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 모양 입구에서 초대장을 보여준 뒤 입장한 홀에는 미러볼과 크리스털 조명이 빛나고, 원탁과 빨간 벨벳 소파가 곳곳에 놓여 있다.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은 입맛에 맞는 와인, 샴페인, 칵테일 잔을 손에 쥐고 삼삼오오 짝이 됐다가 헤어지길 반복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 내용에는 세상만사가 다 들어 있다. 주식과 암호 화폐 등으로 돈 잘 버는 방법, 지식 자랑, 철학적 포즈, 괜찮은 성형술, 연예인 뒷얘기까지. 건배와 웃음소리가 이어지는 와중에 다른 사람의 등만 쳐다보거나 구석에서 쭈뼛거리는 이들도 있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 같지만 사실은 ‘클럽하우스’ 얘기다. 요즘 디지털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음성 기반 SNS 앱. 물론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클럽하우스 앱을 현실로 불러들이면 그럴 수 있다는 묘사일 뿐. 지난해 4월, ‘전문가와 일반인이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해법을 찾는 소셜 서비스’라며 등장한 클럽하우스의 현재를 점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앱을 내놓고 한 달이 지날 때까지 사용자가 고작 1천5백 명에 불과했으니까. 아이폰 가입자만 쓸 수 있고, 텍스트와 사진 대신 음성만 사용할 수 있으며, 그마저도 초대받은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는 폐쇄적 채팅 시스템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최근의 누적 다운로드 숫자는 광폭 행보라는 단어가 딱 들어맞는다.
전 세계적으로 1천만 다운로드를 넘어섰고, 한국의 경우 30만을 훌쩍 넘겼다. 1년 만에 10억 달러 가치의 앱으로 둔갑하는 과정에 기폭제는 있었다. 지난 2월, ‘인간계의 바이러스 밈’이라는 별명이 붙은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클럽하우스에 등장한 뒤 말 그대로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 그가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게 초대장을 보냈다는 얘기와 함께, 페이스북의 수장인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해 지구 최고의 유명 인사들이 클럽하우스를 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행간에 한국의 유명 기업 CEO가 개설한 채팅방에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는 뉴스도 끼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상황에 지친 사람들에게 ‘목소리의 위안’을 안겨주는 힐링 앱이라는 후한 평가까지 더해지면서 지금 클럽하우스에서는 기발한 주제의 방이 수없이 열렸다 닫히는 중이다.
CEO와 연예인, IT · 스타트업 관계자 등 다양한 전문가가 사회자로 나서는 정보공유방, 예능 콘텐츠를 옮겨온 듯한 성모사방과 노래방, 상황극을 펼치는 ‘부캐’ 놀이방 등에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천 명이 모여 대화를 나눈다. 평가는 나뉜다. 누군가는 “새로운 이커머스 시장 창출의 기회와 집단 지성의 힘의 원천”이라는 낙관적 의견을 달고, 누군가는 ‘살롱형’과 ‘광장형’이라는 양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전문가와 실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정보 격차를 줄이는 앱”, 모두들 영상과 이미지에 목을 매는 시대에 “음성에 집중한 일회성의 묘미를 살린 신선한 앱”이라며 별 네 개를 주는 사람도 있다. 반면 “어차피 이름만 바뀐 콘퍼런스 콜일 뿐”, “낯간지러운 캠프파이어 분위기를 연출하는 앱”이라는 박한 경험담과 이베이·당근마켓에서 초대권까지 거래되는 걸 비꼬는 “디지털 시대의 멤버십 요트 클럽”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 와중에 귀를 솔깃하게 하는 지적은 이런 것이다. “이제 고작 1년짜리 채팅 앱이라는데, 최초의 가치는 온데간데 없이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과 서둘러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 팔기 위한 사람만 꼬이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불쑥 얼마전 읽은 신문 칼럼 제목이 떠올랐다. ‘말하고 듣기의 공중보건’.
문일완은 <바자> <GQ> <루엘> <엘라서울> 등 독자층이 제각각인 패션 잡지, 남성 잡지,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넘나드는 바람에 무규칙한 문법이 몸에 밴 전직 잡지쟁이다. 그래픽 노블을 모으고 읽는 것, 아무 골목길이나 들어가 기웃거리는 게 요즘 취미 생활. 칼럼니스트로 여러 지면에 글을 쓰느라 끙끙대고, 사춘기 코스프레 중인 딸과 아웅다웅하며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