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둥과 벽면, 그리고 계단이 하나의 큰 조형성 아래 조화를 이룬 오미화 대표의 집. 그녀가 오랫동안 아끼고 사랑하던 로프트 하우스를 좌표로 삼았다.
집을 짓는다고 하면 내게 가치가 있는 것을 구구단 외듯 술술 읊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절 같은 집” “체육관 같은 집”이라 고 두루뭉술하게 말해도, 아니 그렇게 말할 때 건축가는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작은 디테일을 챙기느라 큰 것을 놓치는 실수도 덜 하게 된다. 보고서를 쓰다 보면 세세한 분류와 구성, 그림과 단어가 큰 주제와 딱딱 결합되는 ‘하이어라키hierarchy’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렇듯 큰 키워드가 방 크기와 마루 종류, 내외장재와 구조도 더 잘 결정하게 한다.

어느새 성인이 된 아이들을 위한 공간. 역시 ‘굵은’ 미감이 돋보인다.
오미화 대표가 이 집을 지으면서 건축가에게 전한 키워드는 ‘로프트 하우스’였다.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 사무실을 개조해 층고가 높고 개방감이 남다른 집. 여러 개의 방으로 쪼개진 집은 왠지 갖고 싶지 않았다. “양재성 건축가랑 함께 했는데 미팅할 때 그랬어요. 구조가 단순, 견고하면 벽도 독일 집처럼 두꺼우면 좋겠다. 감옥처럼 단단한 느낌이어도 좋다.(웃음) 저는 공예품이나 현대 장신구에서도 ‘두께’를 중시해요. 자잘한 디테일보다는 큰 라인과 형태가 두드러지고, 그 ‘총체’가 묵직한 작품이 좋아요. 한마디로 듬직한 기운이 담긴 덩어리에 끌리지요. 공간 역시 마찬가지여서 잘게 나뉜 곳보다는 방이나 벽으로 구획되어 있지 않고 툭툭 크게 가는 곳이 좋아요. 인테리어는 공간을 꾸릴 때마다 최상의 합을 보여주는 김숙영, 임미나 대표가 맡아주었어요. 그들이 있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요.”

단정한 레이아웃으로 디자인한 주방. 인테리어가 필요할 때마다 함께 하는 든든한 지원군 김숙영, 임미나 대표가 있어 이번 집도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인생이든 미감이든 그 뿌리와 바탕에 핵심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지라 두꺼운 걸 선호하는 미감은 어떻게 형성된 건지 물었다. “미국 유학 시절에 큰 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뉴욕에 있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Cranbrook Academy of ART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공부했어요. 하버드에서는 박물관학을 공부했고요. 유학을 간다고 해서 매일 놀랍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아니에요. 대신 어떤 굵은 방향을 감지하게 되지요. 내가 어떤 삶에 끌리는지 알게 된다고 할까요?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들어갈 때만 해도 무대조명이나 디자인을 하고 싶었어요. 남들이 덜 하는 것을 해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웃음) 연극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그런 마음으로 파슨스 커리큘럼을 들여다봤는데, 금속과 학생들에게 반했어요. 그들이 제일 열심히 했거든요. 성형이나 접합, 표면 처리를 하려면 다양한 도구가 필요한데, 그걸 집에 들여놓기가 쉽지 않으니 교실에서 다들 열심인 거예요.

금속과 철을 좋아하는 취향을 담아 계단에도 이 소재를 적극 활용했다.
그런 열정과 땀방울에 반해 금속공예를 하게 됐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금속이라고 하면 금은방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지요. 한국에서는 미대에 들어갈 때 그림을 완벽하게 그려야 하잖아요(성적만으로 뽑는 대학도 많지만요). 미국은 안 그래요. 자화상을 꼭 내야 하고, 입학을 하면 그 자화상을 쭉 걸어 전시하는데, 한국 사람 입장에서 보면 다 너무 못 그렸더라고요. 그런데 굉장히 귀하고 솔직한 면이 있지요. 장신구도 마찬가지예요. 그저 예쁜 게 아니라 굉장히 구조적이고 건축적이에요. 개념을 해체하고 주제도 신선하지요. 사실 저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정해진 틀에서 열심히, 성실히 사는 사람이지요. 제가 갤러리스트로 활동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인생을 걸고 굵직한 작업을 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들어요. 대리 만족도 하고요. 자연으로 치면 저는 나무와 낙엽 같은 서정적 요소에 끌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땅에 박혀 있는 그 우람한 몸통과 뿌리를 아름답다고 여기지요. 원시시대 제전 같은 원초적 의식에 등장하는 사물을 보면 그 덩어리의 힘이 대단하잖아요. 작품에서도 공간에서도 그런 ‘큰’ 힘을 추구하고, 그런 작품을 하는 작가들을 열심히 돕고 싶어요.”

자유로운 시도와 화풍이 좋아 소장한 임정철 작가의 회화와 박종현 작가의 구리 의자.

주방 한편에서는 미국 유학 시절부터 함께한 벤치가 정서적 중심을 잡아준다.
집을 짓는 데도 그런 심미안과 가치관이 큰 역할을 했다. 서울 중구 다산성곽길 아래에 자리한 집은 야트막한 오르막길이고, 주변으로 크고 작은 집과 빌라도 많아 아파트 생활을 오래 한 사람에게는 여러 모로 불편한 입지다. 하지만 오미화 대표는 로프트 하우스 같은 ‘큰 덩어리’를 갖고 싶었고, 그것만 이룰 수 있다면 관리의 고단함 같은 건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을 지어 이사를 간다고 하니 어떻게 관리하고 치우려고 그러느냐는 지인이 많았는데, 저는 크게 신경 안 썼어요.(웃음) 모든 것이 좋을 수 없고 다 방법이 있으니까요. 저는 정원 애호가도 아니라 정원도 만들지 말라고 했어요. 묵직한 집이면 그뿐, 다른 건 필요 없었지요.” 그녀의 말을 듣고 집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보면 이 집이 그녀의 이런 생각과 얼마나 일체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거실과 다이닝룸이 있는 메인 공간부터 성인이 된 두 자녀의 방과 음악 감상실이 있는 위층, 남편의 서재와 부부 침실이 있는 저층까지 각 층이 별도의 문 없이 뻥 뚫려 있고 벽면과 천장은 최소한의 미장으로 마감했다. 현대미술관 리움에 있는 렘 콜하스의 블랙 박스처럼 계단참 끝으로 화장실이 툭 ‘박혀’ 있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높은 천장과 시원한 공간 구성이 로프트 하우스란 콘셉트를 잘 보여준다. 밖으로 나가면 제법 널찍한 야외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내 가치 판단으로 채운 삶이라야 행복이 가득한 삶인 거잖아요? 나한테 의미 있고 나한테 멋진 걸로 주변을 채우고 남들이 좋다는 작품 말고 나 스스로 ‘이거다’ 하는 작품을 갖는 삶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걸 사자 치면 끝이 없어요. 돈으로 따져도 끝이 없고, 좋은 가구나 조명 및 그림을 사겠다고 쳐도 끝이 없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 무심하고 단단한 디자인의 테이블과 빈티지 조명이 오미화 대표의 미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로프트 하우스 얘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런 개념의 집을 아름답게 가꾸기는 쉽지 않다. 모든 가구와 조명, 세간이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이다. 숨을 곳 없는 평지처럼 공간을 채우는 감각과 솜씨가 단박에 묻어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메인 층에 내리자마자 “와” 하고 감탄했는데 가구와 그림, 조명과 테이블웨어가 하나의 큰 그림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포인트처럼 들어간 것도 좋았다. “원래 ‘무거운’ 작품이 걸려 있었는데, 젊은 작가의 작품으로 바꿨어요. 젊게 살고 싶고, 젊은 작가들을 응원하고 싶어서요. 계단참에 있는 작품은 임정철 작가의 그림인데 재미있지 않나요? 골판지에 토끼와 우주선, 낙서 같은 문자가 만화처럼 뒤섞여 있는데 그런 자유로움이 좋았습니다. 식탁에 있는 조명은 플로스 빈티지고, 라운지체어는 찰스&레이 임스의 1970년대 제품이에요. 가구와 소파 제안은 스위스 가구 컬렉터인 루돌프 뤼에그와 가구 디렉터이자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정희경 대표가 함께 팀을 이뤄 해줬습니다.” 주방과 거실에서 본 테이블웨어도 존재감이 확실했다. 은 주전자는 전용일 작가의 작품이고, 후추밀은 고보형 작가의 작품. 두 작가 모두 한국 공예계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손으로 감싸는 건축처럼 아름다운 조형미가 압권이다.

신당동에 있는 갤러리오 현대장신구 내부. 조형성이 돋보이는 선 굵은 디자인의 작품을 소개한다.

신당동에 있는 갤러리오 현대장신구 내부. 조형성이 돋보이는 선 굵은 디자인의 작품을 소개한다.
공간도, 삶도 내 가치 판단으로 채우다
그녀의 전문 분야인 현대 장신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날 촬영 현장에는 브로치부터 오브제까지 다양한 금속공예 작업으로 유명한 이동춘 작가의 작품이 있었다. 벽이나 바닥에 놓이는 다른 현대미술과 달리 내 머리를 통과해 ‘목에 올라가는 조각’이라는 점에서 이질적이기도, 근사해 보이기도 했다. “그림이나 조각은 내가 예술을 좋아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누구나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어요. 하지만 현대 장신구는 가격적 허들 너머 내가 직접 착용하고 다녀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하고 신경 쓰기 시작하면 장신구는 안 하게 돼요. 내겐 이런 장신구가 ‘명품’이다, 내겐 이것이 더 ‘값지다’ 하는 믿음이 있어야만 과감히 착용할 수 있지요. 뤼시 사르네일Lucy Sarneel이라는 네덜란드 작가가 있어요. 마지막 투병 생활을 하며 만든 작품이 행 온Hang On인데, ‘붙잡다’라는 뜻이지요. 금속으로 만든 눈의 결정체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작품을 보면 작가의 생애가 고스란히 전해져 중요한 날이나 의미 있는 날 착용하게 돼요. 그녀와의 우정을 기리는 측면도 있고요. 이런 가치에 대한 믿음은 삶에도 중요하다고 봐요. 내 가치 판단으로 채운 삶이라야 행복이 가득한 삶인 거잖아요? 나한테 의미 있고 나한테 멋진 걸로 주변을 채우고, 남들이 좋다는 작품 말고 나 스스로 ‘이거다’ 하는 작품을 갖는 삶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걸 사자 치면 끝이 없어요. 돈으로 따져도 끝이 없고, 좋은 가구나 조명 및 그림을 사겠다고 쳐도 끝이 없지요. 하지만 내가 좋은 건 총량이 있고 거기서 평안하고 행복하면 돼요. 그럴 때 오히려 삶의 이야기도 풍성해지고요. 현대 장신구 이야기도 좀 더 하고 싶은데, 이 분야가 정말 쉽지 않아요. 아트 신scene에서는 작아서 안 끼워주고, 공예 신에서는 또 너무 아트라 안 끼워줘요. 그렇게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인식되다 보니 만드는 사람도, 소개하는 사람도 확실한 자기 영역을 갖기가 쉽지 않지요.
이참에 아트 장신구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일단 착용해보는 것이 중요해요. ‘이런 자리에 하고 가면 좋겠는걸?’ 하고 상상을 하며 작품을 보면 더 신나는 시간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