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힙스터 Z 세대는 모두 답십리에 모인다는군요. ‘전설의 아트 딜러’로 불리는 두손갤러리 김양수 대표가 새로운 갤러리 터로 잡은 곳도 고미술의 메카 답십리입니다. ‘케데헌의 고향- 답십리 엔틱 야시장’이라는 프로젝트로 전입 신고식을 치른 그는 이곳에서 고향을 보았다고 합니다.

페르난도 움베르토 캄파나 형제가 디자인한 나티보 캄파나Nativo Campana의 수지 화분 옆에 백남준의 작품이 놓인 것처럼 두손갤러리는 고미술과 현대미술, 디자인을 잇는 통시적 미감으로 가득하다. 그 배경은 ‘답십리 고미술 상가스러운’ 철제 셔터다.
<그리스 로마 신화> 1장에는 영웅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아손은 가죽신 한 짝을 강물에 떠내려 보내는 바람에 내내 외짝 신을 신고 다닙니다. 신화학자 故 이윤기 선생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이런 걸작 주석을 달았습니다. “우리는 혹시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닌가.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잃어버렸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사람은 신발 한 짝 이상의 어떤 것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 지켜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모든 인간의 생은 그 잃어버린 것을 찾는 과정 자체가 아닐까,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시작 아닐까, 나는 가끔 생각합니다.
‘1세대 대표 화랑’ ‘한국 미술 시장의 개척자’ 같은 면류관을 두른 김양수 대표. 그래서 최근에 들려온 두손갤러리의 답십리 고미술 상가 이전 소식은 적이 놀랍습니다. 30년 만에 ‘두손갤러리’ 이름으로 재개관한 것이 불과 3년 반 전, 바로 2022년이니까요. ‘전설적 아트 딜러의 귀환’ 장소로서 정동의 옛 구세군회관은 손색없어 보였죠. 그런데 다시 답십리 고미술 상가로 이전하는 것입니다. 그 두 손(兩手)에 또 어떤 이야기를 움켜쥔 걸까요? 그는 “잃어버린 것”이라는 힌트만 넌지시 건넵니다.
“SF 영화를 보면 아무리 먼 미래여도 등장인물은 대부분 원초적 옷차림이에요. 왜 그럴까요?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에겐 오히려 본래의 모습, 자연적 상태를 다시 찾으려는 무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AI를 넘어 ASI를 말하는 시대지만, 저는 테크놀로지가 전혀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이 잃어버린 것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드러내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어요. 지금 ‘초능력’ ‘신기’라 부르는 것도 옛사람들이 생래적으로 지닌 감각이나 능력일 텐데 퇴화되어 우리가 그동안 모르고 산 거죠. 그걸 지금 기계가 대신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 ‘잃어버린 것’과 ‘답십리’는 어떤 그물코로 엮인단 말입니까.

답십리 고미술 상가의 역사성과 장소성에서 새로운 확장성을 찾아낸 김양수 대표. “여기서 가장 경계하는 건 누가 자본을 갖고 들어와서 싼 거를 모두 사 다시 비싸게 파는 식으로 판을 장악하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 스타벅스처럼 되어버리죠. 그런 방식은 답십리와 맞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답십리에서 하고 싶은 것도 ‘답십리다운 시스템’을 만드는 겁니다. 도심형 박물관으로서 답십리를 하나의 브랜드로 키우고 싶어요.”
케데헌의 고향, 답십리
여기서 잠시, 생소한 분도 있을 테니 엽서 한 장만큼 그의 내력을 먼저 더투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미술반 선배들을 따라 백자의 대가 지순택 선생 가마에서 본 도자기가 그 시작이랍니다. <뿌리 깊은 나무> 발행인 한창기, 서양화가 권옥연, 자수박물관장 허동화 사이에서 막내 노릇을 하며 골동 상가의 ‘보물찾기’를 하다가 1969년에는 아예 청계천8가에 골동품 가게를 차립니다. 서울대 서양화과 재학 시절이죠. 이렇게 고미술과 근대미술을 경유한 학창 시절, 나라 밖 유람을 숱하게 더한 청년기는 그에게 “지금 한국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 답은 ‘정체성’이었고요. 그는 우리 미술가들의 ‘페이스메이커’가 되리라는 포부를 품습니다. 1984년, 자신의 이름 뜻에서 따온 갤러리 ‘두손’을 건축가 김석철이 설계한 동숭동 건물에서 엽니다. 두손은 고미술 컬렉션뿐 아니라 백남준·김환기·박수근·이중섭·박서보 등 우리 근현대 대표 작가의 전시를 열고 조력자 역할을 자처합니다. 앤디 워홀·로이 릭턴스타인 등 서구의 스타 작가를 국내에 가장 먼저 소개합니다. ‘전설의 아트 딜러’라는 수식은 허명이 아니죠.

정우원 작가의 ‘빛의 서낭당’. 마을 입구에서 공동체의 안녕을 빌던 서낭당과 오색 천을 재해석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천 대신 LED 바를 내걸어 과거와 현대를 연결하고자 한 이 작품에서 ‘케데헌의 고향-답십리’라는 김양수 대표의 생각도 함께 읽힌다.
이후 그는 건설업, 유통 등 손대는 것마다 성공을 거둡니다. “두손이 지은 집에, 두손이 디자인한 가구를 놓고, 두손이 추천한 그림을 걸고, 두손이 디자인한 옷을 입히면 어떨까?”라는 꿈을 꿉니다. 하지만 모든 게 구름 그림자 지나가듯 사라져버리죠. 비행기 티켓 한 장 들고 떠난 뉴욕에서 그의 기세는 다시 풀무질한 듯 일어섭니다. 에스프레소 바 언타이틀드Untitled, 대안 공간 스페이스 언타이틀드Space Untitled를 운영하면서 국제 미술 생태계를 경험합니다. 12년 후 귀국해 ‘인터아트채널’로 존재감을 다시 알리고, 그로부터 3년 뒤인 2022년 옛 구세군회관에 두손갤러리를 재개관하죠. 그리고 2026년 봄, 바야흐로 두손갤러리의 답십리 시대입니다.
“겉으로는 변화처럼 보여도, 제 안에서는 하나의 맥이죠. 고미술도, 현대미술도, 디자인도, 정동도, 답십리도…. 정동이 우리 근대 문화의 ‘수동적 시작점’이라면, 답십리는 더 오래된 고향의 층위라 할까요? 그리고 스스로 자기 고향을 다시 세우려는 ‘능동적 시작점’이죠. 그러고 보면 저는 계속 같은 질문을 해온 셈이에요. 우리는 어디서 왔고, 나의 시작은 어디냐는 질문이죠.”
그는 돌아올 회回 자가 아니라, 품을 회懷 자의 회향懷鄕을 말하고 있군요. 고향을 가슴에 품은 이는 고향에 못 간 사람입니다. 잃고 산 거죠. 그래서 이제는 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고향은 ‘내가 생겨난 자리’이자, ‘진리’와 동의어 같습니다.
“예전에 궁에서는 종묘를, 집에서는 사당을 두었어요. 영혼들의 휴식처, 제의의 장소입니다. 지금 답십리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곳은 40년 넘게 한국 고미술 유통과 수집 문화의 중심지였어요. 박물관처럼 유리 너머로 보는 죽은 유산이 아니라, 만지고 느끼는 체험형 문화의 축이 되어왔죠. 문화적 고향이라고 할까요? 디지털 시대 이후 인간이 돌아와야 할 ‘고향의 감각’이 이곳에 있어요. 저는 40년 동안 그 저력을 만들어온 분들에게 숟가락 얹는 정도예요.”
두손갤러리가 이전하며 선보인 문화 프로젝트(2월 27~28일)의 이름 ‘케데헌의 고향-답십리 엔틱 야시장’은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처음 맞은 작품은 정우원 작가의 ‘빛의 서낭당’이었죠(공동체의 안녕을 빌던 서낭당과 오색 천을 LED로 재해석한 설치 작품). 개막식 때 재즈 가수 웅산이 부른 노래는 ‘비나리’였습니다.

김양수 대표 뒤로 보이는 그림은 북한에서 태어나 2009년 한국으로 들어온 이혁 작가의 회화다. “지금 두손갤러리의 유일한 전속작가인데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한국의 전통미술, 서양미술, 추상과 개념의 경계가 한 화면에 공존해요. 그 안에서 오는 불안, 충동, 그리움이 ‘관월도’ ‘관수도’ 같은 산수화 연작으로 표현됩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해요.”
“저는 답십리를 하나의 브랜드로, 새롭게 움직이는 도심형 문화 시스템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답십리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재조명하면서도 고리타분하지 않게, 지금 감각으로 번역해보자는 생각이죠. 젊은 기획자들과 이야기해보니 ‘오프닝’보다 ‘야시장’이라는 말이 더 살아 있는 느낌이더군요. 그래서 답십리 장안평 일대 고미술 상점들이 밤 9시까지 문을 열고 젊은 방문객들을 맞았습니다. 사실 일종의 신고식이었죠.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그 자리에 오래 있던 것,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사 지내듯 시작했습니다.”
그 신고식은 답십리의 문화적 전환점을 알리는 첫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그는 ‘원가와 정가’, 즉 사고파는 논리로만 움직이는 기존 미술 시장과 앤티크 시장에서 벗어나 답십리가 문화 순환이 이뤄지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상인 교환전(말 그대로 각자 가게에 있는 물건을 한데 모아 보여주고 교환해 ‘물건과 손님이 순환’하게 만드는 구조), 앤티크 페어(5월 예정), 나이트 마켓 등의 실험을 계획 중입니다.
“저는 계산 없는 마음의 행동을 ‘막’의 정신이라 말하고 싶어요. 조선 백자 항아리도, 막사발도 완벽하게 만들 능력이 있는데 굳이 완벽으로 몰아가지 않은 거죠. 고려의 정교한 공예처럼 수련이 너무 깊어서 마음과 기술이 자연스레 합해진 경지까지 ‘막’으로 봐야 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더 중요해지는 건 이런 정신의 에너지일 겁니다 ”
막, 크리에이티브!
나는 사실 고전 대신 쇼츠 낚시글을 기웃대고, 본질보다 곁가지에 현혹되고, 깊게 천착하기보다 힐끔 보고, 과거보다 현재나 미래에 매달립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지 못합니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우화 이야기에선 들어간달 것도 없이 훅 빨려들었습니다.
“<행복한 왕자>에서 제비는 남쪽으로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왕자 동상의 부탁대로 보석을 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줘요. 그러다 겨울을 견디지 못해 왕자의 발치에서 죽습니다. 왕자도 제 몸이 다 사라지는 걸 알면서 보석과 금을 모두 떼어줍니다.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헌신, 자발적 선택입니다. AI 시대일수록 결국 인간에게 중요한 건 이런 정신성일 거예요. 이것도 우리가 퇴화되어 그동안 잊고 산 것이죠. 저는 이렇게 ‘계산 없는 마음의 행동’을 ‘막’의 정신이라 말하고 싶어요.”
그는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몇 편을 AI로 실사 영화화하는 작업도 계획 중입니다. 어쩌면 디자인하우스 창립 50주년 기념 전시에서 그 일부를 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조선 백자 항아리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요, 우리는 원래 완벽한 대칭의 도자기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죠. 약간 어긋난 채로 ‘놔둔’ 거예요. 저는 거기에 한국의 미감이 있다고 봐요. 사람들이 단순히 그걸 투박함 또는 소박함으로만 말하는데, 저는 그게 더 적극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완벽하게 만들 능력이 있는데도 굳이 완벽으로 몰아가지 않는 거죠. 조선 백자 항아리만, 막사발만 그런 게 아닙니다. 고려의 정교한 공예처럼 수련이 너무 깊어서 오히려 인위적 계산을 넘어선 상태, 마음과 기술이 자연스레 합해진 경지까지 ‘막’으로 봐야 해요. 세계적 갤러리스트 악셀 페르보르트가 한국 문화의 바탕이라고 칭한 ‘선비 정신’도 비워두고, 덜어내고, 물질을 과시하지 않는 태도잖아요. 이것도 하나의 맥처럼 다 연결되는 거죠.”

지금 두손갤러리에서는 멤피스 그룹 핵심 멤버로 알려진 건축가 미켈레 데 루키의 한국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The Room I’m In: 내가 머무는 방’을 타이틀로 그의 회화, 조각, 에칭, 드로잉 등 다양한 창작 세계를 조망하는 전시다. 4월 30일까지.
그의 이야기 속에서 오스카 와일드, SF 영화, AI 답십리, 백자, 막사발, 선비 정신이 하나의 사유망으로 연결됩니다. 그가 고미술과 현대미술, 서양과 동양, 시대 인식과 미학론을 넘나들며 해면체처럼 빨아들인 결과물이죠. 그리고 그것의 그물코는 역시나 ‘내가 생겨난 자리’ ‘우리의 시작점’입니다.
“창의성이라는 것도 무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기억, 에너지, 축적된 감각이 그 시대의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백남준 선생님 곁에 머물면서 느꼈죠(김양수 대표는 백남준 작가의 뉴욕 시절, 한국 전시 회고전을 도운 각별한 인연이 있다. 백남준 작가는 그를 모델로 한 비디오아트 설치 작품 ‘미스터 킴’도 제작했다. 일반인을 모델로 제작한 첫 작품이다). 분명 그분처럼 남들이 경험하지 않은 어떤 차원의 감각을 지닌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자꾸 그런 감각을 부정하지만, 분명히 존재해요. 단지 잃어버린 거죠. 앞으로 더 중요해지는 건 이런 정신의 에너지일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아손처럼 한쪽 신발을 잃었기에 비로소 모험을 떠날 동력을 얻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황금 양털이라는 더 큰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도 그러하답니다.
“답십리에 오니까 아주 편해요. 그 전에는 너무 폼 잡고 산 것 같거든요. 남은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닌데, 굳이 허위적으로 살 필요가 있나 싶어요. 답십리 야시장 이벤트 다음 날 보니 고미술 상가 사람들 얼굴에 웃음이 돌더라고요. 문화라는 게 결국 그런 거잖아요.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해지고, 자기다운 얼굴을 찾게 하는 것. 그렇다고 뭐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다 ‘지 좋아서’ 하는 거죠. 하하. 조금 덜 마케팅하면서,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고 싶다는 겁니다. 답십리는 제게도 그런 귀향의 장소입니다.”
철새처럼 몸속에 과거에서 온 나침반을 지닌 채 비행하다 비로소 품은 고향. 그리하여 회향. 그는, 우리는 이제는 가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생겨난 자리로. 어깻죽지에서 펄럭 깃 펴는 소리, 모두 들리십니까?

미켈레 데 루키, ‘Mostro 괴물’, 천 배접 종이에 비닐 페인트, 100✗140cm, 2025. 이미지 제공 두손갤러리.
〈두손갤러리 〉
장소 서울시 동대문구 고미술로21, 답십리 고미술 상가 2동 B1 75호
운영 시간 월~토요일 오전 10:30~18:30(매주 일요일 휴관)
홈페이지 www.dusongallery.com
문의 02-544-8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