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의 어긋난 건물 배치에서, 병산서원 만대루의 굽은 대들보에서만 ‘막’의 미학을 찾으라고 했다면 인터뷰 내내 힘들 뻔했다. 대신 그는 황학동 시장의 사발로, 경상도 상주의 흙집 편마루로, 단청 안료의 풍경화로 ‘막’을 이야기했다. 다 듣고 나니 ‘막’은 뭇 존재에 대한 예의임을 알겠다.

그의 서촌 작업실에는 한 층 대부분을 회화 작업에 할애한 공간이 있다. 그 벽에 설치된 작품이 ‘막’ 회화. 몸 전체의 리듬과 즉흥 에너지가 부딪치며 만들어낸 그림이다. 바닥에 있는 그림은 흙가루 안료와 한국 단청 재료인 돌가루 안료가 캔버스를 따라 흐르고 굽이치는 ‘숲’ 연작.
7월은 새 둥지가 사라지는 계절. 무성한 나무들이 새들의 집을 감추었다. 덕분에 새들은 뜨거운 여름볕에 차양을 얻었다. 갓 태어난 새끼들의 위장막도 생겼다. 뭇 생명은 저마다 따로 집 짓고 사는 것 같지만, 본래 세상에서 가장 큰 집宇宙의 한집안 식구인 것이다.
얼마 전 런던 코로넷 극장에서 열린 조병수의 전시 <땅의 일들: 숲, 분단된 땅, 막(Earth Works: Forest, Earth Divided, Mahk)>(5월 29일~6월 6일)에는 ‘나눠진 땅(Land Divided)’이란 작품이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대형 판 위에 흙이 쌓이고 붉은 조명이 쏟아지는데, 그 판은 두 덩어리로 나뉘어 있었다. ‘공유의 토대이던 땅이 어떻게 갈등의 영토가 되는가’를 묻는 설치 작품이었다. 2025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전시 <누구도 땅을 소유하지 않는다: 땅, 숲, 막(Nobody Owns the land: Earth, Forest, Mark)>에서는 붉은 흙을 쌓은 구조물 위를 맨발로 걷거나 눕고, 하늘을 바라보게 했다. “누구도 땅을 소유하지 않지만 모두가 함께 살아간다.” 이는 단순히 평화, 반전 등의 메시지를 담은 게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대지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해온 건축가가 던진 질문이다. “인간과 땅 사이에서 건축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 인터뷰에 꽤 긴 시간을 들인 나는 이것이 단지 건축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님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는 그걸 ‘막’으로 호명했다.

그가 설계한 땅집. 이름처럼 땅 밑으로 파고들어가 그 바닥에 집을 앉혔다. 사진 황우섭
스무 살 무렵, 몬태나 주립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그는 여름방학 때 잠시 한국에 나왔다. 황학동 중고품 시장 골목을 걷다가 시선을 단번에 붙드는 사발 하나를 발견했다. 흙빛을 고스란히 머금은, 자연스럽게 울퉁불퉁한 사발이었다. 그 불균질함 속에서 오히려 묘한 균형이 느껴졌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서구 모더니즘 건축의 너무나 정확한 직선, 너무나 친절하게 계획된 공간들 속에서 공허함을 느끼던 때였다. 돈이 없어 내일을 기약한 그 사발은 결국 그의 손에 들어오지 못했다. 몇 해 뒤 하버드 대학원 시절, 헌책방의 책 사이에서 그토록 찾던 사발과 닮은 그릇 사진을 보았다. 미국에서 발간된 그 책에는 ‘이씨 조선의 사발’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막사발이었다.

5월 29일부터 6월 6일까지 런던 코로넷 극장에서 개최한 전시 〈땅의 일들: 숲, 분단된 땅, 막〉의 ‘나눠진 땅’. 인간의 몸 아래라는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나 들어 올려진 땅은 관찰의 대상이 된다. 그는 여기에서 땅의 취약성과 영속성을 읽어냈다.
“빠르게 말아 올린 도공의 손길, 손자국이 남은 듯한 표면, 굳이 균형을 맞추려 애쓰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비대칭…. 그 순간 깨달았어요. 내가 그토록 그리워한 것은 완벽하게 다듬은 형태가 아니었다는 것을요. 채우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품은 그 그릇 같은 거였습니다. 손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불완전함, 비어 있지만 텅 비지 않은 공간….”
감 좋은 분도 여기까지만 읽고는 대지와 인간의 관계, 조병수의 건축, 그리고 ‘막’을 연결해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건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있다. 인간의 삶이란, 세계란 참으로 기묘한 네트워크,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인드라망임을 아는 분이라면 이 연결이 곧 이해될 것이다.

작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때 개최한 개인전 〈누구도 땅을 소유하지 않는다: 땅, 숲, 막〉 중 ‘숲’ 설치 작품. 우리가 사는 행성으로서 지구, 흙으로서 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킨다. 관람객은 흙 위를 걷고 누우며 고향을, 그리고 미래를 성찰했다.
‘막’은 미적 통일성이 아닌 각각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중략) ‘막’의 작품들은 얼핏 볼 때는 인상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그들의 목적은 이를 지켜보는 관객을 감동시키는 게 아니다. 창작의 작업 안에 있는 예술가와 장인의 창조적 행위이다. 그리고 일단 완성되면 그것으로 가장 훌륭한 쓰임이 되는 것이다. _디자인하우스 50주년 ‘막’ 기고문 중
막사발 같은 집을 지으며
나는 문득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다. 대수롭잖은 호기심으로 물은 것인데, 결국 조병수 건축 미학의 진앙지를 건드리고 말았다.

<땅의 일들: 숲, 분단된 땅, 막> 전시 중 ‘숲’ 회화 연작. 관람객이 공간을 이동하는 동작, 작품 사이의 간격, 빛과 재료 사이의 관계 등 ‘경험과 인식’을 통해 예술은 확장된다.
“저는 흙마당과 밭에서 흙을 만지며 자란 마지막 세대일지도 몰라요. 한국전쟁 끝나고 4년밖에 안 지나 태어났으니까요. 방학 때면 부모님 고향인 경북 상주의, 전기도 없던 깡촌에 내려가 살았고요. 늘상 보던 흙집, 편마루 같은 게 거의 막사발 같아요. 어릴 적 살던 개량 한옥의 기억도 있네요. 마당에서 대야에 찬물 받아 세수하던 싸한 감각, 방 안으로 스미던 외풍, 해 질 녘 마루에 앉아 맞던 바람. 그런 불편함은 몸이 계절을 직접 통과하며 느끼는 세계였죠.”
그런 그가 모더니즘 건축을 배우러 미국에 갔고, 처음 깊이 접한 건축가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였던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그에겐 “그냥… 딱딱해”라는 말, 직감에 가까운 이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건축이었다. “너무 완벽하게 닫혀 있는 세계”였다. 그런 그에게 막사발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그가 빚은 막사발. “가장자리에 흙물이 이슬처럼 맺힌 흔적이 있어요. 틀에 흙물을 붓고 굳히다가 뒤집었을 때 흘러내린 것을 그대로 두어서 생겨난 거죠. 대부분은 이 부분을 매끄럽게 다듬어냅니다. 하지만 이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여기고 즐기는 것에 한국의 미학이 있습니다.”
그 심성과 그 직감은 하버드 대학원에서 학문의 언어를 만났다. <경험과 인식>이라는 석사 논문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서양 문명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정의하려 하기에 놓치고 있는 편안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경험적이고 촉각적인 ‘막의 미’가 그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건축 언어로 체계화한 논문이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막사발 사진을 넣었다. 담당 교수 중 한 명이 비웃듯 여긴 그 작업은 결과적으로 “심사위원들이 세 시간 반 동안 토론했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다른 맥락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서양의 건축 담론 한가운데서 낯선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1994년 한국에 돌아온 그가 설계한 유수의 건축 프로젝트 중에는 ㅁ자집, 땅집, 꺾인 지붕집, 명상집, 지평집 등 특히 집이 많다. 막의 미에 대한 그의 생각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 작업이다. 그러고 보니 20여 년 전, ㅁ자집을 취재한 기억이 있다. 가로세로 13.4m의 정사각형 집에는 외부로 뚫린 창 하나 없지만, ㅁ자 한가운데 뚫린 중정으로 환한 하늘이 가득했다. 땅속으로 박힌 사과 상자 같은 집이었다. 땅집은 말 그대로 땅을 파고들어가 하늘을 바라보는 집이요, 지평집은 집의 70%가 땅에 묻혀 바다를 더 푸근하게 바라보는 집이다. 그리고 얼마 전 착공했다는 인온INON 미술관 이야기도 해야 한다. 그는 강원도 산속의 능선과 습지를 건드리지 않고, 땅의 생김새에 건물의 크기와 용도를 맞춰가며 복합 문화 공간을 설계했다. “지어놓고 나면 건물 잘 설계했다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땅이 참 좋다고 하는 사람은 많을 거다”라며 겸양한다. 그가 설계한 집들이 한 줄기로 엮이는가?

서촌 작업실의 조용하게 분주한 사물이 그의 일상을 상상하게 한다.
“그동안 건축설계와 함께 포럼, 글쓰기를 더하면서 막이라는 개념의 뿌리를 되짚어보게 되었죠. 막은 한반도의 풍토에서 나온 고유한 미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산세가 거칠고, 날씨는 춥거나 덥고, 화강암이 많아 나무도 곧게 자라지 못하고, 이런 척박한 환경 탓에 막의 정서가 생긴 게 아닐까요. 한반도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이 땅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인정하고, 우연에 적응해간 것. 이게 막의 미일 것입니다. 덜 채워진 채로 완성된 미학이라고 할까요? 막사발만 그런 게 아닙니다. 달항아리든, 분청사기든 만드는 과정과 물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완벽한 대칭을 위해 없애거나 숨기려 하지 않은 채로 끝맺습니다. 비교하자면 일본의 ‘와비사비’는 완벽하게 모든 걸 만든 다음 약간 비틀어놓아요. ‘작가의 의도로 채운 정적 상태’입니다. 막은 완벽하게 정제되기 전에 그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하는, 정말 조금 덜 채운 시점에서 손을 떼는 상태죠. 주어진 상황과 재료의 물성 등을 더 솔직 담백하게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 겁니다. 단지 미학이 아니라 심성, 정서, 태도라 불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죠.”
말하자면 막은 being(존재)이 아니라 becoming(생성)의 미학인 것이다. 그가 지은 집의 기둥이 왜 일렬종대하지 않는지, 땅의 생김새에 순하게 응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시답잖은 앎의 기교가 없는, 흙의 기를 그대로 빨아들인, 그의 스무 살 무렵 막사발 같은 집인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대지에 대한 예의’가 담겨 있다.
막, 막연하면서도 고상한 품위
물리학에서 보면 사물은 다 고유한 진동이 있고, 고유한 입자가 있다. 그래서 세상 만물은 제각각 귀하다. 그런 만물이 모여 우주가 된다. 우주라는 하나의 거대한 진동, 거대한 춤이 아름다운 이유다. 내가 서두에서 새 둥지와 나무 이야기를 꺼낸 까닭도 이것이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별것인 나, 우리가 이 세계의 유일한 주역이다. 그리고 또 다른 유일자들의 배후다. 건축가 조병수가 최근 회화로, 설치 작품으로, 도예로 구현하는 세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제 결대로 존재하는 것들이 함께 만드는 균형.
“붓을 돌리면서 우연성 같은 걸 찾아내보려고 해요. 흘러내리면서 이 그림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리는 거죠. 즉흥이지만 순간적으로 어떻게 하고 싶다는 게 있어요. 의도가 있는 즉흥입니다.” 한지에 먹으로 그린 ‘막’ 회화, 단청 석채(뇌록, 석록, 석간주)로 그린 ‘숲’ 연작 회화가 그러하다.
“막사발 작업도 좀 하는데요, 틀에 흙물을 붓고 굳히다가 뒤집었을 때 흘러내린 것을 그대로 둬요. 가장자리에 흙물이 이슬처럼 맺힌 흔적이 생기죠. 대부분 이걸 매끄럽게 다듬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자체로 아름답게 보고 즐기는 것에 한국의 미학이 있다고 생각해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편안하고 거슬림 없이 바라보는 태도, 바로 막의 정서죠.” 그가 찾아낸 막의 미는 ‘비움’과 자연스레 연결된다.

그가 설계한 거제 지평집. 땅의 벌어진 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와야 무언가 있다는 기미를 느낄 정도로 땅의 흐름대로 지붕선을 만들었다.
“막은 고도로 숙련된 장인이 ‘비움’에 가까운 무념의 상태에 몸을 맡겨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경직성을 깨고 실용적 편안함으로 욕심을 비우는 정신이죠. 막과 비움은 이렇게 위대한 예술에 도달하게 하는, 막연하면서도 고상한 품위입니다.”
그렇다. ‘막연하면서도 고상한’이라는 데 막의 또 다른 특질이 담겨 있다. 막사발, 막걸리, 막김치, 막춤의 의미를 그저 ‘대강’ ‘마구’ ‘즉흥적’ ‘갓’ 등으로 퉁치려던 게으른 뇌가 부끄러운 순간이다.
“사실 전시, 도예, 글쓰기는 건축으로 다 담지 못하는 생각을 각각 다른 밀도로 풀어보는 과정입니다. 런던 전시 <땅의 일들>이 그러합니다. 한국 단청 안료 그림이 겹겹이 쌓인 ‘숲’ 연작, ‘막’ 회화, ‘나눠진 땅’ 설치…. 수억 년간 다른 시공간에 머물던 태고의 입자들이 산업 시대의 건축물(1898년 개관) 안에서 하나로 섞이게 두었어요. 본래 땅은 경계가 없으며, 인간은 그 위에서 온전히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죠.”
이래서 건축가를 만나면 한 50년 치 공부를 한꺼번에 한 느낌이 들곤 한다. 세상의 비밀을 푸는 자신만의 암호를 찾으려 평생 자기만의 도서관을 지어 올린 이들이므로. 막 이야기 하나로 이렇게 세계를, 역사를, 예술을 종횡할 줄이야.
진짜는 그 자연 속에 다 있고
“4백50년 전, 한국의 막사발 하나가 일본으로 건너가 센노 리큐의 손에서 다도가 되고 와비사비가 되어 세계 미학으로 자리 잡았어요. 이제는 막이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를 차례입니다. 인간적이며 지속 가능한 미적 가치인 막이 세계 각 지역에서 받아들여지고, 그들 나름의 막으로 발전하길 기대해요.”
작년 밀라노 전시에서 팔라초 리타의 붉은 흙 위에 누웠을 때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흙에 등을 대는 순간, 각자 어릴 때 누운 언덕을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라고. 막사발 하나에서 시작된 40년의 탐구가 결국은 그 자리, 그 순간으로 집결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막이라고 얘기해봐야 나중에 남아 있겠어요? 그냥 우리가 살면서 재미로 만들어낸 것이지. 결국 땅만 그냥 지구에 남는 거죠. 진짜는 그 자연 속에 다 있고….”
저 말줄임표 안에 모든 게 담겼다. 나의 장광설을 이쯤에서 멈춰야 하는 이유다. 그게 ‘막’이다.
막사발, 막걸리, 막국수, 막춤…
접두사 ‘막’에는 서툴고 투박하지만 일단 해보는 한국인의 기질과 태도, 정신, 용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기질이 어떤 감각과 만날 때 남다른 디자인과 예술로 확장되고, 벤처 정신이 돋아납니다. ‘막, 크리에이티브!’를 디자인하우스의 50주년 기념 문화 캠페인으로 삼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