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뿐 아니라 내면의 태도까지 돌아보게 하는 컬렉션으로 세상에 화두를 던지는 패션 디자이너 김지수·홍우성 씨 부부. 두 사람의 영감은 서로 다른 미감이 자유롭게 충돌하고 뒤섞이는 그들의 37평 빌라에서부터 시작된다.

홍우성·김지수 대표 부부. 영국에서 패션을 공부하다 만난 두 사람은 지금은 부부가 되어 각자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감각적 드레이핑과 비대칭 실루엣, 상반된 질감으로 새로운 여성성을 정의하는 김지수 대표, 클래식 슈트와 캐주얼,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룩으로 익숙한 스타일에 전환점을 던지는 홍우성 대표. 두 사람은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K-패션의 내일을 이끌어갈 기대주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영국에서 패션을 공부하다 만난 후 부부가 된 그들은 취향도, 스타일도, 성향도 정반대였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디자인을 한다는 점. 이는 두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했다.

두 디자이너의 집에는 스피커를 매입한 수납장, 스테인리스 스틸 도어, 유리블록 등 일반적이지 않은 집의 요소들이 가득하다.
이름이 브랜드가 되기까지
김지수 대표는 영국에서 패션을 공부하던 시절, 처음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계기는 한 프로젝트였다. “학기 중에 뮤즈를 선정해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매치된 뮤즈가 아티스트이자 작가인 레바 메이버리Reba Maybury였어요. 남성을 매체로 삼고 전위적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여성의 몸을 소비 대상으로 삼아온 기존 시선을 전복시키는 작업으로 알려진 인물이었죠. 그분을 알게 되면서 여자다움을 드러내는 일이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작업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당당함, 그 태도가 너무나 멋졌어요. 그때까지 저는 한국의 제도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평범하게 자란 어른이었는데 말이죠.”

거실에 있는 여러 개의 버섯 오브제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피시즈(PCS)의 세라믹 작업. 홍우성 대표가 카페에서 보고 한눈에 반해 구입했다.

거실의 타공 조명과 달리 안방 조명은 얇고 긴 틈을 내고 그 틈으로 빛이 슬릿하게 새어나오도록 디자인했다.
그때의 경험은 자신의 브랜드 ‘킴지수’를 이끄는 핵심 주제가 되었다. ‘여성스럽다’가 내포하는 여러 이미지 중 그가 발견한 것은 대담함과 과감함이었다. 김지수 대표는 군중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살면서도 내면에 유별나고 모난 부분을 지니고 있고, 이를 당당하게 표출할 줄 아는 인물을 킴지수의 페르소나로 삼았다. 그 뮤즈는 궁극적으로는 김지수 자신이다.
홍우성 대표에게도 브랜드는 곧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새롭게 좋아하게 되고 꽂히는 무언가를 컬렉션을 이끄는 방향추로 삼아왔다. “전 제가 만든 옷만 입는데, 이 말은 곧 제가 입고 싶은 것만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제가 좋아하는 클래식과 캐주얼의 중간 지점을 찾고 싶어 하이브리드 언어를 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지금의 브랜드로 이어졌습니다.”

주방 한쪽에 자리한 스피커를 매입한 장. 리파인드 스튜디오의 시그너처로, 음악 감상이 취미인 부부에게 이상적 아이템이다.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사람의 취향 합치기
자신의 이야기로 디자인을 하는 부부에게는 즐겨 가는 장소, 매일 지나는 거리, 자주 먹는 음식, 만나는 사람, 일상의 모든 것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된다. 그중에서도 매일을 보내는 집은 가장 중요한 뿌리다. 결혼하고 지금의 신혼집을 찾으며 두 사람은 처음으로 집이라는 공간을 완벽하게 자신의 취향대로 꾸밀 기회를 얻었다. 문제는 두 사람의 추구미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놀이터 같은 집에서 함께 갖고 노는 장난감과 피겨, 취미인 레고 모형.
단적인 예를 들자면, 홍우성은 목재파다. 무지, 앤티크를 좋아하고 담백하면서 자주 손이 가는 옷을 추구한다. 반대로 김지수는 금속파다. 모던한 감각을 사랑하며, 복잡하고 실험적인 디테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일치한 생각은 집이 놀이터 같은 곳이 되길 바랐다는 것. 둘은 강남의 30년 된 37평 빌라를 신혼집으로 결정하고, 해보고 싶던 모든 것을 시도하는 팔레트로 삼았다. “저희는 마냥 편하고 아늑하게 쉬는 집을 원하지는 않았어요. 대신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하고, 하고 싶은 건 이것저것 다 해보며 영감을 얻는 곳이 되길 바랐어요. 정말 우리의 놀이터처럼요.”
리파인드 스튜디오(refyndstudio.com)를 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재밌을 것 같아서. 김지수 대표는 남편의 지인이던 리파인드 스튜디오 유타샤 대표를 만나고, 개성이 강한 리파인드 스튜디오의 프로젝트만큼이나 당당하고 과감한 태도에 매료됐다.

홍우성 대표의 취미인 반신욕을 위한 욕조. 안방 욕실은 하늘색 모자이크 타일로 옛날 목욕탕 분위기를 냈다.
단순히 표피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부부가 원하는 바를 자신의 언어대로 해석해줄 것이라는 신뢰감도 생겼다. 미국에서 공간 디자인을 배우고 일하던 유타샤 대표 또한 두 사람의 집을 흥미로웠던 프로젝트로 꼽는다. “한국에서는 집을 개인의 취향에 맞추기보다는 무난하고 튀지 않는 공간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서 주거 인테리어가 그다지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두 사람은 달랐어요. 전형적인 집의 모습을 원하지 않았죠.” 유타샤 대표는 취향이 정반대인 부부의 감각을 적절히 녹이고, 리파인드 스튜디오의 색깔을 한 스푼 더해 세 주체의 서로 다른 미감이 공존하는 집을 완성했다.

올리브 컬러의 하부장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블랙&화이트 타일이 포인트인 주방. 비트라의 EM 테이블도 일반적인 목재 대신 화이트와 민트 조합으로 골랐다.
“마냥 편하고 아늑하게 쉬는 집을 원하지 않았어요. 대신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하고, 하고 싶은 건 이것저것 다 해보며 영감을 얻는 곳이 되길 바랐어요. 마치 우리의 놀이터처럼요.”
다양한 표정으로 이루어진 집
유타샤 대표는 구조를 많이 바꾸는 대신 적절한 위치에 가구와 장치를 더해 공간을 편집하는 식으로 바탕을 다듬었다. 좁고 옹색하던 현관은 낮은 수납장을 길게 짜 거실과 영역을 분리하고, 그 위에 리파인드 스튜디오에서 직접 디자인한 조명을 설치했다. 금속을 타공한 뒤 원기둥 형태로 말아 설치한 조명은 수납장과 마찬가지로 거실과 현관을 느슨하게 구분해준다. 강렬한 첫인상으로 집에 오는 이들을 환대하는 것은 덤. 타공 판을 움직여 원하는 각도대로 빛을 조절할 수 있어 그때그때 분위기를 바꿔가며 쓰는 재미도 있다.
안방과 드레스룸, 욕실은 전용 전실과 중문을 추가로 계획해 두 사람만의 공간을 좀 더 프라이빗하게 구분했는데, 이곳은 두 사람의 대조되는 취향이 가장 절묘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두꺼운 스테인리스 스틸 도어와 그 무게감을 상쇄해주는 유리블록은 김지수의 취향, 문을 열면 나타나는 전실 속 까만 목재 사이드보드와 그 위 오브제는 홍우성의 취향이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두 사람의 명확한 취향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달력이나 편자, 거실의 세이코 벽시계, 자개 거울은 홍우성 대표가 골랐고, 거실 수납장에 매입한 스피커나 금속 조명은 김지수 대표의 픽이었다.

작업실을 위한 책장. 물건의 실루엣이 드러나도록 수납장은 반투명 아크릴로 제작했다.
취향의 아카이브 같은 이 집을 가장 집답지 않게 만드는 핵심은 바로 소재. 이곳엔 마치 패턴 스와치처럼 무수히 다양한 소재와 디테일이 공존한다. “문도 일반적인 목재 문, 커다란 스테인리스 스틸 문, 도르래로 열리는 슬라이딩 도어까지 집에서 할 수 있는 방식은 다 시도했어요. 타일도 마찬가지예요. 안방 욕실은 하늘색 모자이크 타일로 옛날 대중목욕탕 같은 느낌을 냈다면 화장실에는 커다란 회색 타일을 시공하고 붉은색 수전으로만 포인트를 줬어요. 다이닝룸에도 재미를 주고 싶어서 지금의 블랙&화이트 타일을 고심하며 결정했습니다. 아주 과감한 디자인인데, 봐도 봐도 신선한 모습이라 잘 골랐다 싶어요.”

집의 시그너처인 타공 조명. 현관과 거실 사이에서 손님을 환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김지수 대표의 설명을 듣고 보니 같은 디자인의 가구에도 미세하게 다른 지점이 보였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블루라고 다 같은 블루가 아니라던 미란다의 대사처럼. 거실의 스피커장은 하나는 코너를 직각으로, 다른 하나는 둥글게 굴려 제작했고, 주방 수납장은 한쪽은 새틴 유리, 다른 한쪽은 투명한 유리로 마감해 두 가지 콘셉트로 사용한다. 다이닝 체어도 전부 다른 색과 디자인으로 섞었다. 리파인드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금속 조명 역시 거실에서는 타공 판의 구멍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지만, 안방에서는 얇게 재단한 선을 따라 라인 조명처럼 빛이 흐른다. 미묘하게 다른 것을 시도하고 직접 살면서 겪어보고 관찰하는 경험은 두 사람의 ‘만드는 근육’을 멈추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매일 감각을 일깨우는 집에서 부부는 신나게 놀기도 하고, 작업에 열중하기도 하며, 부지런히 새로운 생각을 배양한다. 최근 두 사람의 삶에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이제 태어난 지 1백 일 남짓 된 아이 이서. 아이를 맞이하며 집은 시시각각 더 많이 달라지는 장소가 됐다. 부부는 아이와 함께하면서도 두 사람의 취향을 지키고, 또 취향의 접점을 찾아가는 법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킴지수와 홍우성의 이야기도 나날이 새로워질 것이다.
킴지수(kimzisu.com)는 부드러움과 구조감, 대담함과 여성성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탐구하는 여성복 브랜드다. 디자이너 김지수는 킴지수를 통해 각자의 개성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여성들을 이야기하며, 자유로운 감각과 일상 속에 공존하는 극적인 요소를 고유한 언어로 풀어낸다.
홍우성(hongwoosung.com)은 디자이너 홍우성이 어나니마우스에 이어 전개하는 유니섹스 브랜드다. 클래식, 캐주얼, 스트리트 등 스타일의 본질과 아카이브에 집중해 서로 다른 패션 요소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하이브리드 룩을 전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