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장소로 설명할 수 없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도시의 흔적을 글로 남긴 6명의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새벽 3시, 칼스바트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여행기 <이탈리아 기행>의 첫 문장처럼 도망치듯 여행을 떠난다. 고향인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바이마르에서 공직에 몸담았던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예술가로서 자아를 되찾는다. 베네치아, 로마, 시칠리아 등 이탈리아 전역을 약 20개월 동안 돌아다니며 본 자연과 예술 작품, 사회상에 영향을 받아 <파우스트>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등을 썼다.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미시시피강을 무대로 한 소년의 모험담을 그린 풍자소설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소문난 여행가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1860년대 유럽 각국과 팔레스타인 등을 도는 여행단에 참가해, 여행기를 신문에 연재하다가 이를 엮어 <철부지의 해외 여행기>란 책으로 출판했다. 이때 폭넓은 경험을 쌓은 일이 이후 그가 제국주의적인 정책과 차별을 비판하는 소설을 쓰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의 모험가다운 면모는 ‘물속 두 길’을 의미하는 필명 ‘마크 트웨인’에서도 느껴진다. 배가 지나가기 안전한 깊이를 뜻하는 고어로 배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그와 잘 어울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내란을 다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쿠바와 플로리다주에서의 낚시 경험을 토대로 한 <노인과 바다> 등 미국 현대 소설의 대표작을 탄생시킨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세계를 유랑하며 글을 썼다. 소설 외에 종군기자로 활동하거나 해외에서 체류할 때 쓴 에세이와 기사도 많은데, ‘예술가의 도시’이자 그가 소설가로서 유명세를 얻은 작품을 집필했던 파리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1920년대 그가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함께 드나들던 카페와 산책길 등의 사진도 담겼다.
르 클레지오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던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 Le Clezio. 그때 경험을 토대로 서울이 배경인 장편소설 <빛나>와 제주를 무대로 쓴 단편소설이 수록된 <폭풍우> 등을 발표했다.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외에도 멕시코, 파나마, 모로코, 태국 등을 떠도는 ‘유목민’ 같은 생활을 하며 그 도시의 환경과 사회에서 영감을 받은 소설을 쓴다. 프랑스 문학상인 르노도상을 수상한 소설 <조서>로 데뷔했으며 사하라사막의 삶을 담은 <사막>, 작고한 아버지가 아프리카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담은 자전적 소설 <아프리카인> 등에서 다양한 도시를 엿볼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중략)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유럽 각국을 떠돌았던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 <먼 북소리>에서 여행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3년 동안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장편소설 <상실의 시대>, <댄 스 댄스 댄스>를 집필해 발표하기도 했다. 작품을 탈고하면 여행을 떠난다는 그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여행기를 담은 <위스키 성지여행>, 잡지에 기고한 여행 에세이를 엮은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자신만의 여행법을 담은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등 다양한 여행 산문집을 발표했다. 그의 하드보일드한 문체와 독창적인 세계관이 담긴 소설은 여행을 통해 나왔음을 알 수 있다.
김영하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자신만의 여행을 즐기는 법을 보여주었던 소설가 김영하는 최근 연이어 여행 에세이 집 <여행의 이유>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출간했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여행의 이유>에서 이렇게 밝혔듯, 작가에게 여행은 삶 그 자체다. 대학시절부터 여행을 즐긴 그는 2007년 EBS <세계테마기행>을 통해 시칠리아를 다녀온 후,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아내와 함께 시칠리아, 밴쿠버, 뉴욕 등으로 2년 동안 떠돌며 살았다. 그 덕분에 데뷔 25년이 흐른 지금도 문단을 흔들었던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처럼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시선이 담긴 소설을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