 프로젝트로 명성이 높다. 2012년 시작된 ‘프리즈 뉴욕’ 역시 그 전통을 이어받았으니, 뉴욕의 심장부인 록펠러 플라자 곳곳을 설치 작품으로 채우는 <프리즈 조각> 전시가 바로 그것이다. 봄에 열리는 프리즈 뉴욕 페어는 취소되었지만, 미리 계획되었던 조각 전시는 가을로 날짜를 옮겨 10월까지 계속된다. 특히 이번 행사가 ‘50번째 지구의 날’에 개막할 예정이었던 만큼, 이번 프로젝트는 지구와 환경, 여성 문제, 인종 불평등 문제에 대한 작가들의 인식을 담고 있다.
“올해의 작품들은 도시계획 및 생태학을 포함한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생각해보면 이런 담론이야말로 조각 설치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마땅하죠.” 주최측의 설명이다. 참여 작가는 총 6명. 올해 94세를 맞은 예술가 새디어스 모슬리Thaddeus Mosely는 5번가 정원의 정점에 거대한 청동 조각을 선보였고, 앤디 골즈워디Andy Goldsworthy는 자연의 원료로 염색한 ‘붉은 깃발Red Flags’로 록펠러의 상징적인 깃발을 대체함으로써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다. 말발굽을 형상화한 레나 헹케 Lena Henke의 컬러풀한 조각 작품은 아르데코풍의 현대건축물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뉴요커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