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9회를 맞은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공예가 더 이상 과거의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올해는 133개 국가 및 지역에서 모인 5천1백여 점의 작품 가운데 최종 후보 30점이 선정됐고, 한국 작가 박종진이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싱가포르에서 함께 열린 전시 〈LOEWE FOUNDATION Craft Prize 2026〉은 재료와 손, 전통과 실험이 만나는 오늘의 공예를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아델린 코의 ‘Endless’는 책의 숨겨진 구조인 엔드밴드를 조각적 형태로 다시 해석한 작품이다.

노르웨이 현대 공예가 예르트루드 할스의 ‘Scala’. 손으로 뜨고 염색한 섬유 베슬 연작이다. 짐바브웨 출신 현대미술가 잰시 서머스의 대형 세라믹 베슬 조각 ‘The Caretaker’s Clotheshorse’.
1846년 가죽 공방에서 출발해 올해로 1백 80주년을 맞는 로에베에 공예는 브랜드의 시작이자 지금까지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다. 로에베 재단이 2016년 제정한 로에베 재단 공예상 역시 이 뿌리에서 출발했다. 단순히 뛰어난 손기술을 가리는 상이라기보다 재료를 바라보는 태도와 만드는 방식,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바꾸는 힘을 함께 살피는 자리다.
올해로 9회를 맞은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는 1백33개 국가 및 지역에서 5천1백여 점의 작품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전문가 패널의 심사를 거쳐 19개 국가 및 지역을 대표하는 30명의 작가가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 도자, 목공, 섬유, 가구, 제본, 유리, 금속, 주얼리, 옻칠까지 매체도 다양하다. 하나의 장르로 묶이기보다 공예라는 이름 아래 손과 재료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풍경에 가깝다.

독일 아트 주얼리의 전설적 작가 도로테아 프륄의 조각 목걸이 ‘Migratory Birds(Zugvögel)’.

덴마크에서 활동하는 마리아 코셴코바의 유리 조각 ‘Faun’s Flesh (Arena Rosada)’.
올해 후보작에서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은 균형과 불안정, 긴장감을 섬세하게 조율하며 ‘만들기’에 접근하는 태도다. 스웨덴 작가 오스카르 구스타프손Oskar Gustafsson의 작업은 물푸레나무 판을 증기로 휘어 구리 선으로 고정한 목조 기둥으로, 단단한 구조 안에 재료가 휘어지는 힘과 긴장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대만 작가 셰자첸Chia-Chen Hsieh의 ‘Rhythm in Grid’는 얇은 대나무 조각 수천 개를 큐브 형태의 틀 안에 겹겹이 배치해 정적인 구조 속에 물결처럼 흔들리는 리듬을 만든다. 노르웨이 작가 예르트루드 할스Gjertrud Hals의 대형 직물 오브제는 면과 리넨 실을 손뜨개로 엮은 뒤 염색해 완성한 작업으로, 부드러운 섬유가 건축적 규모를 얻는 순간을 보여준다.
전통을 다루는 방식도 흥미롭다. 올해 후보작들은 오래된 기술을 되살리거나 장식처럼 덧붙이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북 아티스트 아델린 코Adelene Koh의 ‘Endless’는 18~19세기 영국식 엔드밴드endband 바느질 기법을 바탕으로, 책등의 숨은 구조를 원형 조각처럼 확장한다. 짐바브웨 출신 작가 잰시 서머스Xanthe Somers의 ‘The Caretaker’s Clotheshorse’는 전통 바구니에서 출발한 형태를 흙으로 엮듯 빚어, 바구니 세공과 도자 사이를 오간다.

한국 작가 성코코의 'Shadow Kkokdu'와 중국 작가 난웨이의 ‘Knot-Loving’.

제인 양-데엔의 달항아리 형식을 회화적 표면과 결합한 세라믹 작품 ‘Untitled’. 덴마크 도예가 모르텐 뢰브네르 에스페르센의 ‘#2572’. 유약을 입힌 원통형 스톤웨어 베슬이다.

일본 작가 다나카 노부유키의 ‘Inner side – Outer Side 2021 N’. 가나의 바바 트리 마스터 위버즈와 스페인 디자이너 알바로 카탈란 데 오콘이 협업한 ‘Fra Fra Tapestry #2’.

박지은 작가의 'Seed of Circulation'과 스웨덴 오스카르 구스타프손 작가의 ‘Hierarchies of Existence’.
2026년 수상자는 한국 작가 박종진. 5월 12일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발표를 통해 ‘Strata of Illusion’이 올해의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 작품은 종이 수천 장에 색을 입힌 자기 슬립을 바르고, 이를 가마에 넣어 완성한 작업이다. 소성 과정에서 종이는 타서 사라지고, 남은 도자 구조는 열과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주저앉는다.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을 두고 “도자가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를 뒤흔드는 작업”이라고 평했다. 종이가 사라지는 순간, 형태가 무너지는 과정, 그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는 태도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재료를 완전히 통제하기보다 열과 중력, 우연의 개입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공예가 결과물만이 아니라 과정의 예술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2026 공식 행사에 참석한 최종 후보 작가와 심사위원, 주최 측 관계자들. 사진 속 건물은 과거 싱가포르 대법원으로 쓰인 역사적 건축물로, 현재는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의 일부로 운영되고 있다.
심사에는 프리다 에스코베도,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에이브러햄 토머스, 조민석 건축가, 올리비에 가베를 비롯해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잭 매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가 참여했다. 이들은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재료를 다루는 태도, 과정에 대한 이해, 예술적 비전을 함께 살폈다. 로에베 재단 회장 세일라 로에베Sheila Loewe는 올해 최종 후보작에 대해 “공예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고,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게 했다”고 말했다. 특별 언급에는 바바 트리 마스터 위버즈×알바로 카탈란 데 오콘Baba Tree Master Weavers×Álvaro Catalán de Ocón의 ‘Frafra Tapestry’와 그라치아노 비신틴Graziano Visintin의 ‘Collier’가 선정됐다. ‘Frafra Tapestry’는 현대 기술과 오랜 직조 지식이 만난 작업으로, 위협받는 건축 전통과 삶의 방식을 공동의 기억으로 남기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Collier’는 고대 금속공예 기법인 니엘로를 동시대 주얼리로 옮긴 작품. 금 위에 작은 회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섬세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한편 최종 후보작 30점은 5월 13일부터 6월 14일까지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에서 전시된다. 19세기부터 현재까지 8천 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한 이 미술관은 동남아시아 근현대 미술 분야에서 중요한 컬렉션을 보유한 기관이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그동안 런던 디자인 뮤지엄, 도쿄 소게쓰 회관의 노구치 이사무 실내 석조 정원 ‘헤븐’, 서울공예박물관, 뉴욕 노구치 미술관, 파리 팔레 드 도쿄,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이어왔다. 올해 싱가포르 전시는 공예상을 둘러싼 대화가 유럽과 미국, 동아시아를 지나 동남아시아의 미술 현장으로 넓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LOEWE FOUNDATION Craft Prize 2026〉
기간 5월 13일 ~ 6월 14일
장소 싱가포르 국립미술관(1 St Andrew’s Road, Singapore 178957, National Gallery Singapore, Imagination Gallery)
문의 craftprize.loewe.com/en/craftprize2026
로에베 재단 1846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가죽 공예 워크숍에서 출발한 패션 하우스 로에베의 공예적 유산을 예술과 문화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해 설립한 사립 문화 재단이다. 로에베 창립 가문의 4대손 엔리케 로에베가 1988년 설립했으며, 현재는 그의 딸 세일라 로에베가 이끌고 있다. 재단은 예술·공예·디자인·사진 등 분야에서 창의성을 장려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문화유산 보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2년에는 스페인 정부로부터 미술 공로 금메달을 수상했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현대 공예의 새로움과 탁월성,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2016년 제정한 국제 연례상이다. 당시 로에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던 조너던 앤더슨이 로에베의 공예적 뿌리를 동시대 문화의 언어로 확장하고자 시작했으며, 1846년 공동 공예 워크숍으로 출발한 로에베의 역사에서 영감을 받았다. 올해로 9회를 맞은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잭 매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 체제에서 열린 첫 에디션이기도 하다. 만 18세 이상의 전문 공예 작가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출품작은 혁신적 공예 기술과 독창적 예술 개념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 수상자 박종진 작가
종이로 확장한 도자의 가능성

박종진 작가는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카디프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서 도자전공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아트앤디자인스쿨 공예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자 슬립을 종이에 입히고 접고 쌓은 뒤 소성하는 방식으로, 종이는 사라지고 흙의 층과 주름만 남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과 해외에서 전시를 이어왔다.
단단한 도자 안에 종이의 결, 접힘, 소멸의 흔적 등을 남기는 방식으로 익숙한 재료를 낯설게 전환해온 박종진 작가를 수상 직후 만났다. 손끝에서 시작된 실험이 어떤 시간과 고민을 거쳐 동시대 공예의 언어가 되는지 그에게 물었다.
이번 출품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붙든 실험은 무엇이었나요?
제 작업은 도자라는 매체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보는 이가 재료의 실체를 한 번에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수수께끼 같은 지점을 탐구합니다. 키친타월에 흙물을 한 겹씩 쌓아 올린 뒤 고온으로 소성하면 종이는 타서 사라지지만, 그 층위와 주름은 고스란히 남습니다. 이 과정에서 흙이 지닌 유연함과 소성 이후의 견고함을 동시에 활용하며, 기존 도자기의 제작 공정을 전복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소성 후 전동 공구를 사용해 형태를 다듬는 방식이 중요한데, 종이가 타고 남은 미세한 틈 덕분에 돌처럼 깎고 가공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제작자로서 점토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업이었습니다.
‘Artistic Stratum’ 시리즈를 오래 이어왔습니다.
이 시리즈를 영국 카디프 메트로폴리탄 대학교 석사과정 중에 시작한 지 벌써 13년이 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자연의 지층, 붓질이 남긴 갈필 패턴, 조각보처럼 이어 붙인 패치의 조합 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색채의 경우 트렌디한 색 배열이나 스포츠 유니폼의 색 조합에서 힌트를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제 방식으로 변주하는 데 집중합니다. 요즘은 무엇을 닮으려 애쓰기보다 자연의 섭리처럼 작업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손끝의 감각에 의지해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치고, 다시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제게 영감이란 외부의 특별한 대상이라기보다 바로 그 치열하고도 유연한 반복의 시간 속에 존재합니다.
관람객이 작가님의 작품을 마주할 때 무엇을 느끼길 바라나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지?’ 하는 호기심을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그 단계야말로 공예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
최근 재료를 다루며 새롭게 떠오른 고민이나 화두가 있다면요?
제 작업은 종이의 소멸을 전제로 합니다. 종이처럼 보이는 도자를 만들기 위해 역설적으로 종이를 소비해야 하는 구조인 셈입니다. 현재는 우유갑을 재활용한 키친타월을 사용하며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려 노력하지만, 유한한 자원이라는 점에 대한 고민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종이가 아닌 다른 물질을 매개로 삼아 제 작업 방식의 외연을 넓혀보는 시도도 해보고자 합니다.
앞으로 작업은 어떤 방향과 스케일로 확장될 예정인가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사디야트 지역에 준공 예정인 레지던스 단지에서 도자 벽화와 가구 등의 커미션을 받아 곧 작업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며 시도해온 데스크와 도자 가구를 실제 건축 스케일로 구현해보는 중요한 기점이 될 것 같습니다. 로에베 재단과의 인연을 통해 앞으로 더 많은 글로벌 전시 무대와 레지던시에서 관람객들과 만날 듯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운 좋게 경험한 좋은 무대에서 저의 학생들도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교육하는 일이 저의 주된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만든다는 감각은 여전히 어떤 힘을 지닌다고 보나요?
공예가는 손으로 생각하고 느낍니다. 이는 단순히 물질과 접촉하는 행위를 넘어 몸의 감각으로 재료를 인지하고 깊이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미리 입력된 명령을 수행하는 디지털 기술이 구현하기 어려운 ‘즉흥성’과 ‘순발력’은 제가 생각하는 작품의 핵심 요소입니다. 물질의 상태에 오감으로 반응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인간의 능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작업 과정에서 내가 어디로 향할지,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고 변화할지 스스로 기대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손으로 만든다는 행위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바라보는 한국 공예의 동시대성은 무엇인가요?
‘한국적이다’라는 정의는 늘 어렵게 느껴집니다. 저의 초기 작업은 조선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아, 물레 성형 기법으로 제작한 기물을 통해 과거를 재해석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현재 제 작업에서 조각보나 한지의 정서를 읽어내는 분들도 있지만, 정작 저는 물질을 다루는 즉흥적 감각과 대중의 시선에 더 집중합니다. ‘한국적인 코드’를 의식하기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 작가로서 유연하고 빠르게 세계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이번 수상이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싶은 마음이 가장 솔직한 심정입니다.(웃음)
이 영광을 파이널리스트 29명 모두와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보여준 공예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이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위상을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믿습니다. 헌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로에베 재단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재단의 활동에도 충실히 임하겠습니다.
K-공예는 어디까지 왔나
올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 명단에서 유독 눈에 띈 것은 한국 작가들의 존재감이었다. 박종진을 비롯해 조수현, 이종인, 이소명, 박지은, 성코코까지 한국 작가 여섯 명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재료를 다루는 방식도, 전통을 해석하는 태도도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작업 안에는 지금 K-공예가 어디까지 확장되고 있는지가 선명하게 담겨 있다.
둥지처럼 엮은 목조형
이소명 ‘Chronicle of Matter’

가늘고 긴 나뭇조각을 구부리고 엮고 묶어 완성한 네 다리 형상의 연작으로, 새가 나뭇가지를 모아 둥지를 짓는 방식처럼 재료가 서로 기대고 결속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무를 엮는 기술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휜 목재들이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구조로 결속되는 방식이었다. 유연한 와이어로 바늘을 만들고, 실로 나무 사이를 엮은 뒤 그 위에 황토 반죽을 덧입혀 연결부를 고정했다. 단단한 구조와 유기적 형태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이었다.
손끝에서 찾은 곡선 디지털 기술은 형태를 설계하는 데 유용하지만, 나무는 같은 조건에서도 결의 방향과 수분 및 두께에 따라 전혀 다른 곡선을 만든다. 내게 손으로 만든다는 것은 재료를 완전히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나무의 성질에 몸이 계속 반응하는 일이다. 손끝에 전해지는 긴장감과 휘어지는 움직임을 따라가며, 처음에는 계획하지 않은 형태를 발견한다. 연결이라는 화두 오래된 토기와 암각화 및 동굴벽화처럼 시대와 지역을 넘어 반복되는 흔적에서 출발해, 서로 기대고 지탱하는 구조를 작업으로 옮긴다. 불완전하고 연약한 재료들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안정감은 인간이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앞으로도 연대와 긴장, 불안정함이 공존하는 연결의 구조를 이어갈 계획이다.
점토로 빚은 꼭두
성코코 ‘Shadow Kkokdu’

점토, 래커, 컬러 철사, 비즈, 스와로브스키 스톤 등을 사용해 만든 작은 인물 형상들로 상실과 애도의 감정을 돌봄과 유머 및 장식적 감각으로 바꾸어낸다.
작품의 스케일 이번 작업에서는 작품의 실제 무게를 줄이는 데 가장 집중했다. 가벼워 보이지 않으면서도 구조적으로 무게를 덜어내는 방법을 고민했고, 작은 개체 안에서도 움직임과 감정의 흐름, 서사가 하나의 장면처럼 이어지기를 바랐다. 재료 역시 기능만이 아니라, 작품의 감정과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선택했다. 꼭두의 의미 꼭두는 삶과 죽음 사이를 이어주는 상징처럼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가족과의 이별을 경험한 뒤, 죽음을 무겁고 두려운 감정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꼭두를 누군가를 배웅하고 위로하는 존재로 표현하고자 했고, 작업하는 동안에도 그림자와 움직임 및 조용한 위로 같은 감각이 오래 남았다. 다음의 실험 현재는 유리를 이용한 색그림자 꼭두 버전을 새롭게 준비 중이다. 기존 꼭두 작업이 그림자의 실루엣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유리를 통과하며 생기는 빛과 색의 변화까지 함께 보여주려 한다. 앞으로도 삶과 죽음, 기억과 위로, 이별과 유머처럼 서로 다른 감정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장면을 꼭두 시리즈로 이어가고자 한다.
배흘림을 품은 목가구
이종인 ‘Baeheullim’

호두나무 덩어리 두 개를 결합해 만든 벤치로, 한국 전통 건축의 배흘림기둥에서 영감을 받은 부드러운 실루엣이 특징이다. 거칠게 깎고 정교하게 다듬은 나무는 불안정해 보이는 형태 안에서도 신체와 공간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기능과 형태 사이 이번 출품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균형이었다. 사용성과 조형성, 앉는 사람과 바라보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함께 고려했다. 구조적으로는 다소 불안정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사용하거나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형태를 다듬었다.
깎으며 발견한 형태 손으로 만드는 행위의 의미를 거창하게 정의하기보다 직접 재료와 접촉하는 과정 자체를 좋아한다. 나무를 깎고 다듬다 보면 무게와 결 그리고 미세한 변화가 손에 전해지고, 그 감각이 형태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나에게 손작업은 어떤 가치를 주장하는 일이기보다 형태를 가장 직접적으로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벤치에서 테이블로 처음에는 이번 출품작의 벤치 버전을 먼저 구상했지만, 스케일 문제로 제작 순서가 바뀌었다. 지금은 그 벤치 버전과 함께 새로운 테이블 작업을 준비 중이다. 조형의 네거티브 공간을 가구화하는 과정에서 출발한 테이블로, 형태와 색채 대비가 인상적인 작업이 될 예정이다. 앞으로는 다른 물성은 물론 공공 건축이나 조경처럼 더 넓은 영역과 연결되는 가능성도 탐구하고자 한다.
파티나를 입힌 금속기물
조수현 ‘Reconstructed Perspective Vessel 3C1L’

서로 다른 몰드의 요소를 조합해 만든 세 점의 연작으로, 내부에 구리 레이어를 더하고 산화 처리한 표면을 통해 빛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깊이를 보여준다.
몰드의 변주 하나의 완결된 형태를 만드는 것보다 형태가 분할되고 다시 조합되며 변화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이를 위해 몰드를 변형·조합하는 주조modulated mold casting 기법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두 개의 원형 몰드를 결합했다. 단순한 형태 변형이 아니라, 하나의 인식이 외부 조건과 시간의 개입 속에서 계속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되는 상태를 시각화하고자 했다. 디지털과 손작업 작업 과정에서는 3D 모델링과 출력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형태의 미세한 균형, 재료의 밀도, 표면의 질감은 결국 손으로 만지고 다루는 과정에서 판단한다. 머릿속의 생각이 손을 거쳐 재료와 만나고, 실제 무게와 질감을 지닌 존재로 바뀌는 순간이 작업의 본질적 경험이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포용하고 조율하는 과정 역시 직접 제작이 가진 중요한 매력이다. 재료의 확장 기존에는 브론즈나 동 같은 금속 재료를 중심으로 주조 작업을 이어왔다. 앞으로는 비금속 재료를 활용한 주조 방식까지 실험하며, 더 다양한 감각과 표현 가능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현대 장신구 작업에서는 레진 기반의 복합 재료도 사용하고 있는데, 금속보다 가볍고 색상과 질감 표현이 자유롭다는 점이 흥미롭다. 서로 다른 재료의 물성과 감각을 조형 언어 안에서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더 깊이 탐구하고자 한다.
실로 꿴 금속공예
박지은 ‘Seed of Circulation’

수천 개의 산화 스털링 실버 조각을 리넨 실로 하나하나 엮어 완성한 작품으로, 씨앗처럼 응축된 형태 안에 팽창과 수축, 회복과 순환의 리듬을 담았다.
금속을 엮는 방식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단단함과 유연함이 공존하는 순간이다. 금속 소재가 지닌 견고함이 실의 반복적 연결을 통해 유연하고 비정형적인 형태로 바뀌고, 금속 유닛의 강한 첫인상이 부드럽고 유기적인 감각으로 반전된다. 최근에는 철과 은을 넘어 사탕통, 과자통, 커피통 같은 금속 틴케이스를 재활용해 작은 유닛으로 만든다. 바느질의 리듬 손으로 만드는 행위는 내게 제작 방식이자 수행, 명상에 가깝다. 몇 시간씩 같은 자리에 앉아 작은 조각을 잇고 실을 묶다 보면 손의 리듬과 호흡이 맞물리고, 일상의 상념은 서서히 사라진다. 긴장하던 날의 빡빡한 매듭, 평온하던 오후의 느슨한 바느질처럼, 실과 매듭에는 그날의 감정과 호흡이 켜켜이 남는다. 다음 작업 최근 깊이 붙잡고 있는 화두는 순환이다. 사계절의 변화나 조수 간만의 차처럼 자연이 반복을 통해 생명의 연속성을 증명하는 방식에 관심을 둔다. 작은 조각을 집어 올리고 엮는 단순한 행위가 쌓이면서 손바닥의 물리적 경계를 벗어나 확장될 때 하나의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 안에 머문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