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이라는 게 두부 자르듯 이편저편 나눌 수 없다. 국물이 자작할 땐 전골이다가 졸아들면 볶음이 되는 두루치기처럼.
‘글 쓰는 요리사’로 잘 알려진 박찬일 씨는 ‘로칸다 몽로’와 ‘광화문 국밥’의 주방장이자 해박한 지식과 단정한 문장으로 음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하는 음식 칼럼니스트다. 그 치열한 기록이 <노포의 장사법> <백년식당>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등으로 나왔다.
“이름을 불러줄 때 너는 꽃이 되었다”고 시인이 말했지만, 요리도 그렇다. 이름이 절반은 차지한다. 서서 먹지도 않으면서 ‘서서갈비’라고 하면 식욕부터 돋는다. 포장마차는 여러 불편함에도 운치를 즐기러 가는 이들로 기꺼이 만원이다. 그냥 회라고 하면 그저 그럴 것 같은 동해안의 잡어회도 ‘막회’라고 부르면 입맛이 동한다. 두루치기도 그런 요리인데, 딱히 두루치기가 무엇이냐는 논쟁이 인터넷에서 불붙곤 한다. 국물이 자작한 것이다, 매워야 두루치기다, 찌그러진 검은색 프라이팬에 줘야 두루치기다, 싸고 푸짐해야 진짜다, 돼지고기와 두부 말고는 진짜 두루치기가 아니다, 이런 말이 쏟아져 나왔다. 한겨울, 강원도 어느 장날에 먹은 두루치기가 생각난다. 특별한 솜씨도 아닌 것 같았는데, 연탄불 위에서 뒤적뒤적 아주머니가 만든 두루치기는 아주 맛이 좋았다. 조리법을 물으니, 아무거나 있는 대로 넣는다고 한다. 매운 고춧가루가 직접 농사지은 고추로 만든 거라 맛있을 거라고 덧붙인다. 나는 두루치기는 두부 두루치기를 제일 좋아하는데,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해준다고 해도 군말 없이 오케이다. 이상하게 두루치기는 메뉴판에 빠져 있더라도 해달라면 해준다. 서울에서 먼 곳일수록 그런 주문이 잘 먹힌다는 건 확실하다.
요즘이야 어느 식당이나 삼겹살이 있고, 벌겋게 양념해 조려내면 다 두루치기 아닌가. 양파 썰고 다시다 넣고 애호박이 있으면 그것도 들어간다. 요즘은 그냥 찌개만 살아남았지, 전골은 인기가 없는 것 같다. 낮고 넓은 법랑 냄비는 거의 전골용으로 샀다. 꽃무늬 있고, 유리 뚜껑이 딸려 있기도 한다. 강화유리로 만든 전골냄비가 나오기도 했는데, 미국산이 많았다. “미국 사람들은 유리로도 어찌 이렇게 안 깨지게 냄비를 잘 만든대?” 이런 엄마의 얘기를 들었다. 전골냄비는 시골 장터의 대폿집에서 간혹 본다. 집에서 쓸 일이 없어 들고 나온 게 틀림없어 보이는 그런 냄비에도 두루치기를 하면 좋다. 용적이 꽤 되는 전골용이라, 두루치기를 부탁하면 아주머니들은 꼭 이런 다짐을 받곤 했다. “국물은 넉넉하게? 응?” 아줌마, 그러면 그건 도로 전골이잖아요. 그리 대꾸는 안 했다. 아줌마는 최선의 심정이었을 테니까. 그저 “허허, 좋지요. 아휴 적당히요.” 그렇게 답하는 게 맞다.
아줌마는 삼겹살을 좀 썰고, 고추장에 ‘화한’ 향이 좋은 고춧가루 풀고 마늘 잔뜩 넣어 양념장을 갠다. 삼겹살에 그 양념이 푹 배어 소주 맛을 살려주길 바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양파나 툭툭 썰어 넣고 파 뿌리고 쌀뜨물 부어서 스테인리스 원탁에 앉은 내게 브루스타 켜서 내준다. 삼겹살이 익으면서 기름을 김치에 주고, 김치는 양념을 고기에 주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맛이 든다. 그러다가 졸아든다. 국물 있을 때는 떠먹고 졸아들면 볶음이 된다. 전골도 볶음도 아닌 것이 두루치기가 아니라, 둘 다 있는 것이 두루치기가 아닐까. 세상일이 딱 두부 자르듯 갈라 세우지 못할 때가 많다. 너는 저편, 나는 이편, 이렇게 나누고 사는 이 세상이 뭔가 두루치기만도 못한 것일 테지. 싸워서 말도 하기 싫은 친구랑 두루치기를 앞에 놓고 앉았다. 결국 뻔한 일이었고, 사과나 화해 같은 건 안 하고 그저 말없이 두루치기를 먹었다. 남우세스럽게 어깨동무라도 하고 사과의 술잔을 나누는 건 못 한다. 다 풀렸다.
술안주로 먹기 좋게 몇 가지 꾀를 내어 삼겹살을 볶았다. 이건 두루치기도 아니고, 전골도 아니다. 그냥 조림식 구이다. 물론 레시피를 보고, 육수나 쌀뜨물, 아니면 그냥 물을 넣어 조리듯 끓이면 아마도 짜글이가 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이 짧은 글에 같은 재료로 다섯 가지 요리가 뒤섞여 있다. 전골, 짜글이, 볶음, 두루치기. 조림. 뭐라도 좋다.
삼겹살엿장구이
재료(2인분) 삼겹살(구이용) 300g, 더덕 50g
양념장_ 복숭아 ½개, 흑설탕 15g, 진간장 15g 참기름 5g, 식초 5g, 맛술 10g, 고운 고춧가루 10g, 마늘 20g, 조청엿 50g, 양파 간 것 50g, 고추장 50g, 생강·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삼겹살은 양념이 잘 배도록 과도로 구멍을 숭숭 뚫어서 한 입 크기로 자른다.
2 더덕은 두들긴 후 기름을 발라 석쇠에살짝 굽는다.
3 복숭아는 껍질을 벗겨 과육을 자르고, 나머지 양념장 재료와 함께 믹서에 넣고 간다.
4 ③의 양념장에 삼겹살과 더덕을 넣어 잘 주물러 섞고, 냉장고에 4시간 정도 둔다.
5 ④를 두툼한 팬이나 냄비에 굽는다(주물 냄비가 기름이 밖으로 안 튀고 잘 볶인다).
6 ⑤가 다 익으면 그 위에 송송 썬 파를 뿌려도 좋다. 싸운 친구랑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