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의 여행은 늘 하나의 오브제에서 시작해 더 넓은 세계로 향한다. 20세기 초 아르데코를 대표하는 예술가 피에르 르그랭의 유산에서 출발한 이번 전시는 아이코닉한 트렁크와 새로운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현대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한데 엮으며 과거와 현재, 장인 정신과 예술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루이 비통이 2026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여행의 또 다른 장면들이다.

팔라초 세르벨로니에서 펼쳐진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전시. 피에르 그르랭의 유산을 이어가는 컬렉션을 선보인 것.
아르데코의 기억, 오늘의 오브제
루이 비통은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을 통해 한 예술가에게 깊은 헌사를 바친다. 그 주인공은 1920년대 프랑스 아르데코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피에르 르그랭Pierre Legrain이다. 북바인딩과 가구, 오브제, 일러스트레이션을 넘나들며 독자적 조형 언어를 구축해온 그는 기하학적 리듬과 대담한 색의 대비, 소재를 다루는 감각, 장식과 구조를 하나로 결합하는 태도로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했다. 루이 비통은 이번 컬렉션에서 그 감각을 오늘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으로 끌어들인다. 전시가 시작되는 팔라초 세르벨로니의 잔갈레아초 룸Gian Galeazzo Room은 그 여정의 첫 장면이다. 1920년대 익스프레스 열차를 연상시키는 공간으로 구성한 이곳은 우리를 1백 년 전 아르데코의 전성기로 데려간다. 모노그램 플라워 조명을 설치한 천장 아래, 양옆으로 길게 뻗은 복도와 객실을 닮은 내부는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압도적 몰입감을 선사한다. 벽면에는 루이 비통 헤리티지 컬렉션의 희귀한 오브제들이 놓이고, 피에르 르그랭의 유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트렁크가 자리한다.

1백 년 전 열차 객실을 재현한 듯한 공간 가운데 피에르 르그랭의 유산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자를 위한 이동식 아틀리에’로서 기능성에 집중한 트렁크를 선보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이동을 위한 트렁크에서 출발한 ‘여행의 예술’이 가구와 텍스타일 및 오브제로 이어지며, 피에르 르그랭의 언어는 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그의 선과 색, 구조와 장식은 루이 비통의 장인 정신을 거쳐 이번 컬렉션 안에서 아름다운 형태를 얻는다.

1921년 원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셀레스트 드레싱 테이블.
지금 시대를 대표하는 현대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루이 비통은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이 단순한 가구와 오브제의 집합이 아니라, 여행과 예술 및 생활이 만나는 하나의 세계임을 보여준다.
피에르 르그랭의 유산에 대한 헌사
피에르 르그랭 오마주 컬렉션은 한 예술가의 유산을 제품의 디테일 속에서 다시 읽어낸다. 북바인딩에 담긴 기하학 패턴은 패브릭과 트레이의 표면으로 확장되고, 가구에 남은 선과 구조는 새로운 체어와 드레싱 테이블 형태로 이어진다. 루이 비통은 르그랭의 유산을 그대로 복각하지 않고 소재와 방식, 비례와 장식미를 통해 재해석한다. 그중 셀레스트 드레싱 테이블Céleste Dressing Table은 1921년 가스통 루이 비통이 피에르 르그랭에게 의뢰한 메종 최초의 가구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커다란 타원형 거울을 중심에 두고, 양옆의 검은 패널과 투명한 유리 상판이 수평으로 뻗어나가며, 간결하면서도 균형 잡힌 구조를 이룬다. 리비에라 실리엔 체어Riviera Chilienne Chair는 르그랭의 곡선미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오크와 가죽, 자개 장식을 사용해 기존 디자인의 접이식 구조를 살렸다. 휴식을 위한 의자이면서도 하나의 조형 오브제처럼 존재감을 드러낸다. 책 표지에 적용한 그래픽은 프래그먼트 트레이와 패브릭으로 이어진다. 강렬한 색면과 기하학적 구성은 트레이, 소파 암체어, 러그 위에 표현했다. 크리스티안 모하데드Cristian Mohaded의 아벤투라 암체어Aventura Armchair 역시 이 흐름 안에 놓인다. 아르데코에서 영감받은 메트로폴리스 패브릭은 르그랭이 1925년 선보인 책 표지에 착안한 패턴을 담고 있다. 벨벳 자카르 위로 은은하게 드러나는 V 디테일은 우아하면서도 고급스럽다.

메트로폴리스 텍스타일을 적용한 새로운 에디션의 돌스Dolls 체어.
INTERVIEW
피에르 르그랭의 후손, 플로랑 크리스톨 바르테스Florent Cristol Barthes
보존에서 진화로: 피에르 르그랭의 유산이 완성한 오늘날의 디자인 언어
오늘날의 디자인 언어로 피에르 르그랭의 작품 세계를 정의한다면 어떤 단어를 꼽을 수 있는가? 한 단어로 말하자면 ‘파격disruptive’이다. 1920년대 아르데코 전성기, 그의 작업은 당대 대중이나 언론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대담하고 독창적이었다. 그러나 안목 있는 유명한 고객들이 먼저 그의 진가를 알아보고 작품을 찾기 시작하면서 역사에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기존 시대적 규범이나 코드에 얽매이지 않던 그의 대담한 태도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펑크punk’ 정신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

피에르 르그랭이 디자인한 북바인딩의 그래픽 구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뉘 드 파리. 텍스타일과 쿠션으로 구현해 공간에 아르데코적 색채와 리듬을 더했다.
파격이라는 단어처럼 이번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을 통해 드러난 과감하고 대범한 그래픽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원과 선을 활용한 기하학적 기본 구조 위에 이질적 소재들을 과감하게 결합해낸 덕분이다. 피에르 르그랭은 가죽과 자개nacre, 금속, 거울뿐 아니라 뱀가죽 같은 전위적이고 독특한 소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뚜렷한 시그너처를 구축했다. 1백 년 전 작업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기하학적 리듬감이 살아 숨 쉬며, 흔히 볼 수 없는 압도적 페르소나와 현대적 조형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피에르 르그랭이 디자인한 북바인딩의 그래픽 구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뉘 드 파리. 텍스타일과 쿠션으로 구현해 공간에 아르데코적 색채와 리듬을 더했다.

북 커버에서 영감을 받은 그래픽은 다양한 색상의 나무와 가죽을 결합한 정교한 마르퀘트리 패턴으로 재해석해 예술적 트레이로 재탄생했다.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유산을 이어갈 때 보존과 재해석의 경계는 어떻게 정의하는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테이블과 체어, 카펫, 병풍 등은 1920~1925년 당시 피에르 르그랭이 남긴 오리지널 도면을 바탕으로 가급적 원형 그대로 고증하고 복원하는 ‘보존’에 집중했다. 앙드레 그루와 피카소 및 마티스 등 당대 거장들과 공유하던 원과 선이라는 예술적 문법을 지키며, 그가 생전에 시도하던 정교한 북바인딩 디자인의 디테일을 가구 형태로 치환하는 등 고유한 제작 방식을 철저히 따랐다. 반면 진정한 ‘재해석’은 피에르 르그랭의 정신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그 위대한 유산을 또 다른 형태의 예술로 끊임없이 변형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루이 비통과 함께 단순히 아카이브 복원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역량 있는 현대 디자이너들과 지속적으로 협업해 이 유산이 어떻게 새로운 디자인 소스로 살아 움직이는지 그 진화 과정을 보여줄 예정이다.

북 커버에서 영감을 받은 그래픽은 다양한 색상의 나무와 가죽을 결합한 정교한 마르퀘트리 패턴으로 재해석해 예술적 트레이로 재탄생했다.
오브제 노마드로 이어가는 장인 정신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은 여행의 정신을 가구와 오브제, 공간의 언어로 풀어온 프로젝트다. 과거의 아르데코가 기하학적 선과 장식적 질서로 한 시대의 미감을 만들었다면 오늘의 디자이너들은 소재와 빛, 착시와 구조를 통해 루이 비통의 ‘여행의 예술’을 새로운 형태로 이어간다.

에스투디오 캄파냐의 캐비닛 칼레이도스코프와 베이비-풋, 코쿤 다이크로익은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포인트다.
가브리오 룸Gabrio Room에는 다양한 스케일과 형식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이 자리한다. 피에르 르그랭 오마주 컬렉션의 대형 티칼Tikal 러그를 중심으로 드로잉룸과 다이닝룸, 서재처럼 구성한 공간은 짙은 미드나이트 블루와 브라운 컬러 팔레트로 차분하게 연결된다. 각각의 오브제는 따로 놓인 작품처럼 보이기보다 하나의 방 안에서 오래전부터 함께 존재해온 물건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보아르네 룸Beauharnais Room에서는 샬롯 페리앙 트리뷰트 컬렉션의 테이블보에서 가져온 블루와 베이지 모티프가 공간을 부드럽게 감싸고, 모노그램 플라워에서 착안한 플레이트와 마크 뉴슨Marc Newson의 캔들, 패트릭 주앙Patrick Jouin과 크리스티안 모하데드의 가구가 그 위에 놓인다.
부두아Boudoir에서는 에스투디오 캄파냐Estudio Campana의 캐비닛 칼레이도스코프Kaléidoscope와 베이비-풋Baby-foot이 공간의 분위기를 단숨에 바꾼다. 물속에 들어온 듯한 초록빛 공간 안에서 가죽 마케트리와 인어를 연상시키는 구조는 장인 정신을 한층 유쾌하고 환상적 방식으로 드러낸다.
여기에 제랄딘 곤잘레스Géraldine Gonzalesz와 협업한
한 코쿤 다이크로익Cocoon Dichroic은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잎 형태의 조각들로 미래적 분위기를 더한다. 그랑 푸아예Grand Foyer에서는 영국 스튜디오 로우 에지스Raw Edges의 스텔라Stella 암체어가 관람객을 또 다른 차원의 여정으로 이끈다. 시각적 착시를 일으키는 텍스타일 커버링과 유기적 형태는 의자의 기능을 넘어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멀리서는 하나의 조각처럼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격자와 곡선 및 패턴과 볼륨이 서로 밀고 당기듯 살아난다.
INTERVIEW
로우 에지스
상상을 현실로 빚어내는 파격, 로우 에지스가 해석한 루이 비통의 여행과 장인 정신

2차원의 텍스타일을 3차원 공간으로 확장한 로우 에지스의 스텔라 암체어.
로우 에지스의 작업을 관통하는 공통된 태도는 무엇인가? 어떤 작업이든 그 중심에 명확한 테마와 방법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구조와 패턴 그리고 그것이 구현되는 제작 과정 자체를 탐구하는 일이다. 루이 비통과 협업하는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쉽게 소비되는 물건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귀중한 오브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으로 선보인 리빙 공간과 다이닝 테이블 공간. 그래픽적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브제 노마드 프로젝트에서 루이 비통의 헤리티지를 어떻게 해석했는가? 15년 전 진행한 첫 협업은 접이식 가구처럼 물리적 이동에 충실한, 문자 그대로 ‘여행’이었다. 하지만 지금 해석하는 여행은 ‘상상 속으로의 여행traveling in the imagination’으로 확장됐다. 루이 비통과의 작업이 진정한 럭셔리인 이유는 파격적 아이디어를 제안해도 브랜드가 망설임 없이 ‘한번 가봅시다Let’s go for it!’라고 응해주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완벽한 현실로 빚어내는 신뢰와 사보아 페어, 장인 정신, 이것이 루이 비통의 정수다.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으로 선보인 리빙 공간과 다이닝 테이블 공간. 그래픽적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작업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이번 프로젝트는 조금 엉뚱한 반전에서 시작됐다. 초기 아이디어는 조각하듯 정교하게 깎아내는 ‘작은 나무 상자small wooden box’를 만드는 것이었다. 구조를 스케치하던 중 “작은 상자는 잊어버리고 아예 스케일을 키워 거대하고 편안한 소프트 체어로 만들자!”라는 파격적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소품의 구조를 거대한 가구로 확장하고, 앉을 공간이 없던 초기 모델을 ‘의자’로 기능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이번 작품은 ‘그리드와 곡선 형태의 유기적 관계’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나무 구조에서 출발한 격자가 패브릭으로 치환되며 탄생한 독특하고 풍성한 곡선미를 주목해달라.

1865년 디자인한 말 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트렁크. 안락한 침대로 변형되는 독창적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트렁크에서 다시 시작되는 여행의 예술
1854년 창립 이래 루이 비통은 여행을 위한 트렁크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루이 비통에 트렁크는 단순한 수납 도구가 아니다. 이동하는 삶을 정리하는 방식이자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이며, 장인 정신과 기능적 아름다움을 결합한 하우스의 가장 오래된 언어다.

말 쿠리에 로진 메종 드 파미유: 퍼렐 윌리엄스와 협업해 탄생했으며,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을 적용해 루이 비통의 장인 정신을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트렁크.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비아 몬테나폴레오네 매장에서는 전체를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한 말 쿠리에 로진 메종 드 파미유Malle Courrier Lozine Maison de Famille가 공개됐다. 루이 비통 남성 컬렉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퍼렐 윌리엄스의 패션쇼를 위해 제작한 이 작품은 아니에르쉬르센에 자리한 루이 비통 패밀리 하우스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에서 영감을 받았다. 트렁크의 단단한 구조 위로 빛과 색이 스며드는 모습은 익숙한 여행 가방을 하나의 건축적 오브제로 바꿔놓는다.

말 비블리오테크Malle Bibliothèque: 소품과 서적을 수납할 수 있는 모듈형 구조로, 루이 비통의 여행 철학을 인테리어 오브제로 승화시킨 트렁크.
유리공예와 트렁크 제작 기술이 만난 이 작품은 전통과 혁신이 어떻게 하나의 형태 안에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함께 전시한 말 파라방Malle Paravent은 노마딕한 삶을 또 다른 방식으로 제안한다. 내부에는 옷과 액세서리를 위한 수납 구조가 정교하게 짜여 있고, 가죽 마감과 스티치 디테일에서는 루이 비통이 오랫동안 쌓아온 사보아 페어가 드러난다. 펼치는 순간 하나의 작은 드레싱 공간이 되는 이 트렁크는 이동하는 삶 속에서도 아름답고 기능적 공간을 만들 수 있음을 우아하게 보여준다.

말 파라방: 접이식 파티션 형태로 디자인해 거울과 수납공간, 의자를 하나로 결합한 혁신적 여행용 트렁크.
말 리Malle Lit는 루이 비통의 역사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다. 1865년 루이 비통이 처음 디자인한 말 리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트렁크는 침대의 기능을 품고 있다. 알루미늄과 너도밤나무로 만든 내부 프레임은 견고한 구조를 이루고, 각도 조절이 가능한 헤드보드와 방수 매트리스는 실제 여행자를 위한 기능성을 더한다. 트렁크가 열리고 그 안에서 침대가 펼쳐지는 장면은 루이 비통이 말해온 여행의 예술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