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장지수는 자신을 색다른 컬러와 텍스처의 변주 속에서 재미를 찾는 ‘실험적 테이스터’라고 표현한다. 집이자 작업실인 그의 공간은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패션이라는 퍼즐을 자유롭게 조합하고 만들어가는 작은 실험실 같은 곳이다.
업눈 스튜디오 장지수 디렉터 컬러와 텍스처로 쌓은 집

거실 겸 주방으로 사용하는 공간. 컬러풀한 오브제와 구조적 형태들 사이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얻는다. 벽에 걸린 니트 작품은 일기 속 문장을 풀어낸 ‘일기 시리즈’.
공간에 흐르는 패션 바이브
각자의 방식으로 K-패션을 이끌고, 또 그 흐름 속에서 주목받아온 한국의 신진 브랜드 디자이너들. 그들에게 집은 취향이 머무는 장소이자, 브랜드의 철학과 태도를 탐구하는 가장 내밀한 작업실이다. 옷이 아닌 공간을 통해 바라본 디자이너와 브랜드 세계.

거실 겸 주방으로 사용하는 공간. 컬러풀한 오브제와 구조적 형태들 사이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얻는다. 벽에 걸린 니트 작품은 일기 속 문장을 풀어낸 ‘일기 시리즈’.
니트 기반의 텍스타일 스튜디오 ‘업눈 스튜디오’를 이끄는 장지수 디렉터. 그는 절제된 디자인 속 미묘한 질감 차이, 서로 충돌할 것 같은 요소가 만들어내는 의외의 조화, 예상치 못한 컬러 조합 등 양극의 감각이 공존하는 순간을 주목한다. 다양한 색감이 공존하고 투박한 질감과 오랫동안 사용한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그의 집은 패션을 대하는 태도가 그대로 이어지는 공간이다.

생명을 돌보고 교감하는 시간에서 감정적 안정감을 얻는다는 장지수 디렉터의 집 곳곳에는 식물이 놓여 있다. 반려묘 모네의 모습을 니트로 표현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감정을 형태로 만드는 일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리고 만드는 행위는 장지수 디렉터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형태를 만들고 질감을 표현하는 과정은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방식이 됐고, 패션에 이끌린 것 역시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자아가 형성되면서 스스로를 정의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패션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같아요. 컬러와 텍스처가 사람의 몸 위에 덧입혀지며 그 사람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대변하는 과정이 좋았죠.”
디자인을 할 때는 조금은 낯설고 불편할 수 있는 조합 속에서도 예술적 합의점을 찾아내는 과정이 가장 즐겁다. 그의 작업에는 낯선 소재의 조합이나 과감한 컬러링, 비정형적 실루엣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특히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니트웨어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에는 지속 가능한 패션 작업에 몰두했다. 입을 수 있는 종이 소재를 레이저 커팅해 반복되는 패턴과 강렬한 컬러 그물처럼 얽힌 형태로 풀어낸 작업은 강렬한 비주얼로 주목받았고, 이후 레이디 가가 화보의 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생명을 돌보고 교감하는 시간에서 감정적 안정감을 얻는다는 장지수 디렉터의 집 곳곳에는 식물이 놓여 있다. 반려묘 모네의 모습을 니트로 표현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현실적으로 패션과 친환경,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 사이에는 좁히기 힘든 간극이 있다고 느꼈어요. 여전히 패션을 사랑하기 때문에 제가 패션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기 위해 계속 연구 중이에요.” 현재 운영 중인 업눈 스튜디오 역시 제품 디자인과 공간 연출, 전시까지 옷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한 ‘니트 연구소’처럼 꾸려가고 있다.
장지수 디렉터에게 디자인은 제2의 언어와도 같다. 표현하고 싶은 감정과 자아,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을 때 그는 디자인이라는 언어를 선택한다. 그런 그의 영감의 시작점은 바로 일기장. “밖에서 얻는 화려한 이미지보다 제 감정이나 어떤 순간을 지나친 뒤 다시 들여다봤을 때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아요. 작업을 시작하기 전 항상 일기장을 먼저 펼쳐보고, 최근에 겪은 고민이나 찰나의 감정을 시각적 언어로 형상화하는 과정을 거치죠. 이런 감정은 어떻게 풀어야 전달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요.” 그렇게 그의 내밀한 이야기는 컬러와 텍스처를 입고 캔버스 위 이미지가 되거나, 공간의 오브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몸 위에 입는 작품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 집은 제가 마음 편하게 새로운 걸 계속 시도해볼 수 있는 즐거운 실험실이에요.”

침실은 눈이 편안한 옅은 하늘색을 중심으로 톤을 맞추고, 곳곳에 컬러와 오브제로 포인트를 더해 리듬감을 살렸다.
비우고 또 채우는 집
구옥을 직접 레노베이션한 지금의 집은 그녀의 작업물 중 하나와도 같다. 철거부터 페인팅, 가구 리폼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직접 손으로 완성한 만큼 이곳에는 그녀의 패션 세계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작업과 생활이 유연하게 이어지는 공간을 갖고 싶어 두 집 사이 벽을 터 한쪽은 생활공간으로, 다른 한쪽은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거칠게 트여 있는 벽면을 중심으로 두 공간의 분위기 역시 완전히 다르다. 거실과 주방은 음악을 듣거나 뜨개질을 하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인 만큼 과감한 컬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제가 색깔을 워낙 좋아해서 이런 컬러에 둘러싸여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사를 오며 타공 판에 실을 걸어 정리해두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색의 배열이 한눈에 들어와 작업 아이디어를 떠올리기에도 좋아 만족하고 있다.
반대로 작업 공간은 작업물 자체에 색이 많다 보니 전체적으로 채도를 덜어냈다. 곳곳에 놓인 초록빛 식물과 창밖으로 보이는 자연 풍경 덕분에 같은 집 안에서도 전혀 다른 무드가 공존한다. 대신 작업실 한쪽 벽면에는 마치 거대한 컬러칩처럼 실뭉치를 걸어두었는데, 그가 얼마나 색깔을 사랑하는지 드러나는 장면이다. 집 안의 가구 대부분은 짧게는 6년, 길게는 10년 이상 함께해온 물건이다. 조금 투박하고 비뚤어져 있더라도 그 안에 남은 살아 있는 질감과 시간의 흔적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오래된 걸 계속 쓰면서 그 물건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이나 쓸모를 계속 발견하려고 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디자이너로서 중요한 자세이기도 하고요. 함께 나이 들어가며 익어가는 물건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 그것도 결국 제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이 아닐까 싶어요. 단순하게 오래 쓰는 게 아니라 사물의 쓰임과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다시 발견하는 태도 같은 거죠.”

집에서의 하루 역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표현하는 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쉬는 시간엔 뜨개를 하고, 문득 떠오른 영감을 즉흥적으로 작업으로 옮기며 일과와 취미의 경계 없이 시간을 보낸다.
음악을 들으며 뜨개질을 하고,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을 다시 손으로 만들어보는 시간. 자신만의 성전 같은 이 집에서 그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생각을 비워내고, 다시 새로운 감각과 영감을 채워 넣으며 또 다른 작업으로 나아간다. “작업실 한편에는 ‘꺼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이 적힌 니트 포스터가 있어요. 생각만 하고 꺼내놓지 않은 감정이 정말 많거든요. 그래서 뭐라도 만들어보고 표현해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걸어둔, 일종의 좌우명이에요.”

두 개의 집을 터 생활공간과 작업실로 나눠 사용하고 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장지수 디렉터만의 생활 방식을 완성한다.

작업물 자체에 색이 많기 때문에 작업 공간은 오히려 채도를 덜어 차분하게 꾸몄다. 직접 만든 레이스 커튼에는 원주율을 새겨 넣었는데, 인간의 유한한 언어로 우주의 무한한 질서를 설명하려는 개념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장지수라는 무한한 세계
최근 집을 직접 고치며 공간을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된 뒤부터 목공에도 관심이 생겼다. 텍스타일과 목재를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가구나 오브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앞으로 어떤 형태의 작업을 하게 될지 스스로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디자인하는 일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자, 지금의 장지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저에게 집은 쉬는 곳이기도 하지만, 제 안의 불안을 제로로 만드는 공간이에요. 그 평안 속에서 떠오르는 영감이 제 삶의 원동력이 되죠.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그 영감에 숨을 불어넣고 현실화하는 과정, 그래서 이 집은 제가 마음 편하게 새로운 걸 계속 시도해볼 수 있는 즐거운 실험실이에요.”

공간 곳곳에 업눈 스튜디오의 작업이 자연스레 스며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는 “라일리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결정할 수 없어”라는 대사가 나온다. 감정이 곧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하느냐가 결국 나를 만든다는 것. 디자이너 장지수의 패션 역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손끝으로 꺼내 또 다른 형태로 만들어내는 일. 그렇게 그의 패션 세계는 자신의 내면을 동력 삼아 끝없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업눈 스튜디오(@jis00jang)는 디자이너 장지수가 이끄는 니트 베이스의 텍스타일 스튜디오. 아트와 패션의 경계에서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텍스타일을 활용해 감각적인 재미를 전달한다. 패션, 라이프스타일, 공간 예술 등 다양한 영역과의 협업과 확장을 통해 자신만의 실험적인 감각을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