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디자인페스티벌의 주제는 ‘정박지碇泊地’. 정박지는 그저 배가 멈추는 곳이 아닌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오가며,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된 부산은 디자인 문화도시로서 꾸준히 성장하며 수많은 창작자와 브랜드가 교류하는 하나의 정박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백1개 회사, 2백98개 부스가 참여한 이번 부산디자인페스티벌은 디자인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주요 전시 트렌드를 소개한다.

실제 산업 현장을 반영함으로써 부산의 산업적 기반과 문화적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도시와 디자인이 시작되는 곳
<정박지Anchoring Site>
부산항 개항 1백50주년을 맞아 선보인 주제관 전시 〈정박지〉에서는 항만도시 부산의 정체성과 사람, 사물, 트렌드가 교류하는 물류 네트워크를 디자인의 시선으로 재해석했다. 전시 기획은 공간 기획과 브랜딩 프로젝트를 이어오며 부산의 로컬 문화와 지역성을 꾸준히 탐구해온 로컬바이로컬의 홍순연 대표가 맡아 부산만의 지역색을 전시 곳곳에 녹여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새로운 영감과 창의성이 출항하는 디자인 플랫폼으로서 부산의 역할을 조명하는 동시에, 부산항의 1백50년에 달하는 역사와 미래를 하나의 상징적 공간으로 풀어내며 많은 관람객의 관심을 모았다. 부산의 항만도시성을 바탕으로 선박과 물류, 수출입 화물, 일상 오브제를 입체적으로 구성한 전시는 입구에 설치된 거대한 선박 형태의 구조물이 관람객을 맞이했다. 선적 화물선의 외피와 화물 목상자를 모티프로 공간을 구성하고, 산업 물품과 라이프스타일 오브제를 선적된 화물처럼 배치해 부산이 축적해온 이동과 교역, 생산 풍경을 시각화했다.
INTERVIEW
로컬바이로컬 대표 홍순연
도시를 읽는 디자인
정박지라는 주제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부산을 가장 부산답게 보여주고 싶었다. 크레인과 부두, 항로, 수출입 화물, 예인선과 화물선 같은 풍경은 부산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특히 부산은 수많은 사람과 물건이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출발하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해왔고, 그런 의미에서 정박지는 사람과 사물, 기억과 이야기가 교차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전시의 출발점은 영도의 수리조선소와 공업사에서 발견한 작은 이야기들이었다. 지역의 산업과 사람들의 삶이 결국 부산이라는 도시의 서사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고, 이를 전시로 풀어내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디자인 언어로 풀어낸 것이기도 하다. 부산항을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바라보는 시도였다. 선박과 물류, 산업 현장, 그리고 그 현장 속 사람들의 움직임을 디자인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특히 일방적 관람 동선보다는 다양한 시선과 관계가 교차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 부산의 디자인은 완성된 결과물보다 다양한 산업과 문화 및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만나고 섞이는 과정 자체에서 비롯된다.
전시에는 완성된 디자인 오브제보다 실제 작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물건이 주로 등장한다. 선박 수리소에서 사용하는 공구나 선용품, 수출 포장 박스처럼 오랜 시간 현장에서 사용해서 다듬어진 물건에도 고유한 디자인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번 전시의 중요한 오브제인 수출 포장 박스를 포함해 전시에 사용한 물건은 대부분 실제 현장에서 쓰는 것으로 구성했다. 사용하기 위해 만든 물건들이 전시장 안에서 재해석되고, 하나의 디자인 오브제로 바라보길 바랐다.

〈떠오른 것들〉 전시 전경.
물성을 따라 유영하다
<떠오른 것들Floating Gravity>
디자인&크래프트 특별전 〈떠오른 것들〉에는 전시를 디렉팅한 석철목 스튜디오를 비롯해 김병섭, 헵 스튜디오, 노용원, 박은총, 오늑까지 여섯 팀이 참여해 금속·가죽·목재·섬유 등 다양한 재료를 기반으로 만든 아트 퍼니처와 크래프트 및 오브제를 선보였다. 여러 개의 원형 덱을 배치해 물의 흐름을 닮은 공간을 연출하고, 그 위에 작품이 떠오르듯 놓이며, 마치 각자의 오브제가 파도처럼 너울지는 듯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균형 속 비균형의 개념을 구축해온 박은총 작가는 서로 다른 방향의 선들이 교차하며 완성되는 플로어 램프와 구조적 오브제를 선보였다.
한국의 전통과 동시대적 일상 사이의 대비를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내는 노용원 작가는 전통 나무 소반에서 살을 덜어낸 듯한 형태를 통해 전통과 현재의 관계를 나타냈다. 다양한 물성을 결합해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는 석철목 스튜디오는 금속의 면과 구조가 만나는 스툴을 통해 절제된 비례 안에 조형적 긴장감을 담아냈다. 기술과 미학의 균형 속에서 낯선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는 헵 스튜디오는 네 조각으로 나뉜 원기둥이 의자의 다리이자 구조가 되는 작업을 통해 분리된 면이 다시 만나며 형성하는 관계에 주목했다.

김병섭 작가는 평면 재료로 쓰는 합판을 목선반으로 깎아내 단면의 결을 드러낸 스툴로 익숙한 재료에 새로운 미감을 부여했다.
원형의 합판 위에 놓인 각각의 피스는 부유하듯 가벼워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재료가 지닌 무게와 질감 및 구조적 존재감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각기 다른 재료가 지닌 밀도와 물성은 저마다의 존재감을 발산하며 하나의 조형적 풍경을 완성했다.
INTERVIEW
석철목 스튜디오 대표 박현희
관계를 엮어 하나의 물결로
〈떠오른 것들〉이라는 전시에는 어떤 의미를 담았나? 이번 특별전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지닌 지역성에서 출발했다. 다만 바다나 항로를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이를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전시 제목인 ‘떠오른 것들’ 역시 그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물 위를 떠다니는 부유의 이미지와 재료가 가진 물리적 무게감이 공존하는 상태를 주목했고, 서로 다른 개성과 서사를 지닌 작품들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떠오른 듯 존재하기를 바랐다. 각각의 작품이 독립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으면서도 함께 모여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장면을 상상하며 전시를 구성했다.
전시가 마치 물결이 흐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공간 디자인은 어떤 과정으로 완성했나? 바다를 형상화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지만,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바다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수많은 각도와 리듬이 공존한다. 그래서 몇 가지 기준이 되는 각도와 크기를 설정하고, 이를 반복하면서도 변주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설계했다. 원형과 반원 형태를 기본 모티프로 삼고, 서로 다른 높이와 배치를 통해 물결처럼 흐르는 장면을 만들고자 했다. 관람객의 동선 또한 직선이 아닌 유영하듯 이어지도록 구성해 공간 전체가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
작품 아래 배치된 원형 구조물이 인상적이다. 전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재료 본연의 물성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많은 재료를 사용하기보다 목재와 금속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조합을 통해 다양한 의미를 담고자 했다. 원형의 합판 구조물은 떠오름과 표류, 일렁임 같은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여기에 금속 구조와 반사되는 요소들을 더해 멀리서도 물결이 반짝이는 듯한 풍경을 구현해냈다.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날 때 생기는 긴장감과 조화 역시 공간의 중요한 요소였다.

패션 디자인 부문의 콩벌레, 공예 디자인 부문의 선자연 데스크 등 분야별 수상작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친환경 디자인의 현재
ESG와 친환경 소재에 대한 관심이 디자인 산업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이번 전시에서는 리사이클 소재를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 사례도 만날 수 있었다. 동아랩스(donga-labs.com)는 종이 기반 구조 시스템을 활용해 부스부터 가구까지 모두 친환경 소재로 구현한 공간을 선보였다.

빵을 재가공해 시즈닝으로 탄생시킨 럭키베이커리의 럭키 매직 파우더.
압축 제작한 특수 골판지를 육각형 허니콤 구조로 설계한 경량 모듈 시스템은 설치와 해체가 용이할 뿐 아니라 소파, 테이블, 조명 등 다양한 가구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부산시와 부산디자인진흥원이 함께 선보인 부산 리사이클 디자인 부스(dcb.or.kr/main/)에서는 업사이클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아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다양한 방향성을 소개했다.

동아랩스는 종이 소재를 활용해 크기와 형태의 제약 없이 다양한 제품을 구현한다.
커피를 추출한 후 버려지는 커피박으로 친환경 콘크리트 패널을 제작하는 디자인마인드플러스, 폐PVC 타포린 원단으로 가방을 만드는 포슬, 굴 패각을 활용한 화분을 선보인 니토디자인, 디카페인 커피박으로 친환경 고양이 모래를 개발한 해은디자인 등은 리사이클 소재가 더 이상 낯선 실험이 아닌 일상 속 제품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폐커피 자루와 재생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스툴과 선베드를 선보인 테이블타임즈.

로하스 포터리의 모바일 커피 세트. 수납 가능한 컵, 티포트로도 활용할 수 있는 서버를 담아 언제 어디서나 핸드 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다.
글로벌 디자인의 새로운 좌표
부산 역시 글로벌 디자인이 모이고 교류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만디자인연구원(tdri.org.tw/en)이 큐레이션한 디자인 쇼케이스에서는 공공 디자인 사례부터 생활 문제 해결형 제품, 상업화된 디자인 브랜드까지 대만 디자인의 다양한 성과를 소개했다. 특히 실용성과 아이디어를 겸비한 제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로하스 포터리Lohas pottery는 구성품을 포개어 하나의 형태로 수납할 수 있는 포터블 커피 세트를 선보였고, 교육용 놀이 브랜드 위플레이Weplay는 폭이 좁은 디딤 블록과 불규칙한 구조를 갖춘 파일 밸런스 업Pile Balance Up을 통해 아이들이 실내에서도 숲속 미로를 탐험하듯 균형 감각과 신체 능력을 기를 수 있는 놀이 환경을 제안했다. 부산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한 부산국제디자인어워드(dcb.or.kr/main/) 전시 역시 글로벌 디자인 흐름을 조망할 수 있었다. 34개국의 디자이너와 학생들이 참여해 가구·테이블웨어·그래픽·패션 등 다양한 분야의 수상작을 선보이며, 부산에서 글로벌 디자인의 흐름과 사회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익숙한 사물의 형상을 낯설게 조합하는 작업을 이어온 이강연 작가의 콘솔 테이블 닭.

오늑은 신제품 엘-라인 L-line을 통해 한국 고유의 정서인 어우러짐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생활로 스며든 디자인 가구
구조미와 소재의 다양성이 돋보인 이번 전시에서는 동시대 디자인 가구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전통 오브제의 여백과 균형에서 비롯한 미학을 현대 공간 안에 풀어내는 오늑(@onheuk.official)은 먹빛의 깊이를 품은 목재 가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반투명 아크릴 소재를 적용한 신제품을 선보였다. 식물과 함께 어우러지도록 여백을 남긴 구조를 통해 사람과 자연, 서로 다른 물성의 조화를 표현했다. 유스투바운더리(@youthtoboundary)는 거울과 선반을 결합한 신제품, 수직의 녹청 금속판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Strata스트래터 체어를 통해 브랜드 특유의 절제된 개성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오브제 같은 가구를 선보였다. 디자이너 김강민(@potato__kimkang)의 픽셀 퍼니처Pixel Furniture는 카드 게임에 착안한 픽셀 조각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도록 설계해 색과 형태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캐비닛을 선보였다. 디자인 브랜드 메트릭(@metric.dsgn)은 결합과 분리에 따라 스툴과 사이드 테이블 기능을 오가는 모듈형 가구 트래피즈Trapeze와 단차를 활용해 시각적 복잡함을 줄인 협탁을 선보이며 기하학적 가구가 일상에서 기능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금속을 중심으로 가구와 오브제를 전개하는 이강연(@gvngyeon)은 동물과 음식 등 쉽게 소모되는 대상을 가구 안에 배치해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작업으로 새로운 시선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