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공화국의 탄생을 기념하는 6월 2일, 서울 주한 이탈리아 대사 관저에서는 외교·문화·경제계 인사 등 약 1천6백 명이 참석한 이탈리아 공화국 선포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로마 출신 마르코 페라리Marco Ferrari 셰프는 이탈리아 가정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음식과 식탁 문화를 소개했다. 계절의 식재료를 알맞게 다루고, 정성껏 만든 음식을 한자리에 놓고 함께 나누는 일.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한 끼 안에 이탈리아의 오랜 생활 방식이 담겨 있다.

이탈리아 대사 관저에서 만난 마르코 페라리 셰프.
이탈리아 요리는 하나의 이름 아래에서도 지역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와 산, 기후와 농산물에 따라 사용하는 재료와 조리법이 달라지고, 같은 음식도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맛으로 전해진다. 그중 로마의 가정식은 치즈와 후춧가루, 올리브유처럼 익숙한 재료 몇 가지만으로 확실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정확한 레시피보다 여러 번 만들어보며 익힌 손 감각이 중요하고, 남은 재료도 버리지 않고 다음 한 끼로 이어간다.
1968년 로마에서 태어난 마르코 페라리는 이탈리아 해군에서 부사관이자 헬리콥터 전문 요원으로 복무하며 세계 각지의 식재료와 식문화를 경험했다. 이후 요리사의 길을 선택해 파스타 전문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케냐의 리조트와 레퍼드 포인트 럭셔리 비치 리조트의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주방을 이끌었다. 현재는 컨설턴트 셰프로 활동하며 여러 나라의 이탈리아 외교 공관 행사와 ‘세계 이탈리아 음식 주간’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이탈리아 국경일 행사에 초청받은 그는 판차넬라와 카초 에 페페를 비롯한 이탈리아 가정식의 정서를 전했다. 해군에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의 식사를 준비했던 경험부터 로마와 나폴리의 전통을 오늘의 식탁에 옮기는 방법까지, 그가 생각하는 집밥의 본질에 대해 들었다.

판차넬라와 스파게티 카초 에 페페. 환대의 의미를 담은 테이블 세팅.
약 1천6백 명의 손님이 모인 국경일 행사는 이탈리아의 음식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맛과 경험을 전하고 싶었나요? 손님들이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화려한 이탈리아 음식보다 집에서 만나는 이탈리아 음식을 경험하길 바랐습니다. 잠시나마 이탈리아의 어느 집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을 느꼈으면 했어요. 가족과 친구가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누고, 허브와 토마토 향이 식탁 주위에 퍼지는 평범한 풍경 말이죠. 좋은 재료를 단순하게 조리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이 이탈리아 음식 문화의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판차넬라와 카초 에 페페를 이날 메뉴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판차넬라는 딱딱해진 빵을 버리지 않고 토마토와 오이, 양파, 바질 등과 함께 먹는 가정식입니다. 집에 남아 있는 재료를 허투루 쓰지 않고 맛있는 한 끼로 되살리는 이탈리아 가정의 지혜가 담겨 있죠. 이날에는 손님들이 빵과 채소를 직접 덜어 자신의 한 입을 완성하도록 준비했는데요, 음식을 고르고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옆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길 바랐어요. 카초 에 페페는 로마 음식의 단순함을 잘 보여주는 요리입니다. 파스타와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 및 후춧가루만으로 만들지만, 온도와 물의 양이 조금만 어긋나도 치즈가 뭉치거나 소스가 분리됩니다. 재료가 적다고 해서 쉬운 요리는 아닙니다. 오히려 단순할수록 요리사의 정확한 기술과 감각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재료를 고를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나요? 재료의 맛과 향, 계절성을 먼저 살펴봅니다. 잘 익은 토마토라면 소금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만으로도 충분하죠. 좋은 재료는 진한 소스나 복잡한 기술 뒤에 숨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도 많은 재료를 사용하려고 애쓰기보다 좋은 재료 몇 가지를 골라 제대로 다뤄보세요. 무엇보다 재료의 상태를 이해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조리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무엇을 더할지 고민하기보다 무엇을 더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일이 좋은 요리의 출발점입니다.
가정식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가정식은 요리하는 사람의 기술을 보여주거나 누군가를 놀라게 하기 위해 만든 음식이 아닙니다. 지금 집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누구와 함께 먹을지,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먼저 생각하죠. 같은 음식이라도 가족의 취향과 그날의 재료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지잖아요. 이탈리아에서는 가족과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직접 만든 음식을 내는 일이 자연스럽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한다는 것은 ‘당신을 생각했다’고 전하는 가장 직접적 방법입니다. 그래서 가정식에는 음식 자체뿐 아니라, 사람을 돌보고 환대하는 따스한 마음까지 담겨 있습니다.
요리사의 길을 걷기 전 이탈리아 해군에서 복무했습니다. 이 경험은 요리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해군 부사관이자 헬리콥터 전문 요원으로 여러 해 동안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다녔어요. 그 과정에서 처음 접하는 식재료와 향신료, 다양한 나라의 조리법을 경험하며 음식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약 2백 명이 20분 안에 식사를 마쳐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빠르게 음식을 제공해야 했지만,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음식이 나오는 날에는 사람들의 표정과 배 안의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고된 하루를 보낸 사람들에게 한 끼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음식 한 접시가 사람을 위로하고 다시 힘을 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배웠고, 이후 요리를 누군가를 돌보는 행위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로마와 나폴리의 전통 요리를 오늘날의 식탁에 옮길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전통을 현대적으로 보여준다고 해서 음식 형태를 많이 바꾸거나, 낯선 재료를 계속 더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먼저 원래의 조리법과 맛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좋은 재료와 세심한 기술로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중요하죠.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지금의 재료와 환경에 맞게 가장 좋은 상태로 보여주는 것이 셰프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와 나폴리 음식은 익숙한 재료를 바탕으로 분명하고 힘 있는 맛을 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지내며 두 나라의 식문화가 닮았다고 느낀 지점이 있나요? 음식을 식탁 가운데 놓고 함께 나누는 문화가 가장 닮았습니다. 한국과 이탈리아 모두 식사를 허기를 달래는 개인적 행위보다 가족과 친구가 한자리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생각한다고 느꼈어요. 서로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고, 식사가 끝난 뒤에도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도 비슷합니다. 제철 식재료를 저장하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문화도 닮았습니다. 한국에 김장이 있다면 이탈리아에서는 여름마다 가족이 모여 토마토소스를 끓이고 겨울 동안 먹을 양을 병에 담아둡니다. 집집마다 다른 조리법과 손맛을 다음 세대에 전한다는 점도 같습니다. 한국의 발효 음식도 인상적입니다. 시간이 식재료의 맛을 얼마나 깊고 복합적으로 변화시키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두 나라의 식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습니다. 다만 김치나 고추장을 이탈리아 음식에 단순히 더하기보다 두 문화가 재료와 시간을 다루는 방식부터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사람처럼 식사를 즐기는 방법과 로마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주세요. 천천히 드세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식탁에 앉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앉습니다.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접시를 비운 뒤에도 대화가 이어집니다. 저에게 한 끼를 완성하는 것은 음식과 사람, 대화, 그리고 그날의 분위기입니다. 와인은 음식이 태어난 지역에서 골라보세요. 풍미가 진한 로마 음식에는 라치오의 레드 와인인 체사네세 델 필리오를, 판차넬라처럼 가볍고 산뜻한 음식에는 프라스카티 수페리오레를 추천합니다. 와인은 음식보다 앞서가기보다 한 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존재여야 합니다.
Chef’s Recipe 1
판차넬라 panzanella

재료 딱딱해진 빵, 여러 종류 방울토마토, 오이, 양파, 생바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식초, 소금, 물
만드는 법

① 방울토마토와 오이, 양파, 바질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방울토마토는 씨와 과도한 수분을 가볍게 제거한다.

② 손질한 채소에 소금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식초를 넣고 버무린다.

③ 빵은 물에 살짝 적신 뒤 물기를 충분히 짠다. 소금으로 간하고 준비한 채소와 고루 섞은 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한 번 더 둘러준다.

TIP 빵은 겉면이 부드러워질 정도로만 적신다. 물에 오래 담가두면 형태가 무너지고 식감이 지나치게 질척할 수 있다.
Chef’s Recipe 2
스파게티 카초 에 페페 spaghetti cacio e pepe

재료(1인분) 스파게티 80~90g,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 100g, 물 3~4큰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드는 법

① 냄비에 소금을 넣고 스파게티를 알덴테로 삶는다.

② 팬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두른 뒤 후춧가루를 넣어 몇 초간 볶아 향을 낸다.

③ 곱게 간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에 70℃를 넘지 않는 물 3~4큰술을 넣고 부드러운 크림 상태가 되도록 섞는다. 볶은 후춧가루를 더한다.

④ 삶은 스파게티는 물기를 빼고 페코리노 크림에 버무린다. 소스가 되직하면 물을 조금 더해 농도를 맞춘다.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와 후춧가루를 조금 더 뿌린다.
TIP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의 염도가 높으므로 면을 삶는 물에는 소금을 평소보다 적게 넣는다. 치즈에 지나치게 뜨거운 물을 넣으면 쉽게 뭉칠 수 있다.
Interview
주한 이탈리아 대사 에밀리아 가토Emilia Gatto
환대를 완성하는 식탁
마르코 페라리 셰프가 이탈리아 가정식의 맛과 함께 먹는 문화를 음식에 담았다면, 이를 국경일의 식탁으로 완성한 이는 행사를 주최한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다. 그에게 국경일의 식탁이 지닌 의미와 이탈리아식 환대에 관해 물었다.

대사님이 생각하는 이탈리아식 환대란 무엇인가요? 핵심은 관대함과 따뜻함입니다. 손님이 집에 오면 "이것도 먹어보라, 저것도 맛보라"며 계속해서 음식을 권합니다. 가능한 한 풍성하게 음식을 내는 것이 손님을 환영하는 방식이죠. 음식을 함께 먹는 동안에는 사람들의 마음도 한결 편안해집니다. 복잡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라도 파스타와 이탈리아 와인을 앞에 두고 앉으면 긴장이 풀리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이게 됩니다. 최근에는 이를 ‘미식 외교’라고도 합니다. 식탁을 차린다는 것은 상대를 환영하고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식탁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접시와 잔, 냅킨, 장식 등 식탁에 놓인 모든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지 봅니다. 관저에서 식사를 준비할 때도 식기의 배치부터 식탁 전체의 색까지 세심하게 살펴봅니다. 한국의 상차림이 비교적 정갈하고 절제되어 있다면 이탈리아의 식탁은 조금 더 풍성한 편입니다. 식탁 중앙에 꽃이나 장식을 놓고 식탁보와 냅킨, 식기의 색이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합니다. 격식을 갖춘 자리에는 식탁보와 천 냅킨을 사용하고, 식탁보를 깔지 않을 때는 패브릭 테이블 매트를 놓습니다. 저는 혼자 식사할 때도 접시 하나만 덩그러니 놓지 않습니다. 접시 아래에 장식 접시를 받치고 식기와 색을 맞춥니다. 특별한 연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은 특별한 날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마주하는 식탁에도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