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목고 전문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특목고 입시 학원의 신화'라 불리는 G1230(구 글맥학원)을 운영하던 김철호 대표 아내로 살았으며, 인제로 귀촌한 후에도 자연 순환 농법으로 사과를 키우는 애플카인드의 이사로 일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산골과 어울리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인데, 산골 생활도 모자라 찍박골에 정원을 가꾸기로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가?
25년 동안 도시에서 열심히 일했다. 인제 찍박골에 내려올 때만 해도 뭘하겠다는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 그저 쉬고 싶었다. 절박하게, 그렇게 찍박골에서 몇 년 쉬면서 서서히 느끼게 됐다. '내가 매달리던 1등의 삶은 나를 위한 1등은 아니었구나, 내 인생이다. 내가 행복한 시간을 살자', 해발 700m 위치에 자리하고, 주변이 국유림으로 둘러싸여 있고, 골짜기를 통째로 쓸 수 있는 찍박골이내 앞에 있었다. 그리고 2003년 마음의 준비 없이 떠난 열흘 넘는 영국 가든 투어에서 나는 내내 부러움과 질투, 감동 등을 느꼈다. 그때부터 가든이라는 세상에 혼을 빼앗겨버렸다. 그 여행이 나의 '매일매일 헤매는 좌충우돌 가드닝'의 출발이 되었다.
댄싱가든, 암석정원, 화이트가든… 정원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어쩌다 이렇게 크고 다채로워졌나?
영국 정원 투어 이후로 다른 나라의 정원 투어도 다니면서 이 정원을 보면 이렇게 만들고 싶고, 저 정원을 보면 또 저런 스타일로 만들고 싶고, 토목 작업을 하다 정원을 만들 만한 공간이 생기면 거기에 맞는 정원을 또 만들고 싶고 …. 욕심이 계속 불어났다. 그렇게 텃받정원. 댄싱가든, 화이트가든, 앞마당정원, 암석정원, 자작나무숲, 개울정원, 사과공원, 숲자락정원까지 10년에 걸쳐 아홉 개 정원을 만들었다.
'신나는 실패가 키운'이라는 부제가 절묘하다. 찍박골정원을 가꾸며 저지른 가장 뼈아픈 실수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뭐 좀 알고 시작했으면 좋았겠다." 정원 문화로 치면 우리 나라는 아직 척박지인 단계라 어깨너머로 보고 배물 대상도 정보도 많지 않고, 정확한 품종을 알고 판매하는 공급처도 드물다. 그냥 '빨강 뱀무' '오렌지 에키네시아' '향기 나는 플록스'처럼 식물 이름이 알려진 정도다. 그 식물은 키가 얼마큼 자라는지, 다년생인지 일년생인지, 건조한 곳에서 잘 크는지 습한 곳에서 잘 크는지, 겨울에 영하 몇도까지 월동이 가능한지 등 정보가 없다. 그러니 심어보고 아니면 다시 뽑고, 또 심기를 거듭했다. 게다가 초기에 만든 정원에는 벤치도, 나무 그늘도 없었다. 그냥 정원이 좋아서 가꾸었지, 정원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무소의 뿔처럼 앞으로만 나간 거다.

정원 가꾸기에서 남편(애플카인드 김철호 대표)의 역할은 어떤가?
힘을 써야 하는 부분, 시설물 수리, 기계·목공·전기 등 정원 일에는 남자의 일거리가 곳곳에 있다. 그래서 암묵적으로 일의 영역을 나눴다. 꽃이 자라는 곳은 내 영역이고, 남편의 영역은 꽃 없는 잔디, 나무, 풀깎기, 텃받이다. 아, 꽃이 있는 부분 중에서 수국길도 남편의 영역인데, 내가 몇 년째 수국꽃을 못 피워서 낑낑거리기 때문이다. 추운 지역에서도 꽃을 피운다는 당년지 수국, 메구미 품종으로 수국길을 만들었는데, 아직도 꽃이 피지 않아 남편이 해보겠다며 접수했다. 그런데 남편이 이유를 알아낸 것 같아 기대가 "만땅'이다.
찍박골살이와 정원 생활이 인생에 대해 가르쳐준 바가 있나?
우선 '내가 많이 부족했구나 !. 현장에서 일할 때는 내가 잘하는 부분만 보였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못한 부분만 생각난다. 두 번째는 '아무리 물을 잘 주고 양분을 많이 줘도 사과가 여름에 달리지 않는다', 시간, 햇볕, 양분 등 모든 게 총족돼야 맛있는 열매가 되고, 아름다운 꽃이 핀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건 내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걸, 꽃 피울 때가 아직 아니라는 걸 정원 일을 하며 깨달았다. 기다릴 줄 아는 지혜, 나를 탓할 줄 아는 겸손에 이제 겨우 눈뜬 거다.
초보 가드너로 한 발짝 내딛고 싶은 독자를 위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가드너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알려달라.
1. 1년 정도는 기다리면서 내 정뭔의 흙, 기후, 계절에 따른 변화 등을 파악해야 한다. 그다음에야 각각에 맞는 공간을 계획할 수 있다.
2. 손주들이 뛰어놀 가족 모임을 위한 정원인지, 혼자 쉬고 싶은 정원인지, 화려한 꽃을 키우고 싶은 정원인지, 먹거리를 위한 정원인지 등 정원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3. 일주일에 몇 시간 정도 가드닝에 투자할 수 있는지 판단해서 그에 따라 정원 스타일, 식물 심을 공간의 면적, 식물 종류 등을 조절한다. 이렇게 큰 덩어리를 계획하고 나면, 그다음엔 실패하면서 배워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