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월의 종을 이끌며 21년째 식사빵을 만들고 있는 정웅 대표.
5년 전, 정웅 대표는 ‘나의 마지막 빵집’이라는 의뢰서를 들고 건축사무소 유랩의 김종유 소장을 찾았다. “오로지 빵을 만들기 위한 공간, 결국 마지막에는 나 혼자 이곳에 남아 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작업해 달라”는 요청과 함께. 두 사람이 만나 빵집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책 〈오월의 종: 나의 마지막 빵집〉에 담겨 있다. 한 베이커가 지향해온 일의 방식이 어떻게 공간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 그 경험이 왜 중요한지를 향한 고민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기능에 충실한 형태로 탄생할 수 있던 이유를 물어보기 위해 정웅 대표를 만나 빵과 시간, 그리고 공간에 관한 긴 이야기를 나눴다.

빵처럼 건물도 시간과 숙성이 필요하다는 개념을 도입해 지은 오월의 종. 거대한 매스감이 느껴지는 건물을 뚫어 중정을 만들고, 식사빵의 거친 표면을 닮은 듯 도자기 세라믹으로 마감해 독특한 미감을 드러낸다.
책을 읽으며 오월의 종을 설명하는 태도, ‘검박하다’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이 단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빵을 시작한 이유를 이야기할 때 종종 쓰는 표현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후지다’라는 말이다.(웃음) 누구처럼 빵을 정말 좋아해서 시작한 건 아니다. 시멘트 회사에 다닐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사람에게 간섭을 덜 받으면서 작지만 A부터 Z까지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어느 날 남자 화장실의 작은 환기창 너머로 제빵 학원 간판이 보였다. 그 순간 ‘어?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오게 됐다. 첫 번째 빵집이 망한 뒤 내 삶의 반경에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과하지 않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정한 거다. 빵과의 거리는 이 정도, 사람과의 거리는 이 정도가 좋겠다고 범위를 정하면서 스스로 지치지 않는 선을 명확하게 알게 됐다. “왜 이런 빵은 없어요?” “오전 11시가 아니라 8시부터 열어야죠” 같은 말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됐다. 내가 만들고 싶은 빵을 천천히 꾸준하게 만들 수 있는 방식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 후로 빵의 종류나 운영 방식에서도 늘 가능한 선을 지켰다. 그렇게 쌓인 태도를 닮은 식사빵을 보며 김종유 소장은 ‘검박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린 게 아닐까 싶다. 지금의 오월의 종과도 잘 어울리고.

김종유 소장이 오랜 기간 쉼 없이 달려온 정웅 대표를 설득해 그만을 위한 서재 겸 휴식 공간으로 만든 3층. 아끼는 책과 식물이 가득하다.
오늘 아침 7시부터 이 공간에서의 하루를 지켜보니 검박함이라는 태도가 빵집 운영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밀가루에 물과 이스트가 들어간 순간부터는 사람이 조절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때부터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온도와 환경에 맞는 과정을 거치는 수밖에 없다. 원한다고 해서 빼거나 더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다른 작업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가 순조롭게 흘러간다.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방식이 좋고, 이 상태가 행복하다. 그래서 빵을 배우러 온 친구들에게도 늘 같은 말을 한다. 여기서 기술은 충분히 배우되, 그 이후에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빵을 만들고 싶은지 생각해보라고. 모르는 건 내가 가르쳐줄 테니, 일을 어렵게 느끼지 말라고.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나를 ‘형님’이라 부른다. 사람을 직함이나 역할로 대하기보다 그 사람이 지닌 태도를 먼저 보려고 한다.

오후 4시가 되면 건물 틈으로 햇빛이 들어오는데 바쁜 오전 일정이 지나간 뒤 정웅 대표는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 태도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나의 마지막 빵집’이라는 건축 의뢰서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어떤 조건이 담겨 있었나?
평생 빵을 만들 거니까 언젠가는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나 혼자서도 빵을 만들 수 있는 작은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빵을 ‘파는’ 개념은 최대한 줄이고, 빵을 ‘만드는’ 기능을 가장 중심에 두는 조건이었다. 감정적 측면에서 보면 빵을 만들기 위해 외부와 적당히 차단되고, 온전히 보호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게 나를 위한 공간이자,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이 대지는 50평 남짓한 땅이다. 10년 전에는 이곳을 랩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고, 바로 옆집에 유랩 사무실이 있었다. 둘 다 잘되지 않던 시절이라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던 사이였다. 그때 김종유 소장이 “나중에 돈 많이 버시면 빵집 하나 지으세요. 제가 지어드릴게요”라고 한 말이 문득 떠올라 연락도 없이 의뢰서를 들고 찾아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창문은 없어도 괜찮으니 빵 굽는 일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러다 가끔 고개를 들었을 때 하늘을 한번 볼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김 소장이 10분쯤 말없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의뢰서를 실제 공간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유랩과 협업도 중요했을 텐데, 김종유 소장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공간을 완성해갔는가?
그 과정이 책에 자세히 적혀 있다.(웃음) 처음부터 공간의 의도와 목적이 분명했기에 협업 자체가 즐거웠다. 유랩은 빵처럼 건물도 시간과 숙성이 필요하다는 개념을 공간에 그대로 대입했다. 가운데 중정을 둔 구조로 지하 1층은 빵을 반죽․숙성․성형하는 공간으로, 2층은 빵을 굽고 판매하는 곳, 3층은 나를 위한 작업실이자 쉬는 곳으로 나뉜다. ‘뚫린 공간’과 ‘굽는다’라는 키워드에서 착안해 건물 가운데를 뚫어 중정을 만들고, 내부는 시간이 갈수록 색이 달라지는 스틸 소재를 사용했다. 외관은 굽는다는 형태를 보여주기 위해 김무열 작가와 협업해 세라믹 타일로 마감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지하 1층이다. 적당히 어둡고 습도와 온도가 크게 변하지 않아 빵을 만들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마음의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김 소장에게 고마운 건 2층을 온전히 나를 위한 공간으로 쓰자고 설득한 부분이다. 책상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건물 구조상 생긴 작은 틈이 하나 있는데, 김 소장이 하루 종일 내가 일하는 것을 관찰하더니 이렇게 말하더라.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대가 오후 3시나 4시쯤이네요. 그 시간에 이 자리에 앉으면 저 틈으로 햇빛이 들어올 겁니다.” 태양의 궤도를 계산한 배려가 어찌나 고맙던지! 건물을 같이 지은 이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건물 가운데 크게 구멍을 뚫어 중정을 만들었다. 빵을 만들다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다는 정웅 대표의 의견을 고려한 결과다.
의도대로 빵을 굽는 기능이 공간의 가장 중심에 있다. 결과적으로 기능을 우선한 결정이 오월의 종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브랜드를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시도한 적은 없다. 자연스럽게 오월의 종이 된 거지. 손님 중에 BBC 주재원이 있었는데, 3년 만에 다시 한국에 와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이 너무 빨리 움직이는 사회라 걱정했는데, 여기는 그대로 남아 있네요.” 늘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려고 한다. 빵을 대하는 나의 태도 빵 맛은 변하지 않아야 할 영역이다. 여전히 내게 큰 숙제다. 매일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답은 ‘맛있는 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빵을 만드는 환경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스스로 정해둔 선이 오월의 종을 단단하게 이끌고 있다.
반대로 빵을 구매하는 공간은 상대적으로 좁고 동선도 독특하다. 이런 구조에 대해 손님들의 반응은 어떤가?
사실 손님의 편의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빵을 만드는 공간이니까. 건물 왼편 출입구로 들어와서 빵을 트레이에 담아 계산한 뒤, 중정을 끼고 빙 돌아 오른쪽으로 나가게 만든 동선이다. 일반 베이커리와 구조가 다르지만 다들 이해해주는 편이다. 이 공간이 완성되고 나서 빵을 굽거나 손님을 맞을 때 이제는 ‘진짜 내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내가 자주 하는 인사말도 “여기서는 장사 오래 할 거예요”이다.

매일 아침 펼쳐지는 오월의 종 풍경. 새벽부터 지하 1층에서 발효, 숙성한 반죽을 예쁘게 성형해 2층에서 쉴 새 없이 굽는다.
결국 이곳은 단순히 빵을 만드는 곳을 넘어 정웅이라는 사람이 오랫동안 지켜온 태도가 확장된 결과물처럼 보인다. 자신에게 ‘좋은 베이커의 태도’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20대 때만 해도 내가 빵을 만들며 살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지금도 가끔 신기하다. 깊거나 거창한 범위가 아니라, 자기 노동이 고스란히 담긴 빵을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순간, 그 형태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곧 좋은 베이커의 태도이기도 하고. 가끔 실의에 빠진 직원이 “형님, 인생이 도대체 뭐예요?”라고 묻는다. 그럴 때 이렇게 말한다. “원래 인생은 기본적으로 별로야. 너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더 불편한 거고. 세상은 너를 위해 존재하지 않아. 남도 우릴 위해 살지 않고, 우리와 상관없이 돌아가. 나쁜 일이 생겨도 너무 놀라지 말고,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우직하게 우리가 갈 길을 가자. 맛있게 최선을 다해 빵을 만들자.”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오월의 종만의 태도와 형태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구축해 나가고 싶은가?
언제였더라, 누군가 장래 계획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이렇게 말했다. “딱 10년 후에도 오늘 같은 날이면 좋겠다.” 예전에는 반복되는 일상이 참 지겹다고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루틴을 지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더라. 세상은 늘 그걸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다. 루틴을 지킬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주변 환경이 나에게 우호적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나고 보면 “심심한 날이 가장 행복했던 때”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언젠가 나이가 들고, 힘이 조금 빠지고 나면 결국 이 공간에서 나 혼자 빵을 만들게 될 거다. ‘나의 마지막 빵집’이라는 바람처럼 천천히 오래 욕심 부리지 않고 지금처럼 가고 싶다.

빵을 만드는 기능에 충실한 덕분에 빵을 판매하는 공간은 이곳에서 가장 작지만, 효율적 동선을 고려해 설계했다.
오월의 종 2004년 문을 연 오월의 종은 한국에서 식사빵의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알린 베이커리다. 밀의 풍미와 발효 시간을 존중한 빵으로 입소문 나며, 디저트 중심이던 베이커리 풍경 속에서 ‘밥처럼 먹는 식사빵’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오늘날 오월의 종은 한국을 대표하는 베이커리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힌다. 2023년 9월 5일, 건축사무소 유랩과 함께 73㎡ 정도의 작은 부지에 오월의 종 본점을 새롭게 지어 오픈했다. ‘Red Dot design award 2024’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최고상(Best of Best)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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