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간판 아나운서로 활약하다 퇴사를 결심한 때가 6년 전. 구멍 같은 그 시간에 꽉 찬 스트라이크 볼처럼 들어온 것이 예술. 유튜브를 개설해 자비로 예술가를 인터뷰하고, 아트선재센터 도슨트학교 프로그램을 수료한 그녀는 지난봄, 벨기에 대사 관저가 있던 자리에 아트 하우스이자 복합 문화 공간인 ‘평창동일번지’를 개관했다. 눈부신 이정표지만 더 순수하게 빛나는 건 일과 삶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다.

평창동일번지 메인 전시 공간에 선 오유경 아나운서. 일과 삶의 콘텐츠에 늘 높은 시선을 적용하는 그녀는 미술관에 버금 가는 개인 방송국이자 스튜디오를 갖게 됐다.
이 기사를 준비하며 그녀의 책 <어른 연습>을 읽다가 몇 번을 감응했는지 모른다. 밑줄을 긋고 귀를 접은 페이지가 두세 장에 한 장꼴이었다. 예전부터 에세이는 고백할 수 있는 자의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거기에 한 가지 조건이 더 붙었다. 열심히 살아낸 사람의 것. 이런저런 고민과 노력, 방황과 성장의 서사가 마음에 작은 불씨를 계속 떨어뜨리며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했다.
평창동일번지에서 오유경 대표를 인터뷰하고, 잠시 그녀의 남편이자 미생물과 세균학의 권위자인 천종식 박사와 일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 끝에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그는 아내인 오유경 대표를 “많이 성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방송국에서 <생로병사의 비밀>을 진행할 때는 고혈압이며 당뇨병처럼 그 회차의 주제와 관련된 책을 밤새 읽어냈다고. 그러니 일 외에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KBS 퇴사 후 그녀가 가장 공들인 시간은 나의 기호와 취향을 발견하는 것. 약속의 땅에 현대미술이 묵직하게 들어왔고, 바야흐로 그녀는 컬렉터이자 도슨트, 갤러리스트가 되었다. 벽에 걸린 작품은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화’.
방송국에 입사할 때부터 그녀의 목표는 확고했다. “나이 마흔에는 오프라 윈프리 같은 최고의 진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당대의 간판 아나운서이던 손석희·정관용처럼 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해 정치를 공부했고, 몇 년 뒤 <생방송 시사투나잇> 앵커로 발탁됐다. 그녀 스스로 제작진의 신뢰와 젊은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고 했으니 그 활약이 얼마나 확실했는지는 생략. 그렇게 자기 가치를 높은 곳에 두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나이 50이 되던 해에 25년간의 직장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연공서열이 확실한 조직, 정년퇴직도 보장된 직장이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큰 포부를 갖고 시작했는데 무작정 기다린다고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성취도 분명 있었지만 거기까지는(애초에 계획한 곳까지는) 아니었던 거죠. 50부터는 인생 3막이고 그 구간을 잘 살아내고 싶어 결단을 내렸습니다.”
인간 오유경 탐구에서 시작된 6년간의 여정
퇴사 후 그녀가 가장 먼저 깨달은 건 아나운서 오유경이 아닌 인간 오유경의 내용적 부재였다.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집에 들여놓고 싶은 건 무엇인지 아리송했다. 공부하는 인간 오유경은 공부로 그 답을 찾았다. “<아티스트 웨이>란 책이 있어요.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인 줄리아 캐머런이 쓴 책인데, 내 안의 창조성을 회복해준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어요. 저자가 강조하는 건 두 가지예요. 첫째, 아침에 눈뜨자마자 떠오르는 생각을 세 페이지씩 쓸 것. 둘째, 일주일에 한 번은 ‘아티스트 데이’라 정해놓고 평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두 시간을 보낼 것. 회사에 다닐 때 나를 위한 시간은 생략되기 일쑤였어요. 매일 밤 생방송을 진행할 때는 퇴근길 인사가 ‘잠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였지요.” 그녀는 이 책을 네 번 읽었고, 책에서 시키는 대로 12주 동안 매주 실행 과제를 꼬박꼬박 이행하며(그것도 반복해서) 긴 호흡으로 인간 오유경을 찾아나갔다. ‘숙제’를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생겼고, 그때마다 그녀는 평생 학교 수험생처럼 또 노력을 했다. 재즈 가수에게 노래를 배우고,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따고,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쓰고, 요리를 배우며 바야흐로 취미 부자가 되었다.

갤러리 한쪽에 있는 집무실에서. 처음부터 미술계에 있던 사람은 아니지만, 새롭고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
가장 꽉 찬 밀도로 들어온 것은 예술이었다. “‘코리아 투마로우’라는 아트 페어가 있었어요. 신진 작가 중 유망한 이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무대였지요. 동시대 이야기라는 공감대가 있어서인지 매력적으로 와닿는 작품이 많았어요. 그러다 ‘인생 작품’을 만났지요. 평창동일번지 개관전으로 소개하고 있는 이경미 작가의 그림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림의 주인공은 ‘나나’라는 이름의 고양이인데, 우주복을 입고 있으며 그 뒤로 이탈리아 베네치아 풍경이 펼쳐져요. 앞에는 그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들이 쌓여 있고요. 고양이 나나가 꼭 저 같았어요. 우주복을 입은 그녀에게 베네치아라는 도시가 낯설게 다가왔을 텐데, 당시 40대 중반이던 제게도 세상이 어느 순간 이질적이고 이해 불가하게 느껴졌거든요. 이방인이자 외계인 같다고 느꼈지요. 그렇게 그림 속 고양이와 ‘도킹’한 채로 작품을 구입했고, 예술의 힘에 눈뜨게 됐어요. 매일 보는데 매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해졌어요. 음악이 내 마음을 매만져준다면 미술은 내 머리를 환기해줘요. 어딘가 초현실적 느낌이 있는 이경미 작가의 그림처럼 틀에 갇힌 나를 깨부숴주지요. 계속해서 기존 질서를 깨는 것, 이것이 동시대 미술이고 포스트모던입니다.” 계속되는 그녀의 말. “예전에는 미술에 사조가 있었지요.

집과 스튜디오 모두 이성범 건축가와 함께. 반려묘들을 위한 공간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다.

파사드가 곡선인 덕분에 내부 벽면도 둥그렇다. 효율은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결과까지 마이너스인 것은 아니다. 공간은 각자의 고유하고 감성적 영역이기에.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모더니즘 같은 것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사조가 없어요. 작가 개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요. 이것이 이 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작가를 인터뷰하는 겁니다.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어쩌면 유일한 길이지요. 그렇게 작가가 있는 곳으로 가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꿈이 생기는 거예요. ‘작가분들을 모셔 이야기를 듣는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다.’ 그 후부터 땅을 정말 많이 보러 다녔어요. 서울과 서울 근교는 물론 양평과 제주도까지. 하루는 부동산에서 ‘평창동은 어떠냐?’고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평창동에 온 날은 유독 화창했지요. 토탈미술관 앞에 있는 카페에 앉아 더위를 식히며 마을을 바라보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북한산은 한라산처럼 용맹하고요. ‘그래, 평창동에서 구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랜드피아노와 우고 론디노네의 그림이 있는 다이닝룸. 낮게 낸 창문으로 초록 마을버스가 지나가면 이곳이 평창동 고지임이 실감 난다.
돈 되는 강남이 아닌 평창동을 선택한 이유는 찬찬히 되새겨볼 만한다. <어른 연습>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한마디로 대답하자면 ‘럭셔리’보다 ‘풍요로움’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에서 매일 아침 백두대간만큼이나 웅장한 북한산의 산세를 바라보고, 뻥 뚫린 하늘과 별을 바라보고, 신선한 숲 향기와 지저귀는 새소리를 즐기고, 정원에서 계절마다 다른 나무와 꽃을 가꿀 수 있는 삶. 또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집이야말로 가장 럭셔리한 삶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행복을 주는 가치는 시장가격과는 다르다. 1만 원짜리는 1만 원어치의 기쁨을 주고, 100만 원짜리는 100만 원어치의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얼마인지는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그 제품이나 서비스가 삶에 주는 가치가 얼마인지는 저마다의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

자택 1층 내부. 긴 복도를 따라 욕실과 안방을 차례로 배치했다. 욕실을 지나 안방으로 가는 동선이 꽤 신선하다. 방에 들어가기 전 씻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이성범 건축가가 설계한 평창동일번지의 면면은 화려하다. 집과 스튜디오가 있는 땅을 합하면 약 3백30평. 전시와 토크, 공연과 강의를 진행하는 스튜디오 2층에 서면 통창으로 북한산과 북악산, 인왕산과 안산, 저 멀리 관악산까지 산 다섯 개가 가깝고도 아득하게 펼쳐진다. 프라이빗 갤러리라지만 미술관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위용이 넘친다. 1층에는 초대형 LED 스크린을 설치해 미디어 아트도 소개할 수 있다. 동선은 집으로 이어진다. 그루앳홈 박소현 정원 디자이너가 계획한 정원을 지나면 박공지붕의 아티스트 레지던스가 별서처럼 자리하고, 그 너머로 벽돌 표면을 일일이 깎아 둥근 곡선으로 파사드를 만든 이층집이 보인다. 집 안에서 바깥을 보면 가깝게는 아름다운 정원이, 멀게는 입체적인 서울의 얼굴이 거대한 보자기처럼 펼쳐진다. 서울이라는 오래된 이야기가 생생하고도 풍요롭게 펼쳐지는 느낌이다. 주체적으로 가꾸는 인생 3막을 위해 정년이 보장된 방송국을 스스로 떠난 오유경은 지난 6월 13일 이곳의 문을 활짝 열었다.

완만하게 구부러진 거대한 활 같은 벽면. 곡률을 일일이 계산해 철판을 디자인하고 설치했다. 비용은 배가 들었지만 곡선 특유의 풍성함이 있다.

미생물과 세균학의 권위자인 천종식 박사의 작은 스튜디오. 아내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한 그는 오유경TV의 영상 편집과 사진 촬영을 도맡아 한다.
평창동일번지는 방송국처럼 돌아간다. 오랜 준비를 거쳐 전시가 열리고, 살롱 토크와 인문학 강의, 향기 수업과 클래식 음악 연주가 따라붙는다. 9월 5일까지 열리는 이경미 작가의 전시 <다시 내게로 오는 길>은 전작 도록처럼 그녀에게 중요한 좌표와 작품을 모두 소개하고, 오유경 대표가 직접 중간중간 약속처럼 작품 해설을 진행한다. 성실한 사람에게서 나온 성실한 기획이고 성실한 프로그램이다. “제겐 성공이 아니라 내적 성장이 중요해요.

자택 앞, 너른 정원에 자리한 모던 오두막. 함께하는 아티스트를 위한 공간으로, 후원을 온전히 홀로 누릴 수 있게 디자인했다.

오두막 내부. 천연 슬레이트로 마감한 박공 지붕 구조가 그윽하면서도 강렬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KBS를 그만두면서 제 영향력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했어요. 옛날 생각에 갇혀 있었다면 아무것도 못 했을 거예요. 아트선재센터에서 도슨트 수업을 듣지도 않았겠지요. 모든 것이 걸음마 같았습니다. 하지만 60~75세(그녀가 생각하는 인생 3막의 구간이다)까지의 삶을 설계하는 데 준비 기간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눈도 처음 뭉쳐 굴릴 때는 속도가 더디지만, 한번 뭉쳐지기 시작하면 커지고 단단해지듯 부단히 구르다 보면 언젠가 제가 지나온 세월이 어떤 화력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 몫의 목걸이를 꿰어나가고 싶어요.”

그녀의 집무실 한쪽. 저 의자에 앉아 틈틈이 풀어지는 시간이 더 큰 효율로 돌아온다.

장충동 국립극장 못지않은 힘과 박력을 자랑하는 건축 너머로 편안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담백하게 펼쳐진다. 조경은 그루앳홈 박소현 대표가 맡았다.
다시 그녀의 책 <어른 연습>을 들춘다. 그녀 스스로를 항한 높은 기대치가 행간에 깔려 있다. 그녀를 움직이는 건 그 순수하게 높고 뜨거운 마음의 시선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