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수식어로 자신을 드러내보다 담백한 실루엣과 좋은 소재로 삶의 든든한 바탕이 되어주는 것. 패션 브랜드 ‘낫띵리튼’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이름 그대로 ‘아무것도 쓰지 않은’ 백지상태의 옷이 입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태도를 만나 비로소 고유한 문장으로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 낫띵리튼의 이소율 이사는 그 단단한 철학을 옷에서 공간으로, 그리고 자신의 가장 사적 안식처인 한남동 집으로 기꺼이 확장했다.

낫띵리튼의 절제된 실루엣이 돋보이는 셔츠를 입은 이소율 이사. 미니멀하지만 섬세한 디테일이 그의 집이 지닌 차분한 무드와 맞닿아 있다.
오늘날 수많은 여성의 옷장을 채우고 있는 낫띵리튼은 확고한 이미지를 강제하지 않는다.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베이스’가 되는 옷. 이 브랜드가 탄생한 배경에는 현대 패션 시장에 대한 현실적 갈증이 있었다. “언니(이영주 대표)와 브랜드를 시작할 당시, 시장은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빠르게 소비되는 트렌드 중심의 옷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고가의 옷 사이에서, 질 좋은 소재와 핏을 갖춘 일상복을 원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읽은 거죠. 저희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퀄리티 좋은 옷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몸에 닿는 소재의 질감을 집요하게 연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비스코스가 함유된 실크 소재의 셔츠, 바이오 워싱을 거쳐 특유의 자연스러운 형태감을 끌어내는 코튼 재킷 등은 낫띵리튼이 말하는 ‘기본’이 얼마나 섬세한 과정으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옷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입는 사람의 무드를 조용히 받쳐주는 옷. 낫띵리튼의 기본은 그렇게 일상 안에서 오래 힘을 얻는다.

일반 소파용 원단 대신 커튼 원단을 활용해 제작한 소파. 테이블 또한 공간의 크기와 분위기에 맞춰 만든 덕분에 다이닝룸 전체의 균형을 단정하게 잡아준다.
“기계로 매끈하게 찍어낸 것보다는 누군가의 손으로 다듬고 엮고 칠한 흔적이 묻어 있는 사물에 끌려요. 붓 터치나 재료의 결이 살아 있는 것이 주는 다정한 위로가 있거든요.”

이소율 이사가 직접 레노베이션한 집. 출장과 여행 중 호텔 미니바에서 느낀 즐거움을 떠올리며, 집 안에도 작은 위스키 바를 마련했다. 아기자기하게 정돈된 병과 잔, 오브제가 어우러져 머무는 재미를 더한다.

아르데코적 무드가 느껴지는 다이닝룸. 여러 겹의 색과 결이 포개진 듯한 질감이 좋아 집 안 곳곳에 공예 작품을 두었다. 박성욱 작가의 작업 역시 그가 아끼는 공예 오브제 중 하나다.
1930년대 아르데코와 장미셸 프랑크의 영감
이소율 이사는 낫띵리튼 쇼룸의 공간 기획도 진행했다. 한남동에 자리한 낫띵리튼 쇼룸이 수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로 꼽히는 것도 초기 기획부터 인테리어 시안,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그의 손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의 미학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30년대 프랑스 아르데코 시대를 풍미한 디자이너 장미셸 프랑크Jean-Michel Frank와 닿는다. “장미셸 프랑크의 스타일을 깊이 동경해요. 장식적 곡선이나 선은 최소화하면서 볼드하고 구조적인 형태를 띠죠.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심플함 속에서도 소재가 뿜어내는 압도적 고급스러움이 있어요. 게다가 동양적 요소가 오묘하게 섞여 지나치게 프랑스적이지도 않고요. 그 적절한 밸런스가 제가 공간을 대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홈 오피스로 사용하는 방은 한층 포근한 분위기다. 부드러운 소재와 차분한 톤의 가구가 어우러져 일과 휴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을 만든다.
브랜드의 쇼룸을 매만지며 쌓아온 이 미학적 기준은 그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집을 고치기로 결심했을 때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이소율 이사가 선택한 집은 한남동에 위치한 27평의 오래된 빌라다. 낫띵리튼 쇼룸과의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문을 나서면 공원과 남산 자락이 이어지는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반려견 ‘망구’와 함께 산책하기에도 완벽한 환경이었다. 방 세 개와 화장실 두 개, 그리고 양옆으로 길게 뻗은 베란다는 오래된 집 특유의 넉넉한 수납공간을 제공했다.
그는 인테리어 업체에 모든 것을 맡기는 대신 직접 현장 소장을 자처했다. “제 집이니까 실패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잖아요. 마음껏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오래된 빌라가 지닌 구조와 시간의 흔적은 최대한 남기되, 쇼룸을 구상하며 모아둔 유럽 빈티지 하우스의 레퍼런스를 하나씩 덧입혔죠.” 그렇게 이 집은 새것처럼 고친 집이 아니라, 오래된 감각 위에 낫띵리튼의 무드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공간이 되었다.

안방 화장실 역시 부티크 호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장 과감한 실험은 창이다. 한국 주거 공간의 샤시는 대개 푸른빛을 띠는데, 그는 그 색이 실내의 자연광을 방해한다고 느꼈다. 유럽 출장지나 일본, 미국의 집에서 보았던 투명한 창처럼, 실내에 푸른 필터가 끼지 않은 빛을 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유리에 들어가는 컬러를 최대한 빼고, 단열을 돕는 내부 가스도 덜어냈다. 대신 부족할 수 있는 단열 성능을 보완하기 위해 기본보다 훨씬 촘촘하게 단열 공사를 진행했다. 작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원하는 감각을 구현하되, 실제 생활의 조건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선택이었다. “춥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막상 겨울을 지내보니 생각보다 너무 따뜻해서 제 실험이 성공했구나 싶었죠.”

현관 옆 화장실은 손님을 맞는 작은 파우더룸처럼 꾸몄다. 은은한 조명과 클래식한 세면대가 집의 따뜻한 첫인상을 만든다.
바닥재를 고를 때도 고민은 깊었다. 누수 흔적 때문에 기존 소폭 마루를 철거해야 했지만, 붉은 기가 은은하게 감도는 짙은 브라운 컬러의 마루를 새롭게 깔았다. 너무 모던하고 반듯한 현대식 바닥보다는 나뭇결 고동빛이 주는 빈티지한 온기가 자신을 더 편안하게 만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거실 한편의 위스키장에는 이소율 이사의 오랜 로망이 담겨 있다. 해외 출장 중 호텔 방에 마련된 미니바를 보며 혼자 사는 집이 생기면 홈바를 두고 싶었다고. 하루를 마친 뒤 조명을 밝히고 위스키를 고르는 일은 이 집에서 가장 익숙한 저녁 일과다.
시간의 결을 품은 사물과 가구
집 안을 채운 가구는 이소율 이사 안목의 결정체다. 거실의 중심을 잡고 있는 묵직한 소파는 앞서 말한 장미셸 프랑크의 스타일을 오마주해 그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원하는 디자인을 찾기도 어려웠고, 해외에서 직구하자니 부피 때문에 배송비가 상상을 초월하더라고요. 결국 직접 만들기로 했죠. 레퍼런스를 뒤지고, 거실 바닥에 테이프를 붙여가며 완벽한 비율을 계산했어요. 재미있는 건 소파를 덮은 원단이에요. 소파 전용 원단 대신 조직감이 돋보이는 리넨 느낌의 커튼 원단을 사용해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원하는 빈티지한 질감을 얻어냈죠.” 거실 공간의 큼지막한 테이블 역시 직접 제작했다. 오랜 세월을 견딘 고목을 다듬어 만들었는데, 새 나무로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깊이감과 투박한 결이 집 전체의 톤 앤 매너를 묵직하게 잡아준다. 필요한 가구가 생기면 새 제품보다 빈티지부터 찾아본다는 그는 안방 침대 앞 캐비닛, 협탁 등을 국내 빈티지 숍과 해외 직구를 통해 정성스럽게 모았다.

샤를로트 페리앙의 빈티지 의자. 오래된 물건만이 지닌 흔적이 공간에 밀도를 더한다.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새 제품보다 빈티지를 먼저 찾아본다는 이소율 이사. 시간의 결이 묻은 물건이 집 안에 자연스럽게 깊이를 만든다.
주방 곳곳에는 이소율 이사의 확고한 취향인 공예 작품이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한국의 채상장 바구니, 여러 번 덧칠해 시간의 겹을 쌓은 옻칠 오브제, 일본 출장길에서 사온 작은 수공예품, 그리고 특유의 거친 질감이 매력적인 박성욱 작가의 티포트까지.
“기계로 매끈하게 찍어낸 것보다는 누군가의 손으로 다듬고 엮고 칠한 흔적이 묻어 있는 사물에 끌려요. 붓 터치나 재료의 결이 살아 있는 것이 주는 다정한 위로가 있거든요.” 과장된 디자인 대신 원단의 질감과 착용감으로 승부하는 낫띵리튼의 옷이 그러하듯, 그의 공간을 채운 물건 역시 본질적 결을 간직하고 있다.
자신의 집을 직접 레노베이션하고 살아보는 매일의 경험은 그에게 심미성과 생활의 편리성이 어떻게 타협하고 공존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이 배움은 브랜드 낫띵리튼이 나아갈 다음 챕터의 든든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쇼룸은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지만, 집은 철저히 생활의 동선과 맞닿아 있잖아요. 이 두 가지를 조율해본 경험 덕분에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쇼룸에 오신 고객들이 공간을 떠나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낫띵리튼의 무드를 직접 경험하고 머물 수 있는 작은 스테이나 카페, 혹은 술 한잔 곁들일 수 있는 바bar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취향을 의심하지 않고, 무모할지언정 기꺼이 부딪쳐 자신만의 세계를 직조해낸 이소율 이사. 그의 한남동 빌라는 본질에 집중할 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밀도 있고 우아해질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낫띵리튼(nothing-written.com)은 이영주 대표와 이소율 이사가 전개하는 패션 브랜드. 절제된 실루엣과 섬세한 테일러링, 좋은 소재를 바탕으로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옷을 제안한다. 화려한 장식보다 입는 사람의 분위기와 태도가 드러나는 베이스에 집중하며, 담백한 형태와 차분한 색감, 고급스러운 질감 안에서 조용하지만 명확한 존재감을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