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멸’과 ‘위기의 농촌’이라는 말이 왕왕대는데, 그걸 가뿐히 뛰어넘어 생태 전환 시대의 발걸음을 말하는 이가 있다. 말하자면 냅싸도(내버려둬) 농법으로 땅과 작물과 생명이 스스로 힘을 내도록 부추기는 농사를 짓는다. “신을 대신해 잠든 씨앗을 깨워 씨앗이 스스로 일을 하도록 만드는” 인공 발아로 몸에 이로운 발아 현미를 만든다. ‘문화가 있는 쌀집 회사’다운 활동도 바지런히 벌인다. 영리와 비영리 사이를 오가는 수상한 회사 미실란을 이끄는 이동현 대표 이야기다.

전남 곡성 장선리에 자리 잡은 미실란. 2005년 시작한 미실란은 지금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농업 성공 모델로 안착했다. 이동현 대표와 업둥이로 들어온 복돌이, 구례 원천초등학교 학생들이 추수 체험을 하러 왔다가 만든 허수아비가 그림처럼 서 있다.
순한 소가 쟁기를 끌 때 소의 발 아래에서는 개미굴이 무너진다. 어린 아이가 참새를 잡을 때 아이 엄마는 웃지만, 참새 엄마는 울음을 참으며 그걸 바라본다. 우리는 모두 가해자다. 흙을 밟고, 쌀로 밥을 지어 먹는 것 자체가 내가 모르는 존재의 행복을 빼앗는 일이다. 모쪼록 미안해하며 살 일이다.

흙물이 들었다는 이동현 대표의 발톱. 볍씨 한 알 한 알이 흙과 천천히 사귀며 자신의 우주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운 농부의 발이다.
우천, 염천의 계절에 전남 곡성의 미실란에 왔다. 7월의 논에서는 벼들이 시어처럼 줄지어 선 채 춤을 추었다. 들판의 모기들은 “하따나! 살집 물렁한 아주매 반갑네, 또 반갑네잉” 하며 덤벼들었다. 그 풍경 안으로 그가 불쑥 끼어들었다. 건강하고 시골스러운 얼굴로 우릴 보고 함박 웃음을 지었다.

국내 최초로 유기농 발아 현미를 개발한 미실란의 역사. 연구한 품종만 1천여 개에 달한다.
농부 과학자 이동현. 대산농촌문화상(2015), 유엔식량농업기구 FAO 모범농민상(2019), 일가상(2024) 등 3대 농업 상을 유일하게 모두 수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대표를 맡은 미실란은 쌀 가공업을 하는 농업회사법인이고, 현미를 안정적으로 발아시키는 기술로는 국내 최정상급이라고 했다(‘발아 현미 제조 장치, 발아 현미 제조 방법 및 식품’이라는 특허도 출원했다). 국립식량과학원과 꾸준히 공동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NGO 단체도 아닌데 왜 이런 일까지 합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 회사라고도 했다. 그리고 2025년 창립 20주년을 맞은 이 회사가 스스로 정의한 정체성은 “나를 돌보고, 들녘을 돌보고, 마을을 돌보고, 지구를 돌보는 기업”이었다. 소설가 김탁환(<불멸의 이순신> 저자)은 이 회사의 철학에 공감하며 2020년에 곡성으로 이주했고, 미실란 2층에 작업실을 차렸다. 이동현 대표에게 논농사와 밭농사도 배운다. 들을수록 이 사람과 이 회사, 수상하다. 호기심이 불끈 솟는다.
그런데 그는 서울에서 온 객들을 두고 논에 들어가 피사리에 빠졌다. 역광을 받아 왜곡된 실루엣은 절하는 것 같기도 했다. 벼들에게, 우렁이에게, 논에 사는 피에게.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소리 없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문화가 꽃피는 마을’을 꿈꾸며 미실란은 생태 책방, 카페, 작은들판음악회, 복도갤러리, 섬진강마을영화제 등 여러 활동을 한다. 하지만 씨앗과 벼농사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농農!
‘농’은 그의 인생의 가장 큰 단어였다. 전남 고흥의 한학자가 69세에 얻은 아들, 평생 책만 보던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산밭을 개간하며 키운 7남매의 막내였다. 논밭에서 뒹굴며 자란 그는 대학에서 식물병리학을(국립순천대 농생물학과), 서울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는 독소 곰팡이를,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간 규슈 대학교 박사과정에서는 해충 방제에 주로 이용되는 미생물을 연구했다.
“큰형님이 오이를 재배했는데, 농약에 만성 중독되어서인지 늘 머리가 아프다며 약을 먹었어요. 다들 그런 시절이었으니까요. 어린 시절 내가 들이켠 시냇물과 좀 커서 마신 시냇물이 똑같은 물인데, 왜 어떤 건 배앓이에 피부 트러블까지 일으킬까? 궁금했어요. 달라진 건 농약하고 화학비료 섞인 물이 흘러들었다는 것뿐인데, 사람이 이렇다면 다른 생물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런 생각에서 미생물과 해충 방제를 연구했죠.”
전도양양한 농생물학자로 한국에 돌아왔으나, 결국 교수는 되지 못했다. ‘줄 서는 방법’을 몰랐다. 그길로 미생물로 병충해를 방제하는 신약 제조 벤처를 창업하고 특허까지 여럿 냈지만, 이번엔 ‘잘 파는 일’을 못했다. 당시 어머니는 위암 말기 투병 중이었고, 둘째 아들은 중증 아토피로 독한 항생제와 스테로이드 때문에 간과 장이 망가진 상태였다. 그런데 늘 그렇듯 생은 숨은그림찾기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원인과 결과를 보여준다. 어머니가 농사를 더 이상 지을 수 없어 고흥 땅을 팔았는데, 그걸 산 사람이 현미 발아기 기술자였다. “내 발아기의 발아율이 너무 낮으니 과학자가 좀 도와달라”던 기술자의 부탁은 “당신이 발아현미를 해보라”로 바뀌었다. 때마침 예전에 그의 강의를 들은 곡성군수가 폐교와 논 등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현재 미실란에서는 1백여 개 품종을 심고 기르며 연구한다. 현미를 적정한 온도와 습도에서 싹틔운 발아 현미는 GABA, 아라비녹실란, 감마오리자놀 등 귀한 영양소를 가득 담고 있다. 특히 미실란 발아 현미는 농촌진흥청, 전남대학교, 분당재생병원과 함께 국가연구과제(2015~2017)를 통해 당뇨와 비만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새만금 시민 생태 조사단 활동 때 야생 조류의 식습관을 살폈는데, 그중 기러기가 먹는 낟알이 자연 속에서 싹을 틔운 발아 현미였어요. 철새들이 어디서 힘을 얻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나 궁금했는데, 힘의 원천이 그거였던 거죠. 당시 아들의 아토피가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해졌거든요. 미생물 연구에서 장내 미생물을 지키는 식습관에 대한 연구로 확장해봐야겠다, 내가 직접 건강하게 기른 벼로 그 연구를 해봐야겠다, 그걸로 아들과 어머니를 살려야겠다, 이게 과학자이던 제가 농업 회사를 시작한 계기입니다.”
2006년 초등학교 1학년 큰아들, 유치원생 둘째 아들 손을 잡고 이동현·남근숙 부부는 곡성에 왔다. 2백78종의 벼를 품종별로 한 줄씩 손 모내기했다. 어느 품종이 발아가 잘되는지, 병충해에 강한지, 맛과 기능은 어떤지를 연구했다. 발아기도 거듭 개량해가며 4호기까지 만들었다. 연구한 품종만 1천여 종에 달했다. 하지만 밤의 기운이 손님처럼 다가오면 그는 남몰래 고뇌했다.
“저는 능동적으로 선택한 길이지만 아내는 저를 따라온 거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아내의 잠자는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거예요. 이 사람 너무 힘들구나, 싶었죠. 밤이면 하이브레인넷 같은 데 들어가서 교수나 과학자 채용 공고를 찾아보고, 지도교수님께 편지도 썼어요. 보내지 못한 편지였지만. 그때까진 학문에 대한 욕구도 있었거든요.”
날 생生 자는 땅 위로 새싹이 돋는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이면서,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건넌다’라는 파자破字로도 읽힌다. 삶이란 피할 곳도 없이 한길, 연습이란 없는 길, 위태로운 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역설이 한데 있다는 것이 삶의 묘미일 터. 그와 김탁환 작가가 함께 쓴 책 <모든 생명은 지키는 것이다>에 그를 일으켜준 온갖 생명 이야기가 가득하다.
“생명이 없는 듯 비어 보이지만 벼 그루터기는… 벼 대롱을 통해 공기를 머금으며 땅속 수많은 생명에게 온기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논갈이하는 트랙터에 갈려 흔적이 사라지겠지만, 다음 세대의 벼가 잘 클 수 있도록 거름이 되어 지구의 생명 창고 들녘을 품어줄 것입니다.”_‘1월_고요한 것들의 분주함’ “자연의 생명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시간을 들여 움직이지요. 흙과 돌의 무게를 느끼며, 누군가의 발길에 짓밟히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땅을 박차고 나와 아름다운 꽃을 피울 준비를 합니다.”_‘2월_야생의 힘은 끈질기다’
그리고 그를 곡성으로 이끈 둘째 아들은 지금 자신을 살린 발아 현미 품종으로 대학 연구소에서 면역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이동현 대표도 연구에 참여하면서 논문에 부자 이름이 같이 오르게 됐다. “미실란 역사와 스토리의 방점이 결국 아들 재욱으로 찍히는 것 같아 감동스럽다”는 말이 감동스럽다. 큰아들 재혁 씨는 미실란의 직원이자 1천2백 평의 개인 농사를 짓는 농부다.

현재 미실란에서는 1백여 개 품종을 심고 기르며 연구한다. 현미를 적정한 온도와 습도에서 싹틔운 발아 현미는 GABA, 아라비녹실란, 감마오리자놀 등 귀한 영양소를 가득 담고 있다. 특히 미실란 발아 현미는 농촌진흥청, 전남대학교, 분당재생병원과 함께 국가연구과제(2015~2017)를 통해 당뇨와 비만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미실란이 20년째 지켜온 원칙이 있다. ‘화학비료·농약·제초제를 쓰지 않고 논 속 작은 생명들이 스스로 논을 살리는 힘을 믿는다. 병해충에 강하고 밥맛과 기능성 좋은 종자를 지역 농가와 나눈다. 볏짚은 일부라도 논으로 돌려보내 땅이 스스로 힘을 내도록 돕는다.’ 서두에서 말한 ‘나를, 들녘을, 마을을, 지구를 돌보는 기업’이라는 문장은 이 세 가지 원칙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모든 생명은 지키는 것이다’라는 그의 생각이 깔려 있다.
“현미를 발아시킬 때 보면요, 작은 씨눈에서 뿌리 하나, 싹 하나, 이렇게 둘이 동시에 나와요. 뿌리는 얇고, 싹은 두툼하죠. 정말 신비해요. 검은 쌀에선 하얀 싹이 사악 올라오는데, 아름답고 영롱해요. 그 어린 생명들이 엄마 자궁처럼 어두운 곳에서 물을 먹고 싹을 틔워요. 그걸 보고 있으면 어떤 생명이든 태어날 때는 이유가 다 있다는 걸 깨닫게 되죠. 이유가 있어서 나왔으니까 모든 생명은 지켜내야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뱀도, 모기도, 땅속 생명들도, 잡초도 전부 박멸하려고 하잖아요. 하다 못해 나보다 못난 사람도요. 사실 그들 모두 지구를 지탱하게 해준 존재인데 말이죠. 인간만 잘 살 수 있는 지구는 없어요. 저와 미실란은 최소한의 기본을 지키려는 겁니다.”
나는 그의 말에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던 무위당 장일순(1970~1980년대 생명운동가)을 떠올렸다. “돈을 모시지 말고 생명을 모시고, 쇠물레(기계)를 섬기지 말고 흙을 섬기며, 눈에 보이는 겉껍데기를 모시지 말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알짜로 값진 것을 모시고 섬길 때만이 마침내 새로운 누리가 열린다”는 무위당 철학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미실란은 볍씨 한 알 한 알이 흙과 천천히 사귀고,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충분히 인내하는 전통 농사법의 정신을 이어가려고 해요.”
이러한 생각은 마을과 지구를 돌보는 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미실란은 해마다 주변 초중고 학생들에게 모내기 체험, 논 생물 다양성 체험, 추수 체험 등 생태 강의를 한다. “아이들이 생명을 키워본 적이 없으니 지나가는 벌레 하나, 개구리 하나도 날 귀찮게 하면 나쁜 놈, 사람도 내 편이 아니면 나쁜 놈 하면서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귀촌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한다. 생태 관련 책만 파는 생태 책방 ‘들녘의 마음’도 운영한다. 2006년부터 미실란 작은들판음악회·전시회도 연다. 섬진강마을영화제도 열고, 그림·사진 전시도 진행한다. “NGO 단체도 아니면서 왜 이런 일까지 하느냐”라는 질문을 숱하게 받는다.
“농촌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이고, 재미는 문화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아름다운 농촌과 농업의 뿌리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로 문화를 끌고 온 거죠.”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를 넘어 함께 누리는 문화를 만들고 이어가는 것. 미실란이 싹틔우고 싶은 다음 씨앗이다.

이동현 대표와 김탁환 작가가 올해 펴낸 <모든 생명은 지키는 것이다>.
농사라는 ‘막’
사람들이 그에게 “박사가 왜 이렇게 힘든 일만 골라서 하냐”고 물으면 “긍께요…” 하고 웃고 만다. “아마도 울 엄마 아들이라 부지런히 살 운명인 것 같다”고 얼버무린다. “유기농이 무엇이냐” 물으면 “거창하지 않아요. 조상들이 몸 써서 풀 베고, 헤어리베치나 자운영 같은 녹비 식물로 비료를 삼던 방식을 제가 조금 더 과학자의 눈으로 풀어가는 것이죠”라며 머리를 긁적인다. 20년 동안 그가 한 것은 그것뿐이라고 한다.
“곡성이 1815년 을해박해를 피해서 온 신앙인들이 자리 잡은 덕실마을 옹기촌으로 유명해요. 그때 옹기장이들이 안에 들어 있는 게 뭔지 과학적으로 설명했겠어요? 감이잖아요. 오랜 수련 끝에 몸에 축적된 감. 그런데 후에 조사해보면 불의 온도, 흙의 성분, 습도까지 굉장히 과학적이잖아요. 저도 자연이, 조상들이 해오던 방식을 해마다 몸으로 반복한 거예요. 20년쯤 되니까 비로소 논이 원하는 것, 벼가 필요한 것을 몸이 알게 되는 거고요. 과학이 다 설명하지 못한 것도 몸이 먼저 알아채요. 이게 건강한 농사에 담긴 ‘막’의 정신일 거예요.”
세계 최초로 자연에 헌법적 권리를 맡긴 에콰도르의 헌법에는 애니미즘이 보장되어 있다. 동식물뿐 아니라 땅과 절벽도 ‘있는 그대로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선언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강물처럼 흘러온 그의 이야기에도 같은 메시지가 있다. 모든 생명은 지키는 것, 지켜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어처구니없는 역설이 하나 있다. 가치 대신 생존을 좇는 동물과 식물은 조화를 이뤄내는데, 생존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은 그 균형을 깨뜨린다. 우리도 그처럼 절하듯 땅에 몸을 숙여야 하는 이유다. 모든 생명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
막사발, 막걸리, 막국수, 막춤…
접두사 ‘막’에는 서툴고 투박하지만 일단 해보는 한국인의 기질과 태도, 정신, 용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기질이 어떤 감각과 만날 때 남다른 디자인과 예술로 확장되고, 벤처 정신이 돋아납니다. ‘막, 크리에이티브!’를 디자인하우스의 50주년 기념 문화 캠페인으로 삼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