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루디 게네르의 시적 공간은 그가 사는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소란한 도시에서 한 발짝 물러나 하늘을 좀 더 가까이에 둔 집에서 가족은 매일 더 섬세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바깥의 삶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햇빛이 스며들어 따스한 무드를 자아내는 루디 게네르의 집. 빛을 온전히 들이기 위해 거실과 다이닝룸, 주방을 하나의 공간으로 열어냈다. 저녁이면 에펠탑의 불빛이 이곳에 드리운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저 소박한 별 하나는 외딴집 한 채다. 농부들은 자신들의 등불이 초라한 식탁을 비출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80km 떨어진 이곳에서는 그것이 마치 누군가가 무인도에서 바다를 향해 절망적으로 흔들어대는 등불처럼 보여 그 불빛의 부름에 감동받는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에서 비행사 파비앵은 하늘을 홀로 비행하다 누군가의 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며 세상과 연결된 감각을 느낀다. 동명의 디자인 스튜디오 ‘나이트 플라이트’를 운영하는 루디 게네르Rudy Guénaire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다. 아내, 어린 딸과 함께 사는 아파트에서 그는 매일 다른 모습의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우주를 만난다.

거실에서는 한스 웨그너의 플래그 체어에 앉아 마치 야외 테라스처럼 일광욕을 즐기곤 한다.
올해 메종&오브제의 〈왓츠 뉴? 인 호스피탤리티〉 전시에서 루디 게네르는 그야말로 독보적 존재였다. 그는 미래의 호스피탤리티를 디자인 트렌드나 마감재로 예측하는 대신, 우리가 잊고 있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는 전시를 준비했다. 마지막에 완벽한 미장센으로 등장한 Suite 2046 공간은 “오늘날 호스피탤리티에는 역사와 마법 같은 환상, 무엇보다 시적인 감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거실은 유리 천창을 통해 하루 종일 빛이 들어온다. 집에서 철학, 문학 등 수많은 책을 탐독하는 루디 게네르는 벽 한쪽을 전부 책장으로 채웠다.
루디 게네르는 파리에서 주목받는 디자이너다. 파리의 비즈니스 스쿨 HEC를 졸업하고 기업가로 일하던 그는 레스토랑 PNY 프로젝트를 계기로 직접 공간 디자인에 뛰어들었다. 정식으로 인테리어를 배우지 않은 그는 도면보다 드로잉으로, 드로잉보다 글로 공간을 상상하고 구현한다. 그렇게 완성한 공간은 이번 전시만큼이나 무척 ‘시적’이다. 기존의 공간 문법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경험과 감각에 중심을 두고, 영화나 문학에서 받은 영감을 장소에 맞는 서사로 치환해 전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그의 방식. “인테리어는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을 어떠한 분위기로 이끄는 일입니다. 이야기를 짓는 것과 닮아 있죠. 레스토랑을 열고 운영할 때도 설계를 직접 하지 않았을 뿐 저는 늘 같은 일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그의 첫 공간 프로젝트이자 현재 가족이 사는 파리의 아파트 역시 그러한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주방과 이어진 다이닝룸. 소파와 테이블은 그가 집을 위해 직접 디자인했다. 은은한 색감의 조명은 가에 아울렌티의 콰드리폴리오.
루디 게네르는 파리 15구를 비춘 구글 위성 지도에서 이 집을 발견했다. “파리는 전기처럼 짜릿하고 번쩍이는 도시입니다. 정신없는 이 도시를 잘 즐기기 위해서는 때때로 숨어들 장소가 필요해요. 소란에서 벗어나 멈춰서 하늘을 바라보는 곳, 이 아파트는 바로 그런 장소였습니다.” 100㎡ 규모의 아파트는 19세기 초 예술가의 작업실로 지었다. 자연광의 아름다움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던 그는 지붕 아래에 숨어 있던 두 개의 천창을 발견한 순간, 가족과 이곳에서 살아갈 것을 결심했다. 그는 이 집이 회복을 위한 피난처인 동시에 시적이고 섬세한 감각을 일깨우는 곳이 되길 바랐다. 레노베이션에 돌입하고 처음 한 일은 지붕의 채광창을 복원해 자연광을 들이는 것. 두 개 층으로 이루어진 아파트는 동선과 레이아웃을 완전히 바꿔 새롭게 설계했는데, 이때도 가장 중심이 된 것은 ‘햇빛’이다. 햇빛이 늘 내리쬐는 2층은 거실과 다이닝, 주방을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 채광에 집중하고, 반대로 햇빛이 비교적 적은 1층은 침실과 욕실을 배치해 안락하고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냈다.

유리블록을 통해 은은하게 빛이 드는 욕실.

침실은 배의 선실처럼 아늑하고 안온한 느낌이다.
탁 트인 거실의 개방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현관과 계단은 의도적으로 좁게 설계했다. “집은 배의 구조를 닮았어요. 2층은 갑판처럼 열려 있어 야외에 있는 것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침실은 캐빈처럼 아늑합니다. 빛의 색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공간을 이루는 색은 크림 톤으로 통일하고, 가구 또한 대부분 빌트인으로 디자인해 공간에 여백을 충분히 뒀어요. 캔버스처럼 비워낸 공간은 매일 달라지는 햇빛을 반영해 시시각각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이 집의 주인이자 공간을 디자인한 루디 게네르.
손님을 초대하기보다 세 사람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내향형의 가족은 이곳에 온 후로 단순한 일상을 풍성하게 감각하며 살고 있다. 여름 저녁에는 에펠탑 뒤로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선셋이 매 순간 달라지는 이벤트임을 알았고, 아침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햇빛에 어떻게 푸르른 색감이 스며드는지를 발견한다. “우리는 매일의 일상 속에서 우주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집은 그러한 순간을 만날 수 있는 장소예요. 도시의 분주함에서 벗어난 오아시스에서 저희 가족은 매일 더 섬세하고 차분해지며,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루디 게네르는 프랑스 비즈니스 스쿨 HEC를 졸업한 뒤 기업가로 활동하다 레스토랑 PNY 프로젝트를 계기로 공간 디자인에 뛰어들었다. 2023년 생텍쥐페리의 장편소설 〈야간비행〉에서 이름을 따온 에이전시 나이트 플라이트를 설립해 인테리어와 가구, 브랜딩을 아우르며 친밀하면서도 시적인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studionightfligh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