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디자인〉과 디자인프레스, 아트앤에디션 공동 주최로 진행한 ‘2022 디자이너 아트앤에디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픽 디자이너 크리스 로의 ‘No Love Lost 1’.
아티스트프루프 대표 겸 작가 최경주의 ‘Here & There’.
전시 기간 11월 8~18일 11:00~19:00(14일은 15:00까지 운영, 일요일 휴무)
주최 월간 〈디자인〉, 디자인프레스, 아트앤에디션
장소 디자인하우스 갤러리 모이소(서울 중구 동호로 272)
김기조, 백종환, 조성민, 최경주, 크리스 로.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작가들이 ‘경계’라는 주제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해 제각기 다른 작품을 선보였다. 그중 그래픽 디자이너 크리스 로와 공간 디자이너 백종환,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이 두 사람은 ‘한지’라는 의외의 교차로에서 만난다. 크리스 로의 ‘No Love Lost 1’과 ‘No Love Lost 2’는 ‘서로를 미워한다’라는 뜻의 ‘No love lost between’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작가는 이 표현을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는 경계에 놓인 상황으로 재해석해 실크스크린 인쇄로 한지 위에 구현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시 두 지점 사이의 움직임을 채우는 기법인 트위닝tweening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두 대상이 움직이던 중 만나 접점을 이루는 순간을 포착했다. 이는 작가가 평소 다른 잉크들의 겹침에 대해 연구하던 것의 일환이자 ‘움직임 속의 고요함’을 구현한 결과이기도 하다. 백종환 WGNB 소장은 조용하고 담담한 분위기의 공간을 수묵화로 표현한 ‘고요_책’과 ‘고요_책과 선반’를 선보였다.
(좌) 공간 디자이너 백종환의 ‘고요_책과 선반’. (우) 그래픽 디자이너 김기조의 ‘문자경계’ 연작 중 일부.
한지를 가득 메운 굵은 선은 책과 선반의 모습을 구현한 것인데, 작가가 의도한 고요함의 정서를 극대화해 묵직함과 진중함을 발휘한다. ‘고요_책과 선반’에서 푸른색 작은 점은 흑백으로 이뤄진 작품 속에서 분위기를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아티스트프루프의 최경주 작가, 패션 디자이너 조성민, 그래픽 디자이너 김기조는 ‘광의’의 천을 재료 삼아 자신만의 비전을 구현했다. 최경주의 ‘Here & There’가 대표적인데 거즈와 면, 마 등 다양한 천에 페인트와 목탄, 스프레이를 입히고 긁어내고 흩뿌리는 등 즉흥적인 기법을 다양하게 시도했다. 이후 작업한 천을 자르고 붙이고 꿰매면서 서로 다른 색상과 재질이 공존하게 되는데,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여러층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퀼트를 활용한 조성민의 ‘Forget-me-nots’와 ‘Tulips’는 점들이 흩어지고 모이며 만들어지는 꽃의 형상으로 찰나에 스쳐가는 순간의 행복을 표현한 작품이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입체적인 옷을 디자인하는 그에게 평면 작품은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꽃의 배치와 흐름, 프레임에 씌운 원단의 면적과 크기 등 제작 과정에서 디테일한 부분에 심혈을 기울였다.
글자를 디자인하는 과정을 캔버스에 구현한 김기조의 ‘문자경계’는 문자에서 비롯되는 명징한 메시지를 배제한 채 의미를 지니지 않은 형태를 그려냈다. 실제 작업 시 설정하는 그리드의 형태를 모방해 점을 찍는 등 소프트웨어상에서 이루어지는 디자인을 물리적으로 재현한 것. 위와 아래, 수직과 수평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이 작품은 감상자의 관람 방향에 따라 새로운 의도를 만들어낼 수 있어 흥미롭다. 이처럼 작가들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주제를 재해석하되, 직접적인 메시지 대신 추상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관람하는 사람에게 감상을 일임한다. 경계를 넘나든 창작자들의 작품은 관람자들에게 사회가 규정한 영역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artnedition.com
박소연
아트앤에디션 대표
“창작자들이 자신의 경계를 허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어떻게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나?
한국은 창작자들의 영역이 매우 공고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피카소만 해도 회화, 판화, 조각, 도자기 등 다양한 시도를 한 예술가이지 않나. 그 외에도 해외의 예술가 중에는 거침없이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이가 많은데, 한국은 유독 그런 경우가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트앤에디션을 운영하며 국내 작가들을 만나면서 역량은 충분하지만 실험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 월간 〈디자인〉과 디자인프레스로부터 프로젝트를 제안받았고, 이번 기회를 통해 국내에도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원화를 한정판 판화로 제작해 판매할 예정이라고.
작품을 고해상도로 분할 촬영해 원화와 최대한 비슷한 퀄리티의 판화를 한정판으로 제작 중이다. 100~150호 정도의 대형 작품을 30호 정도로 축소할 예정이다. 아트앤에디션의 특허 기술 중 종이에 찍히는 잉크의 높낮이를 조절해 작품 표면의 울퉁불퉁한 질감까지 재현하는 ‘마티에르 프린팅’이라는 인쇄 기법이 있다. 기존에는 형압을 통해 작품의 높낮이를 만들었지만, 자체 개발한 기술로 종이 상태를 깔끔하게 유지하면서도 원화와 거의 같은 품질의 판화를 만들 수 있다. 판매가도 원화보다 훨씬 저렴하다. 이 모든 것이 자체 인쇄 역량을 갖춘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시를 마친 뒤에는 아트앤에디션 웹사이트를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
패션 디자이너 조성민의 ‘Forget-me-nots’.
완성된 작품을 본 소감이 궁금하다.
모두 놀랍도록 좋았다. 평소 ‘작품’이라고 불릴 수 있으려면 다른 예술가들과 구별되는 ‘다름’,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들 모두 기성 작가와 달랐고, 각자 하는 일과 연관성이 있는 멋진 작품들이었다. 각 분야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다는 점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앞으로 열릴 전시에서 관람객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모두 관람하는 사람의 몫일 테니 자유롭게, 원하는 방식으로 감상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다만 영역을 넘나드는 다섯 작가의 작품이 관람객의 창의성을 자극하고, 이번 전시가 많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경계를 허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