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가 김민욱
‘아름답다’는 ‘나(我)답다’에서 온 말이라죠. 구멍 뚫리고, 벌레 먹고, 기우뚱하고, 가끔 곰팡이도 슨 김민욱 작가의 작품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나답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처럼 완벽하지도 세련되지도 않고, 상처도 좀 있고, 남의 도움도 필요한, 그런 존재요. 그게 결국 생명의 본성이라는 걸 우린 알기 때문에 김민욱 작가의 작품에서 편안함, 위로 같은 걸 받는 것 같고요.
맞아요. 제가 가장 기쁠 때는 작업이 잘됐을 때보다 나무를 만날 때예요. 제가 말하는 나무는 건조를 포함해 다양한 안정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나무예요. 새 나무를 맞을 때마다 항상 저 커다란 덩어리 속에는 어떤 게 들어 있을까 상상해요. 나무 한 그루도 부분마다 색감, 결, 변형의 정도가 다르거든요. 그리고 나무는 죽은 후에도 뒤틀리고 갈라지는 것을 멈추지 않아요. 그게 나무의 본능이고요. 사람의 눈에는 그게 ‘불완전함’ ‘모자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저는 나무가 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거라 생각해요. 나무가 오랜 시간 말해온 몸짓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또 드러내는 게 제 일이죠.
그렇게 ‘좋은 나무를 만나’고 나면 김민욱 작가는 그 나무에 어떻게 형태와 쓰임을 주나요?
음… 좀 달라요. 제 작업은 나무에 따라 형태와 쓰임이 결정된다고 봐야 해요. 목선반 작업으로 1차 가공하다 보면 나무 속에 숨은 벌레 흔적(구멍), 곰팡이균이 만든 검은 얼룩(스폴팅), 옹이 같은 게 드러나요. 그걸 매번 새로 발견하는 게 제 일이죠. 그러니 나무가 일러주는 대로 형태와 쓰임을 결정할 수밖에요. 저는 스케치를 하지 않아요. 나무 크기, 옹이 위치, 칼날 상태에 따라 모든 게 유동적으로 바뀌거든요. 한 작업만 파지도 않고요. 이거 좀 하고, 저거 좀 하다 보면 나무들이 계속 마르고, 수축하고, 뒤틀리고, 계절에 따라 색감도 조금씩 변해요. 저는 그 상황을 계속 지켜봐요. 그런 게 제 성격과도 닮았어요. 나무에 시간을 주면 원래 갈라진 부분이 더 깊어지기도 하고, 한 방향으로 더 기울기도 해요. 변형이 심할 경우엔 아주 작은 금속을 덧대 형태를 잡아주는 정도만 제가 해요. 예전엔 그게 나무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에 결국 ‘이것도 내 개인적 욕망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용한 달맞이길 골목에 자리한 목공예 스튜디오 키미누. 1층에는 쇼룸이 있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남성복 테일러가 되려 했다고 들었어요. 이민을 계획하면서 즐겁게 일하며 살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목공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부산에 내려오게 된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요.
10년 좀 넘었어요. 부산이 고향이에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 했는데, 결국 서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내려왔어요. 무엇보다 저는 부산을 아주 좋아해요.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예전에 자동차를 살 때도 부산에서 생산된 걸 찾았으니까요. 부산 사람들은 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음, ‘부산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런 작업이 나왔다’라는 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전에 돌 작업하는 분이 제 작업을 보고 “경상도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그동안 받은 평가 중 가장 인상 깊었어요. ‘경상도스럽다’? 서울적이지 않다, 세련되지 않다, raw하다, 로컬적이다… 뭐 그런 의미일 텐데, 한두 마디 말로 표현할 재주는 제게 없네요.
한 줌의 빛만 들어오는 지하의 작업실. “나무를 만나는 게 내 일의 시작”이라는 말처럼 그가 새로 발견한 나무들이 주인인 공간이다.
저는 ‘raw+cul(ture)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요, 나무가 지닌 ‘천연의 미’를 김민욱 작가의 ‘손의 기운’으로 전달한 공예니까요. 부산의 직설적이고 투박하지만 진솔한 컬처가 그 밑바탕에 흐르고 있을 테고요.
음… 그렇죠. 저는 나무를 깎는 게 제 일이지만 하루 한 시간 정도 바닷바람, 산바람 맞으며 와우산을 산책하는 것도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와우산도 제 작업실의 일부이고요. 왜냐하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건 작업뿐이거든요. ‘그 나무는 언제 작업 좀 해야 되는데’ ‘그 나무는 깎은 지 며칠 지났으니까 이제 형태를 어떤 식으로 해야겠다’ 생각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가요. 그런데 막상 작업할 때는 거의 생각을 안 해요. 관성처럼 순간순간에 집중할 뿐이에요. 바닷가를 끝도 없이 걷는 것, 생각하는 것, 상상이 되지 않지만 서울이나 일산이었다면 이런 일상은 없었을 테고, 지금의 키미누는 좀 달라졌겠죠. 그리고 ‘관계하지 않는 삶’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고, 중간에 잠깐 낮잠 자고, 저녁까지 일하다 산책하고, 격주에 한 번 정도 언덕을 내려가요(집도 작업실 바로 옆이니까요). 아내와 부모님과 나누는 몇 마디 대화를 빼놓고는 언어의 사용도 아주 적어요. 이렇게 단조로운 삶, 관계하지 않는 삶이 제게, 제 작업에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속도감 있게 나무를 깎을 수 있는 목선반 작업을 좋아한다.
한 줌의 빛만 들어오는 지하의 작업실. “나무를 만나는 게 내 일의 시작”이라는 말처럼 그가 새로 발견한 나무들이 주인인 공간이다.
그렇게 ‘관계하지 않는 삶’의 일상을 이어가다가도 언젠가는 ‘지금 하는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올 수도 있을 텐데요.
분명히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시점이 좀 늦게 오면 좋겠어요. 하지만 나무를 보아도 더 이상 즐겁지 않은 순간이 오면?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아내와 함께 알래스카나 라플란드, 홋카이도 중 한 곳으로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음… 그리고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조각이에요. 나무의 매스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무게를 좀 덜어내는 작업요. 스킨이라고 해야 하나… 껍질 부분과 나무 속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을 고민해왔거든요. 다만 크레인이나 리프트 같은 큰 장비를 갖춰야 하고, 작업 공간도 아주 커야 하기 때문에 욕심으로만 지니고 있어요. 지금은 제가 잘하는 일을 하고 있고, 다행히 그 일이 계속 신선하고 재미있기도 하고요.
글 최혜경 | 사진 이기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