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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New Jeans의 인기가 뜨겁다. 각종 음원 차트에서 최상위권을 휩쓸며 하반기 최고의 신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유의 청량한 음악과 멤버들 각자의 매력이 한몫했겠지만 비주얼 디렉팅 전반을 맡은 어도어 CEO이자 하이브 CBO 민희진의 역량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Y2K 감성과 MZ세대의 니즈를 잘 버무려 매력적인 비주얼을 제시한 민희진의 디렉팅은 음악 산업에 이 같은 비주얼 디렉터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잘 보여준다. 시대를 좀 거슬러 올라가보면 음악이 산업화되고 팝 음악이 등장하며 비주얼 크리에이티브가 함께 발전했고, 1980년대 MTV 시대의 도래에 따라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며 더욱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 등의 뮤지션을 떠올릴 때 뇌리에 스치는 강렬한 이미지 또한 아주 세밀하게 이뤄진 비주얼 디렉팅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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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팝 음악의 역사와 함께 발전한 비주얼 디렉팅은 팝 음악과 헤비메탈 사운드가 주류 시장을 물들였던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 즉 X세대를 대변하는 얼터너티브 음악의 시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얼터너티브 음악 신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디자이너이자 사진가, 비주얼 디렉터, 영화감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름은 안톤 코르베인Anton Corbijn이다. 1955년 네덜란드 스트레인Strijen에서 태어난 안톤 코르베인은 허만 브로드 & 히즈 와일드 로맨스Herman Brood & His Wild Romance 같은 네덜란드 밴드의 공연 사진을 찍으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네덜란드 투어 중이던 조이 디비전의 공연을 직접 본 후에는 록 음악의 성지 영국으로 날아가 포토그래퍼로서 활동 반경을 넓히려 했고 1970년대 후반부터 당시 영국 최고의 록 음악 매거진 〈NME〉의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노이즈가 낀 질감과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에 흑백 대비 등이 그의 작업 특징이었는데 당시 록 밴드들의 거칠면서 신비로운 느낌을 잘 표현해 빠르게 입지를 굳혀나갔다.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였던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 데이비드 보위, 밥 딜런, 브루스 스프링스틴, 톰 웨이츠, 마일스 데이비스, 엘비스 코스텔로 등과도 작업했다. 물론 그를 영국으로 이끈 장본인이자 영감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밴드 조이 디비전도 만났다. 훗날 조이 디비전의 프런트맨 이언 커티스Ian Curtis의 사후 발매 싱글 앨범 〈Atmosphere〉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렇게 〈NME〉의 수석 사진가로서 커리어를 이어간 그는 다시 한번 앨범 아트와 뮤직비디오로 영역을 넓혔다. 그러다 운명적으로 엮이게 되는 두 밴드를 만난다. 바로 얼터너티브 사운드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디페시 모드Depeche Mode, 그리고 U2다. 1980년에 결성된 디페시 모드는 초창기에는 당시 여느 영국의 밴드들처럼 ‘꽃미남’에 ‘뿅뿅’거리는 뉴웨이브 음악을 했지만 1984년 발매된 〈Some Great Reward〉와 1986년의 〈Black Celebration〉을 거치며 보다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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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의 소재도 사회의 어두운 부분, 기독교 세계관의 부조리 등을 다뤄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밴드는 자신들의 음악이 안톤 코르베인이 만든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Black Celebration〉의 ‘A Question of Time’ 뮤직비디오(사진 1)를 맡긴다. 황량한 사막을 사이드카를 타고 가로지르는 어떤 남자와 갓난아기의 이미지와 밴드의 라이브 클립이 교차 편집된 음울한 뮤직 필름은 이후 안톤 코르베인이 디페시 모드의 앨범을 총괄하는 비주얼 디렉터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비주얼 디렉팅에 나선 음반은 1990년에 발매된 〈Violator〉(사진 2)다. 명곡으로 꼽히는 ‘Personal Jesus’(사진 3)의 뮤직비디오 뿐 아니라 앨범 전반의 디자인에 참여하며 역량을 드러냈다.
이 앨범은 디페시 모드의 전성기 시절 최고의 음반 중 하나이자 훗날의 얼터너티브 및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 세기말을 수놓았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에게도 큰 영향을 준 기념비적 앨범이다. 이 앨범을 통해 디페시 모드 특유의 퇴폐적이고 센슈얼한 이미지 아이덴티티가 정립되기도 했다. 안톤 코르베인은 이후 디페시 모드의 전설적인 앨범 〈Songs of Faith and Devotion〉(1993), 〈Ultra〉(1997)의 디자인과 비주얼 작업 전반에 참여하며 이 밴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이르게 된다. 세계적인 밴드 U2의 초기 명반인 〈The Unforgettable
Fire〉(1984, 사진 4)의 앨범 커버부터 전반적인 아트 디렉팅도 안톤 코르베인이 맡았다. 1980년대 후반 최고의 록 음반 중 하나로 꼽히는 〈The Joshua Tree〉(1987, 사진 5)의 앨범
디자인, 1991년 발매된 〈Achtung Baby〉의 싱글 ‘One’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U2의 전성기 시절, 비주얼 디렉터로서 큰 영향을 끼쳤다. 얼터너티브 음악 신의 태동기를 놓고 이야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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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얼터너티브의 영원한 아이콘, 너바나와도 작업했다. 너바나의 두 번째 정규 앨범 〈In Utero〉(1993)의 첫 번째 싱글 ‘Heart-shaped Box’(사진 6·7)의 뮤직비디오 연출로 안톤 코르베인은 커리어에 정점을 찍는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나 나올 법한 초현실적 이미지와 비현실적 은유, 예를 들어 십자가에 못 박힌 병든 노인의 모습 같은 다소 파격적인 미장센의 뮤직비디오는 공개 이후 큰 반향을 일으키며 MTV 뮤직 어워드에서 베스트 얼터너티브 비디오와 베스트 부문과 아트 디렉터 부문을 수상했고, 1993년 MTV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된 뮤직비디오로도 이름을 올렸다(〈NME〉에서도 ‘가장 위대한 뮤직비디오 100’에서 22위에 랭크됐다). 여담으로, 너바나 멤버들은 안톤 코르베인과의 작업에 크게 만족하며 다른 뮤직비디오의 연출 또한 그에게 제안했지만 프런트맨 커트 코베인의 자살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이후 닉 케이브 앤드 더 배드 시즈Nick Cave And the Bad Seeds의 앨범 커버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메탈리카, 머큐리 레브 같은 굵직한 밴드들의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으며 1990년대 얼터너티브 음악 신과 대중문화 분야에서 대표적인 비주얼 디렉터로 자리 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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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너티브의 열기가 사그라들기 시작한 밀레니엄 시대에도 콜드 플레이의 ‘Viva la Vida’, 더 킬러스의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 등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동했다. 장편 영화도 만들었다. 안톤 코르베인을 영국으로 오게 만들고,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게 만든 조이 디비전의 리더 이언 커티스의 짧은 생애를 담은 전기 영화 〈Control〉(2007, 사진 8)이다. 2007년 칸 영화제에서 초연된 이 영화는 안톤 코르베인의 대표적인 비주얼 아이덴티티, 명암 대비가 도드라지는 모노톤의 색감과 조이 디비전의 음악, 이언 커티스를 연기한 배우 샘 라일리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크게 호평받았다.
이후에도 조지 클루니 주연의 〈A Most Wanted Man〉(2014), 데인 드한이 무명시절의 제임스 딘으로 변신한 〈Life〉(2017) 등을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서의 커리어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뉴진스의 민희진과 마찬가지로 안톤 코르베인 역시 비주얼 디렉터가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최근 K-팝
시장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 자체가 전 세계적인 메가트렌드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각적인 비주얼 디렉터의 역량이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의 대중음악이 음악사의 중심에 기록되는 순간이 그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MoR(Master of Reality)
블랙 사바스에서 만나 화이트 라이온에서 갈라진 록·메탈광들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황규철과 디자인 저술가 박경식이 결성한 프로젝트 동아리. 두 사람은 서울, 인천, 경기, 오사카, 교토, 도쿄, 토론토, LA, 베를린까지 바이널을 디깅하면서 나눈 음악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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