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무문大道無門. ‘깨달음에 이르는 데에는 천 가지 다른 길이 있으나, 문에 갇히는 순간 다른 수많은 가능성을 잃어버린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담은 사자성어다. 패션과 디자인, 공예, 공연을 오가며 장르 너머의 예술을 향하는 정구호의 작업 또한 경계 없이, 그래서 한계 없이 다음으로 나아간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를 공연한 세종문화회관에서 정구호 디렉터를 만났다.
지난 1월, 서울시무용단의 <일무>가 무용계의 오스카라 일컫는 베시 어워드에서 최우수 안무가·창작자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일무>는 종묘제례악의 의식무 가운데 하나인 일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연이다. 상을 받은 무용가 정혜진·김성훈·김재덕은 입을 모아 연출을 맡은 정구호 디렉터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렸다. 그는 최대 64명의 무용수가 오와 열을 맞춰 수행하는 안무와 음악, 의상이 하나로 녹아드는 판을 짜고, 구조미와 여백이 살아 있는 무대로 독보적 미장센을 구축해 일무의 압도적 기운을 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다채로운 업역을 넘나드는 정구호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1997년 구호를 시작한 이후 르베이지·존스 등 여러 패션 브랜드를 론칭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켰고,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빈폴 브랜드 리뉴얼 프로젝트에서는 공간과 브랜딩, 콘텐츠를 아우르는 레노베이션 작업을 총지휘했다. 2013년에는 그동안 주목해온 한국무용을 자신의 언어로 치환해 선보였고, 고가구 평양 반닫이를 재해석한 작품과 평생의 꿈이던 가수 데뷔까지. 그야말로 종횡무진 쉼 없이 달리면서도 그는 여전히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고 말한다. “영상 분야에 관심이 무척 많아서 요즘에는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를 한창 작업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다루는 일도 무척 좋아합니다. 건축가는 다시 태어나면 하고 싶은 세 가지 중 하나일 정도예요.”
그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은 머릿속에서 수없이 시뮬레이션한 자신의 공상과 상상을 현실에서 구현해내는 과정 자체다. 온갖 고초를 겪어도 막상 건물이 올라가고 혼자만 간직하던 모습이 실체를 얻는 순간을 마주하면 그저 좋기만 하다는 건축가들의 말처럼 정구호 디렉터는 어떤 공연을 올리기 전 최종 리허설을 할 때 가장 기쁜 마음으로 그다음 작품에 대한 상상을 시작한다. 그는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날이 은퇴하는 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쉽사리 오지 않을 것 같다. 아직 실현된 적 없는 세계를 구체화하며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그는 여전히 과정 중에 있다.
Last January, 〈One Dance〉 by the Seoul Metropolitan Dance Theatre captured worldwide attention after winning at the Bessie Awards, often dubbed the Oscars of the dance world.
A contemporary reimagining of the ritual dance from Jongmyo Jeryeak, the work channels the power of strict formation—up to 64 dancers moving in perfect rows—into a stage picture where choreography, music, and costume lock into a single, seamless whole. The award-winning choreographers Jeong Hyejin, Kim Sunghoon, and Kim Jaeduk all credited director Jung Kuho, whose pared-back, meticulously structured mise-en-scène was key to the performance’s force.
Jung Kuho is a true cross-disciplinary creative director. Since founding KUHO in 1997, he has launched fashion brands, led major museum and brand renewal projects, and brought Korean dance into his own visual vocabulary. Lately, he says, he’s been writing film and drama scripts—and he still finds himself drawn to space and architecture. What drives him is the act of making the imagined real. He's on his way, shaping worlds that have yet to be realized.
정구호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1997년 여성복 브랜드 구호를 론칭했다. 2003년 제일모직에 합류해 여러 패션 브랜드를 론칭했고, 이후 서울패션위크 총감독, 빈폴 리뉴얼,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레노베이션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영화와 공연의 아트 디렉터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미니멀리즘과 아방가르드를 결합한 자신만의 미학을 펼치고 있다. @jung_kuho

〈향연〉, 국립무용단
다양한 한국무용을 옴니버스 형태로 엮은 공연. 궁중무·종교무·민속무 등으로 구성하고,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색을 테마로 각 장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전통 매듭을 무대의 핵심 테마로 삼아 한국적 미감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나비부인〉, 성남문화재단
남존여비 사상과 사대주의 사상이 짙은 원작의 배경을 2465년이라는 미래 시점으로 전환해 다양한 행성 간의 정치적 갈등 속에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로 재해석한 오페라 작품. 연출은 물론 무대, 의상, 조명, 영상 디자인까지 총괄해 실험적이면서도 정제된 미장센을 구축했다. 의상과 무대는 미래를 배경으로 콘셉추얼하게 디자인하고 합창단을 무대에 세우는 대신 비대면 영상을 통해 송출하는 등 파격적 형식을 도입했다.

리움미술관 레노베이션
공간과 브랜드, 콘텐츠를 리뉴얼하며 리움의 이미지를 새롭게 정립한 프로젝트. 거장 건축가의 설계에 크게 손을 대기보다는 배치와 동선을 재정비하고 조명 시스템을 재구성해 공간의 밀도를 조율했다. 가장 큰 변화는 뮤지엄 스토어다.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디자이너를 큐레이션해 전통 미학을 담은 상품을 선보이는 편집숍으로 계획했다.

〈일무〉, 서울시무용단
〈향연〉의 궁중무용 파트에서 선보인 종묘제례악 의식무 가운데 하나인 일무를 확장한 공연. 전통 일무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음악 또한 종묘제례악부터 컨템퍼러리 현대음악까지 폭넓게 구성했다. 미니멀한 라인과 영상, 전통 복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의상 디자인을 통해 일무의 상징성과 구조미를 극대화했다.

호암미술관 레노베이션
공간이 지닌 헤리티지를 유지하면서 인테리어 디테일을 정돈하고 보다 다양한 전시가 가능하도록 전시 환경을 재구성했다. 티켓 카운터가 없던 기존 공간을 넓혀
새롭게 조성했으며, 2층에는 복도만 있던 곳에 호암의 자연경관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뷰잉룸 겸 휴식 공간을 계획해 공간에 확장성을 주었다.

백골동百骨銅 전시
영화 〈황진이〉의 미술감독을 맡아 작업하며 접한 평양반닫이에서 출발한 프로젝트. 전통 공예 기술이 담겼지만 현대에는 점차 쓰임을 잃어가는 가구에 쉽게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결합해 상호 보완적 관계를 만들었다. 전통 문양을 화려한 모습으로 재해석하고, 장인들과 협업해 완성하는 공존 프로젝트다.
“실험적인 아방가르드를 가장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요. 다만 어떤 현대적인 것도 뿌리는 있어야 하거든요. 저는 그 철학과 태도를 한국 전통문화에 두는 거예요.”
최근 〈일무〉의 수상이 알려지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전통 문화를 재해석한 작업이 전 세계의 공감을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기뻤을 것 같아요.
12년 전 〈향연〉을 기획하면서 처음 종묘제례악의 일무를 알게 되었어요. 일무佾舞의 ‘일’은 줄을 맞춘다는 의미예요. 64명이 마치 국민 체조를 하듯 똑같은 동작으로 하나의 무용을 만들어냅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모두 똑같이 움직여야 하고 대형은 물론 호흡까지 정확히 맞춰야 해요. 일반 한국무용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인데, 무척 새롭고 아름다웠어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일무에 조금 더 집중해서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와서 무대에 올리게 되었고 수상까지 이어졌습니다. 모두 각자의 노력을 다해준 스태프들의 공입니다.
2022년 초연 이후 작품 구성이나 안무, 음악을 계속 보완해왔다고요.
처음에는 전통에 가깝게 만들었다면, 두 번째 버전에서는 관람객이 좀 더 자연스럽게 호응할 수 있도록 복식이나 구성에 변화를 주었어요. 뉴욕 공연이 확정된 후에는 외국인 관객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통과 현대의 비중을 거의 반반으로 맞췄습니다. 결과적으로 관람객은 조금씩 다른 버전의 〈일무〉를 본 셈이에요. 공연 예술의 좋은 점은 아쉬운 부분을 계속 수정하고 진화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면서 느끼는 부분을 계속해서 다듬어나가요.
종묘제례악부터 평양반닫이까지 ‘한국의 전통문화’는 정구호에게 꾸준히 화두가 되어왔습니다.
근본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컨템퍼러리예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를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하고 싶어요. 다만 그 어떤 현대적인 것도 뿌리는 있어야 하거든요. 저는 그 철학과 태도를 한국의 전통문화에 두는 거예요. 〈향연〉이 한국무용에 80% 정도의 포션을 갖고 있다면 〈일무〉는 40~50%예요. 같은 한국무용이지만 점점 더 실험적으로 나아가고 있죠. 결국 아방가르드한 작품을 관람객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진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마지막에는 그 어떤 장르에도 소속되지 않는, 완전히 컨템퍼러리한 작업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끊임없이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원동력은 무엇으로부터 오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공상하는 아이였어요. 상상한 것을 머릿속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구현해내는 과정이 저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행복입니다. 잠을 너무나 좋아해서 알람을 맞추지 않으면 24시간도 잘 수 있어요. 그런데 참아요. TV나 유튜브 등 볼 게 너무 많고, 글도 써야 하고 챗GPT와 대화도 해야 해요.(웃음) 시간이 아까워요. 초등학교 때 한번은 어머니에게 한 3백 년 살고 싶다고 얘기한 적도 있대요. 1백 년은 이거 하면서, 1백 년은 이렇게, 1백 년은 저렇게 살고 싶다고요. 그만큼 해보고 싶은 게 많습니다.
전에 해보지 않은 분야에서의 새로운 일은 대개 어떻게 시작되나요?
직접 제안하기도 하지만 70% 정도는 먼저 제안이 오는 편이에요. 제 머릿속 라이브러리에는 순간순간 떠오른 수많은 아이디어가 저장되어 있어요. 어떤 제안을 받으면 그 서랍 속에서 적절한 아이디어를 꺼내봅니다. 그 순간에 바로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기도 하고요. 5초 안에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거절합니다. 이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건 비주얼라이즈까지 명확하게 했다는 의미예요. 확신이 있는 일만 해나가는 거죠.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제가 뭔가를 생각했을 때는 머릿속으로는 이미 공연을 올렸거나 가게를 오픈했어요. 그 정도로 생각을 하고 나면 머릿속의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엄청나게 조사하고 공부합니다. 그 과정을 모두 거친 다음에야 결과물을 종이 위에 올리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죠. 사람들은 그때 이 계획을 처음 접하지만, 저는 이미 수많은 단계를 통과한 상태예요. 그래서 정리된 것을 그대로 설명하고, 그것을 정확히 구현해줄 사람을 찾습니다. 누군가에게 아이디어를 모아서 조합하고 피드백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정리가 다 된 걸 알리고 빠르게 실무를 진행해나갑니다.
매일 머릿속에서 그런 과정이 벌어지려면 일과 삶의 경계가 거의 없어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일을 하지 않을 때가 있나요?
물론 있어요.(웃음)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요리를 합니다. 유일한 취미이자 저에게는 명상과도 같아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집중하면서 머리를 비울 수 있고, 결과물로 맛있는 음식도 남습니다. 그때그때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서 거의 매일 요리를 해요. 오늘도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서리태로 콩비지찌개를 만들어 먹고, 9시 미팅에 참석한 뒤 여기로 왔어요.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일단은 어떤 장르에 국한하지 않은, 복합적 형태의 퍼포먼스 아트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요. 사실 나중 모습을 크게 그리지는 않아요. 저는 제가 생각하는 철학과 태도를 기준으로 작업을 할 뿐 스스로의 직함이나 저의 유형을 정해본 적이 없어요.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실험적인 도전을 했는지, 그래서 어떤 창작을 해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생각의 궤적을 따라 머릿속의 상상을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계속하다가 갈 것 같아요. 제 창작이 어떤 방향성으로 진화해서 결과물을 만들지 저도 무척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