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부산디자인위크가 ‘로컬 디자인’을 주제로 디자인 신에 새로운 파도를 일으켰다. 글로벌 디자인 시티로 진화 중인 부산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부산디자인위크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
부산국제영화제, 지스타, 아트부산….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에 만족하지 않고 제1의 문화 도시를 꿈꾼다. 지난 6월 9일부터 12일까지 열린 부산디자인위크가 화룡점정이었다고 한다면 너무 후한 평일까? ‘로컬 디자인’을 주제로 한 이번 행사는 부산 및 경남권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다채롭게 소개하는 한편, 관람객과 함께 즐기고 경험하는 디자인 전시, 일상에 특별함을 더하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제품 등을 선보이며 3박 4일간 약 1만 3000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기간 6월 9~12일
장소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 3홀
주최 디자인하우스, KNN, 부산경제진흥원
주관 월간 〈디자인〉
웹사이트 designweek.co.kr
변방과 중심을 전복하는 로컬 디자인
‘자랑스럽게 로컬을 지지하기(Support local, doing it proudly)’. 로컬 문화의 중심지인 미국 포틀랜드의 편집숍 메이드히어MadeHere PDX의 경영 모토다. 올해 공개한 부산 디자이너들의 다채로운 작업을 보며 부산의 로컬 디자인 신도 자랑스럽게 지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부산의 로컬 디자이너 커뮤니티 ‘프로토’와 이혜숙정원디자인스튜디오가 협업한 부산디자이너스룸도 그중 하나다. 피스앤플렌티의 이민들레·이달래, 부산고등어 장태현, 스튜디오 소소나의 이경화 등 지역의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브랜드와 정체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자기만의 방’을 선보인 것.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오는 영리한 기획이 두드러졌다. 가령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 피스앤플렌티의 공간에서는 작업한 로고를 모아 벽면에 붙여 소개하는 한편,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다양한 잡지를 큐레이션해 공개했는데 디자이너의 일상과 농밀하게 압축된 이들의 아이덴티티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부산디자이너스룸 중 프로토의 커뮤니티 공간을 구현한 방.
부산국제디자인어워드 수상작 전시 공간.
이혜숙정원디자인스튜디오는 디자이너들의 방 후면에 테라스 가든 ‘더 룸 아웃사이드’를 설치했다. 이 공간에 캠핑용 가구를 배치하고 야생화를 비롯해 식물을 식재하며 테라스의 의미를 확장해 눈길을 끌었다. 부산국제디자인어워드 수상작 전시도 남다른 볼거리였다. 강렬한 레드를 키 컬러로 연출한 부스에서 다양한 작품을 패널로 소개했고, 김낙붕의 검은 대문이나 대상을 수상한 원종욱의 범어사 기념 주화와 관광 기념품 그래픽 디자인처럼 일부 실제 제품이나 목업도 선보였다. 이와 더불어 부산디자인진흥원은 사회적 기업과 소셜 벤처 홍보를 위한 부스를 별도로 마련했는데, 자체 개발한 밑창 디자인을 적용한 스니커즈를 선보인 씨마이너, 드립백 박스를 전시한 로컬 카페 베르크로스터스 등 신생 브랜드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각종 굿즈와 QR코드를 비치한 곰표 전시 부스.
사용자가 완성하는 디자인 인터랙션
‘디자인은 사용자가 완성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디자이너가 제아무리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도 이것을 완성하는 것은 그것을 수용하고, 사용하고, 삶의 방식에 맞게 재해석하는 소비자다. 전시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번 행사에서는 일반 관람을 넘어 능동적인 참여와 경험을 유도하는 부스들이 눈에 띄었다. 행사 기간 동안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곰표 부스가 대표적이다. 곰표는 타이포 브랜딩 전문가 그룹 ‘엉뚱상상’, 폰트 쇼핑 플랫폼 ‘폰코’와 함께 대규모 전시 공간을 기획했다. MZ세대 사이에서 레트로 열풍을 불러온 곰표 굿즈를 선보이는 한편, 부스 내 QR코드를 스캔해 곰표의 자체 개발 카메라 필터로 사진을 찍거나 캐릭터 ‘표곰이’와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참여형 이벤트로 교감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디자인하우스는 월간 〈디자인〉 524호 모션 포스터 특집에 수록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국내외 디자인 스튜디오들의 다양한 모션 포스터를 소개했다. 증강현실 플랫폼 아티바이브와 협업한 이 부스는 AR로 구현한 100베스테플라카테의 포스터와 2019년 아티바이브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워키 토키〉전의 작품을 선보였다. 또 한쪽 벽면에는 월간 〈디자인〉의 시그너처로 자리 잡은 ‘A to Z’ 일부를 관람객이 직접 큐레이션해 자신만의 사전을 만드는 이벤트도 마련했는데 지난해 겨울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이벤트의 후속탄이었다.
감성플랜의 전시 공간.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들을 사진으로 소개했다.
디자인하우스 전시 부스. 거치대를 사용해 모션 포스터를 전시했다.
설치미술, 공공 디자인,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부산의 디자인 스튜디오 감성플랜은 그동안의 디자인 작업을 소개했는데, 아크릴로 만든 이글루 안에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배열한 점이 흥미로웠다. 관람객들은 구조를 따라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작품을 감상해야 했다. 짧은 동선이지만, 눈으로 좇는 관람에 걷는 행위를 더해 경험의 영역을 넓혔다.
슬밋이 유리공예가 양유완과 협업해 제작한 인센스 홀더.
약진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올해 부산디자인위크는 남다른 디자인 감각을 지닌 디자인 스튜디오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이 돋보인 전시이기도 하다. 지난해 SDF 영 앰배서더로 선정된 슈퍼포지션은 신제품 라인을 최초 공개했다. 한국화 형식을 위트 있게 재해석한 그래픽 캐비닛, 병풍을 연상시키는 파티션 산SAN, 기존 소반 제품을 투명 아크릴 소재로 변경한 세리프 거치대까지, 한국적 디자인을 새로운 소재와 디자인으로 재구성한 제품들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전시장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라운지에 배치한 스튜디오 신유의 가구 ‘린 컬렉션LIN Collection’도 화제였다. 반복되는 선을 조형으로 표현하는 시그너처 가구를 활용한 라운지 전시 〈동시공존〉은 해양 폐기물인 폐어망을 활용해 폐기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넷 워크NET_WORK’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폐어망을 천장에 매달아 커다란 나무인 것처럼 연출했다.
스튜디오 신유의 라운지 전시 〈동시공존〉.
슈퍼포지션이 부산디자인위크에서 최초 공개한 그래픽 캐비닛.
지속 가능성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시도는 슈퍼루키 디자이너로 선정된 플라스틱 베이커리 서울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폐플라스틱을 업사이클링하는 ‘베이킹 스튜디오’로 와플, 타르트, 카늘레 같은 형태의 플라스틱 오브제를 선보이며 환경에 대한 관심을 크리에이티브하게 환기시켰다. 이 밖에 한국 여성과 소나무에서 영감받은 아우라 뷰티 브랜드를 표방하는 슬밋은 영감의 원천을 재해석해 전시장에 표현하듯 유리와 식물을 결합한 정원을 조성했다. 또 금속공예가 조유리, 유리공예가 양유완 등 한국 여성 공예가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다양한 소재의 인센스 홀더를 공개해 라이프스타일 분야에 새로운 디자인 브랜드의 등장을 알렸다. 경남 창원의 커파하우스는 디자이너의 감각으로 제작한 조립형 가구를 선보이는 브랜드인데, 동물과 한글 서체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가구가 돋보인다. 그중 궁서체를 본떠 만든 궁서 시리즈Gungsuh Series는 서체 특유의 곧고 단정한 형태를 닮아 테이블과 의자에서도 간결함이 느껴지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